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이로문 칼럼>농작물 품목별 입법,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률 중에 전통 소싸움 경기에 관한 법률, 말산업 육성법, 한국 진돗개 보호‧육성법,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김치산업진흥법, 인삼산업법, 곤충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기능성 양잠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 모든 법률의 공통점이 뭘까? 법의 적용 대상이 특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물 전체가 아니라 소, 말 또는 진돗개와 같은 특정 동물이, 모든 식품이나 농작물이 아니라 김치 또는 인삼에 특정되어 있다.


지금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법률안 중에는 버섯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차산업 발전 및 차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등 역시 모든 농작물이 아니라 특정 농작물을 대상으로 한다.


법을 만들 때는 일반성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즉 어떤 특정 대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목적 및 객체를 대상으로 하는 법률을 만든다면 법의 일반성 원칙에 반한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특정 목적 및 객체, 특정인을 대상으로 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이 존재하는데 그 안에서 특정 대상을 규율하는 것이 법체계에 맞지 않다면 별도의 법의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특별법이다.


특별법이라 하여 그 법 자체가 뭔가 대단해서 붙여주는 말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망라하는 법이 아니라 특정 대상만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법보다 특정 대상을 규율하는 법이 우선하여 적용된다. 예를 들어 민법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상법은 특별법이란 명칭을 쓰지 않지만 민법의 특별법이다. 모든 사람 가운데 상인에 대해서는 상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각각의 농작물, 각각의 동물 등을 대상으로 법을 제정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특정 농작물을 대상으로 하는 법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듯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지적은 타당한 측면이 있으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특정 농작물을 특정하여 규율할 사유가 없거나, 특정 농작물에 특별한 성질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다면 법을 만들 실익이 전혀 없다.


그러나 농민이 어떤 특정 농작물을 경작하지 않기 때문에 이 작물의 경작을 지원하기 위한 경우, 특정 농작물의 상품가치가 커서 경작을 장려할 필요가 있는 경우, 우리의 전통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어 이를 장려하기 위한 경우에는 개별 농작물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특정 대상을 규율하는 입법의 경향은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차의 진흥에 관한 법률, 과수농업진흥 특별조치법, 설탕 및 밀가루의 가격조정에 관한 법률, 송아지생산 안정 등 특별조치법, 양계진흥법, 양봉진흥법 등 특정대상을 규율하는 법률이 많다.  

 
일본의 차 진흥에 관한 법률을 생각해보자. 일본에서의 차는 문화적 또는 식생활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일본의 생활이 차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일본은 차문화권에 속한다. 차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개별 법률이 쏟아져 나온다 하여 문제가 있다는 사고는 오히려 세계의 입법 경향에 반한다. 점차 입법은 구체화‧특정화되어가고 있다. 법이 일반성의 원칙에서 출발할 당시는 기본적으로 성문법 자체가 일반화되지 않았고, 법의 일반성‧추상성만으로도 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분화되고, 각각의 영역 역시 깊이가 심화되면서 규율해야 할 대상이 많아졌고, 전문성 역시 강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적‧특정 법률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각각의 법률을 살펴보고 그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여야 하는 것이지 그러한 법률이 많고, 앞으로 또 많을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법체계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다.

 
앞으로 그러한 개별법이 많아진다면 일정 시점에 유사한 법률을 통합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정된 법률 내지는 지금 발의된 법률안들은 그럴 단계까지 이른 것은 아니다.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생각해보자.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양봉산업의 사양길에 접어들고, 누구도 양봉을 하려고 하지 않아 식품산업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 법을 만들 필요성은 충분하다. 만약 꿀을 이용한 산업발전법안을 발의하였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안에 포함시켜야 할 사항이다. 차산업 발전 및 차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안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제정되거나 발의된 법안을 본다면 농식품부에서 걱정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러한 법안이 얼마나 나올 수 있을까? 만약 모든 농작물에 대해 이러한 법안이 발의될 정도라면 우리 농업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해야 할 것이다. 농식품부가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전제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관련기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