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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교수 칼럼> 나물의 미학(味學)

누가 뭐래도 봄철 음식의 첫머리는 나물이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나물은 그 풍부한 재료의 종류와 레시피의 다양성을 제외하고라도 서양의 샐러드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건강 기능성 식품으로서의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것뿐인가?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봄바람타고 나른해지면서, 멀어지기만 하는 입맛을 되돌리는 데에도 봄나물은 최고이다. 가히, 마음에는 기(氣)를, 몸에는 맛(味)을 주는 봄의 요정이다. 

 

봄나물은 꽁꽁 얼었던 땅속에서 제일 먼저 햇살을 찾아 지상에 나온 녹색의 천사들이다. 나물들은 대부분이 절기상, 우수의 눈 섞인 신선한 빗물에 기지개를 펴고, 세상을 깨우치는 경칩을 시작으로 이미 속이 더운 대지 위를 덮기 시작한다.


차가운 겨울추위 속에서 이미 생명을 잉태하고, 아직도 세상 속 여백을 채우고 있는 잔설을 이겨내고 나오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봄의 향연을 시새움하는 마지막 고행인 꽃샘추위도 이겨내야 한다. 그러하기에 나물은 스스로 자연에 순응하여, 자신을 달구어 뜨거운 기미(氣味)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하여, 나물은 양기(陽氣) 가득한 성미(性味)를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차가운 음기의 세상인 외기(外氣)에 더운 자신의 내기(內氣)로 음과 양의 이치를 완성한 것이다.

 
그래서 맛도 또한 열기(熱氣)를 내는 쓴맛이다. 

 

이제 비로소 자연이, 봄나물 중에서도 첫 나물들일수록 쓴맛을 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추위의 강도가 클수록 쓴맛의 열기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래서 봄철 첫 나물들은 대부분 생 무침보다는 한 번 데쳐, 쓴물을 약간 갈무리한 다음에 버무려 먹는 것이 입맛에 꼭 맞았던 것이었음을…


우리가 봄철에 나물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 역시 차가운 날씨에 움츠렸던 심신을 부드럽게 펼쳐내는데 필요한 것이 열기 즉 쓴맛이었기 때문이다.


고소한 쓴맛의 나물은, 얼었던 혀에 활기를 줌으로서 온 몸의 미각을 피워내 종국에는 입맛도 생생하게 찾게 해 준다.


봄철의 쓴맛은 추위에 소진됐던 우리 몸의 열기를 살려 주는 상약(上藥)임이 분명하다. 특히, 심장과 소장이 약해 몸이 찬 사람에게는 보약임에 틀림이 없다.


더 나아가, 나물의 연한 쓴맛은 위장의 활동에 힘을 주어, 우리가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소화력도 강화시켜준다.


하지만, 근자에 들어 나물을 찾는 사람들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 같다. 그 연유는, 시골의 전통시장에서도 나물팔이는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만큼 나물을 많이 먹었던 민족은 없었는데…
이렇게, 훌쩍 올라버린 물가 탓만 하고, 넘어가기에는 께름한 점이 가슴 한쪽에 남는다.

 

물가가 올라도 입맛은 절약할 수 없다는데, 왜 이렇게 나물을 먹지 않는 것일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오감육식(五感六識)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것이 입맛인데…

 

전통적으로 지녀온 우리 민족의 봄철 입맛을 가로채간 것은 무엇일까?

 

가냘프게 피워 오르는 남촌의 매화향기가 그리운 햇살 든 창가에 앉아 내겐 아직 이국적인 커피 한 잔을 놓고 봄철 쓴맛의 행방을 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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