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국회가 이른바 ‘GMO 완전표시제’를 도입하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법제사법위원회 문턱까지 넘기면서 업계 반발 속에 본회의 최종 의결을 앞두게 됐다.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취지와 함께 과학적 검증 가능성, 원료 수급, 국제통상 리스크를 둘러싼 논쟁도 한층 가열되는 모양새다.
26일 국회 등에 따르면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추미애)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앞서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를 거치며 남인순.임미애.송옥주 등 다수 의원 발의안을 통합·조정한 위원회 대안이다.
고도정제식품·비의도적 혼입까지 포괄…표시의무 범위 대폭 확대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유전자변형 디엔에이(DNA)나 유전자변형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은 일부 고도정제식품까지 GMO(유전자변형식품) 표시 대상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한 데 있다.
현행법은 유전자변형 농·축·수산물을 원재료로 사용해 제조.가공한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에 대해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가공 후에도 유전자변형 DNA 또는 단백질이 남아 있는 식품·식품첨가물로 표시대상을 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여기에 더해 제조·가공 과정에서 DNA·단백질이 남지 않는 고도정제식품이라 하더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식품위생심의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지정한 품목은 GMO 표시대상에 포함된다. 식용유, 전분당, 간장 등이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다.
반대로 유전자변형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식약처장이 정하는 비의도적 혼입 비율 등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비유전자변형식품’(Non-GMO)임을 표시할 수 있는 근거 조항도 신설됐다.
“비의도적 혼입 0.9% 논의”…기준치 두고도 설전
이날 법사위 심사 과정에선 GMO 표시기준과 비의도적 혼입 허용치를 둘러싼 공방도 이어졌다.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언론 보도를 보면 비의도적 혼입 허용 기준을 0.9%로 갈 것 같다는 얘기가 있다”며 “유럽이 1% 안팎, 일본은 그보다 높다고 하는데 국내 기준을 정할 때 현실적인 부분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오유경 식약처장은 “법률에는 비의도적 혼입 비율을 명시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수치는 하위법령에서 업계·소비자단체 의견을 수렴해 정하겠다”라고 답했다.
최 의원은 또 “K-푸드를 외치면서 대표 상품인 라면에 국내산 원료는 거의 쓰이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국내산 비(非)유전자변형 원료를 사용하는 중소·지역 기업에는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제도인 만큼 농식품부와 식약처가 긴밀히 협력해 선도적인 정책을 설계해 달라”고 주문했다.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은 GMO 식품 안전성 논란과 관련해 “국내에서 GMO 식품으로 인한 위해 사례가 보고된 적이 있느냐”고 질의했다. 오 처장은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GMO 식품은 모두 식약처의 안전성 평가를 통과한 것”이라며 “이번 개정은 안전성과 별개로 소비자 알권리와 선택권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추미애 위원장은 GMO 표시기준이 유럽 수준으로 강화되는 것 아니냐고 질의했고, 오 처장은 “퍼센트 기준은 하위법령에서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고 식품위생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하겠다”며 “정부가 사전에 목표 수치를 정해놓고 추진하는 사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업계 “검증 불가 품목까지 표시 확대…행정집행·통상 분쟁 불씨” 반발
식품업계는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자 즉각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과학적으로 검증이 불가능한 식품까지 표시 의무를 확대했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식용유, 전분당, 간장 등은 제조·정제 과정에서 DNA와 단백질이 사실상 남지 않아 현재 기술로는 GMO 여부를 분석할 수 없는데도 이번 개정안은 이들 품목을 식약처 지정에 따라 표시대상에 포함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검출이 불가능한 식품에 표시를 강제하는 것은 행정집행의 실효성 문제를 넘어 국제 통상분쟁의 불씨를 동시에 안는 것”이라며 “표시는 붙지만 검증은 할 수 없는 구조가 소비자 혼란만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의도적 혼입 기준을 ‘식약처장이 정한다’고 규정한 점도 논란거리다. 업계는 “핵심 기준을 하위법령과 고시에 일임하면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향후 기준 변경 때마다 산업 현장이 요동칠 수 있다”며 입법 단계에서 보다 정교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사실상 Non-GMO 원료 사용을 확대해야 하는데, 국내 식품기업이 사용하는 대두·옥수수·카놀라 등 주요 곡물 원료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Non-GMO 원료 물량 자체가 제한적인 데다 가격도 상당폭 높다.
업계는 Non-GMO 전환이 현실화될 경우 원료 가격이 20~70%까지 상승해 제조원가와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특히 해외 원재료 의존도가 큰 식용유·전분당·간장 업종은 즉각적인 공급망 불안과 큰 폭의 원가 부담이 예상된다.
업계의 이러한 우려에 오유경 식약처장은 법사위에서 “원가 상승 우려를 인지하고 있으며, 그동안 수십 차례 현장 의견을 수렴해 왔다”며 “관련 부처와 협력해 원료구입비, Non-GMO 원료 확보 부담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제도는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한 것이며, GMO 안전성에 대해서는 별도로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식품업계는 본회의 통과 이후에도 비의도적 혼입 기준, 표시 대상 품목, 과도기 운영방안 등을 둘러싸고 하위법령 단계에서 ‘2차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식품산업협회, 한국대두가공협회, 한국전분당협회, 한국장류협동조합 등은 “GMO 완전표시제는 알권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검증 불가능·수급 불안·물가 불안이라는 3중 리스크를 동반한 졸속 입법”이라며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합의 없이 제도를 밀어붙이면 소비자 신뢰마저 훼손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27일 열리는 본회의 문턱을 넘길 경우 개정안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 업계와 소비자단체, 관계 부처가 하위법령을 둘러싸고 어떤 정책 조율에 나설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