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사의 배합사료와 기초사료를 먹은 양계농가의 닭들이 난소협착증에 걸려 산란율(産卵率)이 현저하게 떨어진 경우에 양계농가는 사료회사에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실제 이러한 사건이 있었고 이 사료에 어떤 불순물이 함유되었고 또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여 위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채 적어도 그 사료에 어떤 불순물이 함유된 것이 틀림없다 하여 그 사료 제조판매자에게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대법원 1977. 1. 25. 선고 75다2092 판결).
이 사건에서 양계농가는 사료회사에 대해 첫째, 난소협착증에 걸린 닭들 자체가 손해이기 때문에 닭 자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둘째, 닭들의 난소협착증으로 산란율이 저하됨에 따라 양계농가에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도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첫 번째 경우는 일반적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문제이고, 두 번째의 경우는 제조물책임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문제다. 제조물책임은 제조물 그 자체에 대한 손해가 아니라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소비자나 이용자 또는 기타의 자가 인적․재산적 손해를 입은 경우에 물을 수 있는 책임이다.
근대사법의 일반 불법행위에서 예상하지 못한 제조물책임에 관하여 제조물책임법 제정 전에는 판례에서 제조자가 결함 있는 상품을 만든 때에는 과실을 인정하든가(대법원 1970. 12. 26. 선고 69다1772 판결), 개연성이 높으면 상품의 결함과 손해와의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왔으나(대법원 1977. 1. 25. 선고 75다2092 판결), 이로써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제조물책임법 (2000년 법제 6109호, 2002. 7. 1시행)이 제정되었다. 제조물책임법은 민법 제750조의 일반 불법행위에 대한 특별법으로서의 성질을 가지며, 제조자의 과실을 묻지 않고 제조물의 결함을 책임의 발생요건으로 하는(제조물책임법 제3조), 이른바 무과실책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결함의 존재․손해의 발생․결함과 손해와의 인과관계는 증명하여야 한다.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배합사료와 기초사료에 어떠한 불순물이 함유되었고 또 그것이 어떤 화학적 영양학적 내지는 생리적 작용을 하여 이를 사료로 한 닭들이 난소협착증을 일으키게 되고 산란율을 급격 현저하게 저하케한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어도 위 사료로서 사양시험을 한 결과 똑같은 시험결과를 보였고 급식방법이나 계사(鷄舍)관리 또는 사료보관에 어떤 이상이 없었고 사양시험에 제공했던 사료들이 변질되거나 부패한 것도 아니고 또 이건 사료를 급식할 무렵 닭들에 시주한 뉴켓슬 예방주사의 시주방법이나 약품에 아무런 하자도 없어 적어도 그 사료에 어떤 불순물이 함유된 것이 틀림없어 제조과정에 과실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원고가 사육하던 닭들이 위와 같은 현상을 초래하게 된 경우에는 그 사료 제조 판매자에게 불법행위의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판례에 따르면 일단 사료라는 제조물에 불순물이 혼입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난소협착증이 생기고 난소협착증으로 산란율이 저하되었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시험결과, 관련 환경에 이상이 없었다는 점, 시주방법 등에 하자가 없었다는 점, 다른 양계업자 여러 명도 사료제조 공장으로부터 구입한 배합사료와 기초사료를 닭들에 급식한 결과 같은 현상을 나타내어 결국 모두 폐기처분하고 말았다는 사실 등을 들어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위 사건에서 사료 제조업자에게 민법 제750조의 일반적인 불법행위책임을 묻는다면 닭을 폐사시킨 것에 대한 손해배상이지만 제조물책임을 묻는다면 산란율이 저하되어 입게 된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이다. 위 판례는 제조물책임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나온 것으로 일반적인 불법행위책임만 물은 것으로 보인다. 향후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일반적인 불법행위책임을 물어 폐사한 닭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함과 동시에 저하된 산란율에 대해서는 제조물책임에 근거하 손해배상까지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식품 등의 제조물책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상세하게 다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