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7 (토)

<김진수 칼럼> 이맹희 회장, 비운의 인생여정

지난 14일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84 세로 별세했다.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는 이 회장은 3년 전부터 폐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오다 중국 베이징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우리나라 제일 갑부의 아들로 태어나 36세의 나이에 삼성그룹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던 이 회장의 인생여정은 파란만장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이 회장은 솔직 담백한 성격의 소유자로 미국, 일본에 유학하여 경영자로서의 소양과 자질을 쌓은 인물이었으나 고 이병철회장과의 불화로 자기 뜻을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채 사도세자의 길을 걷고 말았다. 시류를 잘 파악하고 아버지와 마찰이 없었더라면 당연히 삼성의 패권을 차지하여 더욱 훌륭한 삼성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 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3남 5녀 중 장남으로,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일본 동경농업대학, 미국 미시건주립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안국화재에 입사해서 삼성물산과 미풍산업, 중앙일보 부사장 등 삼성그룹의 주요 보직을 맡았다.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사건'의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을 때에는 이 회장이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이 회장은 주요 보직에서 물러났다.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맹희에게 그룹 경영을 맡겨보았으나 6개월도 안 돼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면서 이 회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기도 했다.
 

이병철 회장의 2남인 이창희씨가 청와대에 아버지와 삼성그룹의 비리를 고발하는 탄원서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병철 회장은 장남 이 회장이 연루되어 있다고 오해하고 마음을 멀리하였다. 더욱이 경영 방식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이병철 회장과 대립하고, 한비 사건으로 인해 결국 이병철 회장은 3남 이건희 현 삼성그룹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하게 되었다. 


이병철 회장은 이 회장에게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제일제당 등 3개 계열사에만 주력하라는 주문을 했으나 이 회장은 아버지가 경영에서 떠나 있을 때 그룹을 경영한 공로를 인정해주지 않음에 불만을 품고 외국으로 떠났다. 아버지와 등지고 해외를 떠돌던 이 회장은 이병철 회장 작고 당시 회한의 눈물과 용서를 구했으나 이미 때를 놓친 후회가 되고 말았다.
 

이후 삼성그룹에서 제일제당이 분리돼 장남인 이재현 회장이 경영을 맡았으나 이는 삼성그룹의 유산 분배라기보다 이 회장의 부인인 손복남 CJ그룹 고문이 보유한 옛 안국화재 지분을 이건희 회장에게 넘기고 대신 제일제당 지분을 받는 방식이었다. 이병철 회장 사후 자녀들이 사업을 분리해 독립했지만 이 전 회장은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다.
 

이 회장은 개인적으로 제일비료를 설립해 재기를 꿈꿨으나 실패한 뒤 중국, 몽골 등 해외를 떠돌며 지내고 CJ그룹 경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자녀들과의 교류도 소원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3년 전부터 암 투병생활을 시작했지만 가족이 사는 서울보다 베이징 거주를 고집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인의 별세 소식이 서울에 전해지자, 언론이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해 '전 제일비료 회장'이라는 생전 가장 높은 공식 직함을 사용했을 때 CJ측에서는 고인에게 CJ명예회장 직함을 사용해달라고 주문했다. 언론에서는 오래 전 아버지에게 공식적으로 명예회장 타이틀을 부여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하고 의아해 하기도 했다.
 

고인의 장례식장에는 병석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대신해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문하고 신세계그룹 회장 등 범삼성가 인사들이 연이어 빈소를 찾았다.
 

재계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삼성 일가와 CJ 일가가 화해하게 될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회장은 3년 전 동생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유산분할 청구소송을 제기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고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차명재산을 이건희 회장이 몰래 단독 명의로 변경했다며 4조원 상당의 주식과 배당금을 돌려달라고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상속회복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고 재산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건희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 전 회장은 상고를 포기했고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여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구속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내면서 양측이 화해무드로 돌아섰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제 이 회장도 타계하고 이건희 회장도 병석에 있어 삼성가는 사실상 제 3세 경영체제에 들어서고 있다. 권력의 부침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재력도 세월 앞에는 당해 낼 방도가 없음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삼성가가 결집해서 이 나라의 경제발전에 앞장서고 국민들이 유산을 두고 이전투구를 마다하지 않는 재벌가에 대한 감정이 개선될 수 있도록 금번 이 회장의 타계를 기해 화해의 계기를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라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국가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나아가 세계경제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한층 분발을 촉구해 마지않는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범삼성가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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