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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문 칼럼] 식품에 대한 제조물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의 차이

이로문 법학박사·법률행정공감행정사

식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상한 재료가 들어갔고 이 식품을 구입해 섭취한 소비자가 탈이 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 경우에 이 소비자는 식품제조업체에게 어떠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지난 칼럼에서는 사료에 불순물이 들어가 이 사료를 먹은 닭의 산란율이 떨어진 경우에 제조물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한바 있는데 이번에는 제조물책임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적고자 한다.  


제조물책임이란 시장에 유통된 상품의 결함으로 인하여 소비자나 이용자 또는 기타의 자가 인적․재산적 손해를 입은 경우에 그 상품의 제조자나 판매자가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제조물책임법 제3조). 예를 들어 A업체에서 생산한 식품에 첨가해서는 안 되는 첨가물이 들어 있었고 B가 이를 구입해 직장 동료 C와 D가 함께 섭취한 후 모두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러한 경우에 식품 자체의 결함에 대한 책임과 식품을 먹고 발생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나눠 따져봐야 한다.   


제조물 자체의 손해는 제조물책임의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식품 자체의 결함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제조업체를 상대로 하자담보책임과 불완전급부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반면 제조물책임은 제조물 자체가 아닌 확대 손해로 인한 것이고 이 손해는 계약 관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종래의 판례는 제조자가 결함 있는 상품을 만든 때에는 과실을 인정하든가, 또는 개연성이 높으면 상품의 결함과 손해와의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왔으나 이로써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제조물책임법 (2000년 법제 6109호, 2002. 7. 1시행)이 제정되었다. 제조물책임법은 민법 제750조의 일반 불법행위에 대한 특별법으로서의 성질을 가진다. 제조물책임은 제조자의 과실을 묻지 않고 제조물의 결함을 책임의 발생요건으로 하는(제조물책임법 제3조), 이른바 무과실책임이며 일정한 경우에 피해자가 결함의 존재·손해의 발생·결함과 손해와의 인과관계를 추정한다. 


먼저 무과실책임의 의미를 보자. 제조물책임법 제3조 1항에서는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제조물책임을 무과실책임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제조물인 식품의 결함이 제조업자의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소비자는 제조업자에게 제조물책임을 물을 수 있다.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나 일반 불법행위책임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과 다른 점이다. 제조자가 결함 있는 식품을 만들었어도 과실 여부를 두고 법리논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피해자의 보호에 한계가 있었으나 제조물책임법으로 이러한 문제는 해결되었다.  


다음으로 제조물책임법은 일정한 경우에 결함과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다. 일반불법행위책임에서는 피해자가 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제조물책임법 제3조의2에서는 피해자가 (1) 해당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 (2) 제1호의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되었다는 사실 (3) 제1호의 손해가 해당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경우에는 제조물을 공급할 당시 해당 제조물에 결함이 있었고 그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위와 같은 사실이 증명되면 제조업자가 인과관계가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다만,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인하여 그 손해가 발생한 사실을 증명한 경우에는 인과관계가 추정되지 않는다. 


이처럼 식품의 결함으로 인해 식품 자체의 손해 외에 신체 또는 다른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면 식품 자체에 대해서는 채무불이행책임 또는 일반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고, 결함으로 인한 확대손해에 대해서는 불법행위의 특수한 유형인 제조물책임을 묻는 것이 피해자에게는 훨씬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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