국내 낙농산업의 위기는 유업체들이 높은 관세에도 불구하고 혼합분유 수입에 혈안이 돼 공급과잉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한EU FTA와 한미 FTA가 본격화한 2012년이후 유제품 무관세 할당 수입에 따라 분유를 비롯한 유제품 수입이 크게 불어났음에도 불구, 유업체들은 혼합(모조)분유를 계속해서 수입해 공급과잉 만성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2008년~2011년 혼합분유 평균 수입량은 2만9882톤, 그리고 한EU FTA와 한미FTA 이후에도 3만2656톤으로 꾸준히 수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합분유는 WTO체제가 들어서면서 200%를 넘나드는 전탈지 분유에 대한 고율관세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한 분유 대체품목이었다.
혼합분유는 그동안 낙농ㆍ유가공산업의 원활한 수급을 교란하는 복병으로 오랫동안 자리해 온 것이 사실이다.
농식품부는 혼합분유의 수입 억제를 위해 이례적으로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하기도 했다.
지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전ㆍ탈지분유에 220%를 넘나드는 고율관세가 적용되자 1994년 이후 식품기업들은 고율관세를 회피하기 위한 분유 대체재인 혼합분유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혼합(모조)분유 수입량
1997년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정부는 무역위원회의 산업피해조사를 거쳐 그 해 3월 7일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정부는 1997년 혼합분유 수입쿼터를 2만251톤으로 할당하고 2001년까지 수입쿼터를 매년 5.7% 늘려가기로 했다.
그러나 유럽연합(EU)는 산업피해조사의 적정성과 수량제한 조치의 불가피성에 관한 문제를 들어 WTO에 소송을 제기했다. 1998년 설치된 WTO패널은 1999년 6월 우리나라의 패소를 판정했다.
정부는 1999년 9월 상소했으나 그해 12월 WTO상소기구는 패널의 판정을 재확인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2000년 5월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종료했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혼합분유는 분유 70%에 훼이파우더, 코코아분말, 또는 곡물 등이 30% 가량 혼합된 것으로 조제분유, 아이스크림, 제빵, 농후유음료 등 제품의 용도에 맞는 다양한 맞춤식 원료로 발전해서 오늘날 전탈지분유를 대체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품목이다. 최근에는 국내 유업체들이 신제품 개발에 맞춰 별도의 혼합분유를 맞춤식 주문 생산을 하는 등 전탈지 분유가 무관세로 들여온다고 하더라도 곡물과 코코아 등 나머지 원료를 다시 사서 배합을 하는 수고를 기울여야 하는 점 때문에 관세가 40%로 높은데도 불구하고 무관세 분유보다 혼합분유를 더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업체들이 유제품 공급과잉 우려 속에서도 무관세 분유보다 가격이 높은 혼합분유를 굳이 수입하는 것은 치즈를 만들고 남은 훼이파우더, 코코아분말, 곡물 등이 혼합돼 있어 가공제품을 만들기 수월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당초에는 분유의 고율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혼합분유를 대체해 사용했으나 오랫동안 혼합분유에 길들여지면서 혼합분유의 특성에 맞춘 제품을 개발해온 덕에 가격이 높더라도 혼합분유를 선호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기에 이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유업체들이 정부가 한EU FTA와 한미FTA를 통해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무관세 전탈지 분유 사용을 기피하고 혼합분유 사용을 고집함으로써 전탈지 분유의 재고가 계속해서 쌓이는 부작용이 심화하고 있다.
한미FTA가 발효한 2011년 이래 국내 우유수급의 두드러진 특징은 재고량이 급격하게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EU FTA와 한미FTA 협상 당시 우리 정부가 유제품 TRQ를 내어줄때에 매년 3%씩 무제한으로 늘려서 수입한다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수입조건을 제공한 데에 따른 것으로 FTA협정문 발효와 동시에 짊어진 무관세 의무수입물량의 부담이 반영된 것이다.
정부가 무관세 유제품을 수입하고 나섰음에도 이미 분유수요가 혼합분유에 맞춰진 유업체들은 무관세 보다 관세율 40%의 맞춤식 혼합분유를 더 선호하면서 분유 재고량은 크게 증가함
국내 젖소마리수와 사육농가수 통계를 살펴보면 최근 들어 만성화한 우유공급과잉 현상은 낙농가들의 우유 공급과잉을 원인으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낙농가들이 과도한 시장개방과 잘못된 협상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애야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2009년부터 사육마리수는 경산우와 착유우 등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낙농가수 또한 6676가구에서 5498가구로 줄어들었다. 전탈지분유 수입량은 많게는 3만톤 적게는 2만톤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 모 유업체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수입 혼합분유와 탈지분유의 영양성분을 비교 실험한 결과, 수입 혼합분유의 단백질 함유율은 28%로 국산 탈지분유보다 105포인트 낮았다. 나쁜 냄새의 정도를 나타내는 이취 강도는 수입 혼합분유의 경우 4.1%포인트로 탈지분유 3.2%포인트 보다 높았다. 맛도 떨어지는 셈이다.
수입 혼합분유의 품질이 국산에 비해 떨어지는 현상은 선박을 이용해 무더운 적도 부근을 지나야 하는 수입 분유의 특성상 장기 수송으로 인해 품질저하를 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김현권 의원은 “요즘 매년같이 나타나는 우유공급 과잉 현상의 원인은 국내 낙농가들의 우유 과잉생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지나친 유제품 시장 개방으로 인한 후유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유업계 제품개발 실태와 원료 조달 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전탈지 분유 중심의 무관세 수입 정책은 정부 세수를 감소시키고 우유공급 과잉을 초래 했다는 점에서 국제협상 실패와 더불어 정부 정책 실패를 잘 드러내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생산자단체들이 이 혼합분유 수입을 우리 낙농의 이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꼽으며, 무분별한 혼합분유 수입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면서 “정부는 유업체들과의 협의를 통해서 혼합분유 수입을 줄이는 대신 남아도는 전탈지 분유 소비를 촉진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생산자단체와 유업체들간 이견으로 논의가 사실상 중단되다시피한 가공용 우유 쿼터제를 하루 바삐 도입해서 우리 낙농정책의 후진성을 시급히 개선하고 국산 우유의 가공을 도와서 우유수급을 활성화해야 할 것”일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