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문 칼럼] 동물의약품의 표시상 결함에 대한 제조물책임(2)

  • 등록 2022.09.26 09: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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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문 법학박사·법률행정공감행정사

지난 기고에서 무항생제 유정란을 생산·납품하는 양계업자 갑이 평사(평사) 형태의 축사를 설치하고 산란계를 사육하면서 을 주식회사가 제조하는 엔로플록사신(Enrofloxacin, 플루오로퀴놀론계 항균제)을 주된 성분으로 하는 동물의약품 엔로트릴을 닭에게 투약하였는데, 계란에서 엔로플록사신 성분이 검출되어 납품하지 못하자, 을 회사를 상대로 제조물 책임법상 표시상의 결함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대법원 2022. 7. 14. 선고 2017다213289 판결)에서 대법원은 갑의 손을 들어줬다고 소개한 바 있다. 이번 기고에서는 대법원에서 제조물책임을 인정한 이유를 살펴보고자 하다.

 

첫째, 을 회사가 제조·판매한 엔로트릴은 가축의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동물약품으로, 주된 소비자는 갑과 같은 양계업자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가축 사육업자들이지만 최종적인 소비자는 일반 시민들이다. 따라서 이를 이용하여 생산하는 축산식품의 잔류 동물약품에 의한 오염 여부는 그에 따른 상당한 책임 문제가 수반되는 사육업자에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 사항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동물약품의 전문 제조·판매업자인 을 회사로서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상할 수 있는 것으로, 휴약기간 미준수의 경우 식육 등 축산식품에 약물이 잔류될 수 있어 ‘시간까지 정확히 계산하여 준수’하도록 한 엔로트릴의 권고사항에 비추어도 알 수 있다.

 

둘째,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동물약품 안전사용을 위한 10대 수칙’에서 휴약기간 동안 사료 통, 축사, 사료저장고 등을 완전히 청소한 후 약제가 들어있지 않은 사료와 물만 먹이라는 주의사항을 둔 것도 잔류 동물약품으로 인한 축산식품 오염의 위험성이 축산식품의 생산·판매 및 그 전제 되는 동물약품의 구입·이용에 있어 중요한 고려요소가 됨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 위와 같은 사유들이 직접 소비자인 사육업자들에게 계분을 통한 간접 섭취 등 구체적 사육 환경하에서 휴약기간 준수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관리상 주의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 측 귀책사유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앞서 본 엔로플록사신의 특성, 예상 가능한 사용형태, 그 안전성 혹은 위험성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와 인식의 정도,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 및 그 위험회피를 위한 표시 등 조치의 난이도 및 신뢰 혹은 기대 가능성 등에 비추어,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나마 간접 섭취(투약)에 따른 휴약기간의 변동(조정) 가능성을 전혀 언급하지 아니함에 따른 제조물 책임법상 표시상의 결함 및 을 회사의 책임을 전적으로 배제할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을 회사는 엔로트릴에 ‘평사형 축사에서 사육되는 닭들의 경우 계분 등을 통하여 휴약기간인 12일이 지나도 엔로플록사신이 잔류할 수 있다.’는 취지의 표시를 했어야 한다. 그러나 을 회사는 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표시상의 결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을이 휴약기간이 지나더라도 엔로플록사신이 잔류할 수 있다는 표시를 하였다면 갑이 계란에 엔로플록사신이 검출되어 납품하지 못하게 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갑이 납품한 계란에서 엔로플록사신이 검출된 것은 위 표시상의 결함에 따른 것, 즉 「제조물 책임법」상 표시상의 결함, 표시상의 결함과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기 때문에 을 회사는 표시상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22. 7. 14. 선고 2017다213289 판결).

 

일반적으로 제조물을 만들어 판매하는 자는 제조물의 구조, 품질, 성능 등에 있어서 현재의 기술 수준과 경제성 등에 비추어 기대가능한 범위 내의 안전성을 갖춘 제품을 제조하여야 하고, 이러한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으로 인하여 그 사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대법원 2003. 9. 5. 선고 2002다17333 판결).

푸드투데이 이로문 칼럼니스트 기자 001@foodtoda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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