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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문 칼럼>식약처의 필로푸드(philofood)를 묻고 싶다

철학(philosophy)의 philo(사랑하다)와 sophy(지혜)의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 어원을 조합해보면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무언가에 대한 철학을 묻는다면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 어떠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과도 같을 것이다.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애정을 가지고 무언가에 대한 원리와 본질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법철학이란 법에 대한 근본원리와 본질을 연구하는 것이고, 인생철학이라고 한다면 인생에 대한 가치와 목적을 연구하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철학을 묻는다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철학에 대한 정의와 같은 답변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철학이란 이름만 가지고는 무엇을 연구하는 지 알 수 없는 학문이라고 정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안전사고에 대한 대응이나 불량식품 단속에 대한 태도를 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아니, 더 나아가 식품철학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식품을 단순히 사람이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음식물로만 보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음식물에 대한 안전에 대한 마인드만 가지고 있다면 식품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과거 멜라민사태가 불거졌을 때 식품에 대한 철학부재가 멜라민사태를 야기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식품철학이 왜 필요한 것일까?


식품은 사람이 생존을 위해 섭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식품철학이 있어야 한다. 식품철학 역시 분명해야 한다. 식약처의 최대 사명이라고 할 수 있는 식품안전 역시 사람의 신체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것으로 식품철학에서부터 출발한다.


식품철학이 분명하다면 식품안전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식품안전에 최고 중점을 둔다 해도 반드시 식품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기계적으로 식품안전에 접근한다면 식품안전정책 역시 기계적일 수밖에 없고, 그러한 식품안전정책은 식품안전사고를 되풀이 하게 된다. 최근 맛가루 사고라든지 불량식품 단속에 대한 접근 과정을 보면 다분히 기계적이라는 생각이 많다. 


식품철학은 비판적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다. 만약 이러한 과정 없이 식품철학의 완성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따라서 외부의 비판에 개방적이어야 하며, 어떠한 비판이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비판에 대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귀는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럴리는 없을 것이고, 사실 그런 일이 알려진다면 시민단체나 국정감사 과정에서 밝혀지고 비판을 면치 못하겠지만 만약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자기 기관에 대해 비판적 기사만 쏟아낸다고 하여 그 특정 언론사 내지는 전문지에만 고의적으로 보도자료를 보내지 않는다면 식품철학의 형성과정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다.


보도자료는 단순히 무엇인가를 알리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비판까지도 수용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도자료는 비판적 과정을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 하나만 식품철학의 토대를 가늠해볼 수도 있다.


식품철학은 인간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기 때문에 식약처는 철저하고 분명한 식품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식품철학을 업체에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외부의 비판에 폐쇄적이어서는 안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진정한 philofood(식품에 대한 철학)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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