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100세 시대 건강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누구나 비타민 등 건강기능식품 하나쯤은 챙겨 먹는 시대가 됐다. 특정 연령층이나 질환 관리 목적을 넘어 전 연령대에서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제품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연간 6조원 규모로 성장한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20년 사이 다섯 배나 커졌다. 국내 건강기능식품 산업은 단순한 영양 보충에서 시작해 과학적 연구와 법제화를 거쳐 현재는 개인 맞춤형 건강 솔루션으로 발전하고 있다. 푸드투데이는 창간 23주년 맞아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을 재조명, 우리나라 산업과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궤적을 되짚었다. 이를 통해 건강기능식품이 국민 건강 증진에 미친 영향을 재확인하고 앞으로 나가가야 할 방향을 전망했다.<편집자주>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농업 기반 붕괴...어린이.노약자 영양결핍 심각
국내 첫 건강식품 '원기소' 등장...1980년대 중반까지 대표 영양제로 군림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전국적으로 식량난이 심각해졌다. 전쟁으로 인해 농업 기반이 붕괴됐고,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들의 영양결핍 문제가 심각했다. 당시 한국은 국제연합(UN), 국제보건기구(WHO) 및 미국 등으로부터 구호 식량을 지원받았지만 전반적인 영양 상태를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정쟁 이후 영양결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서울약품공업사의 '원기소'다.
1956년 출시한 원기소는 국내 최초의 건강식품으로 한국의 영양제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기소는 보리 등 곡류에서 추출한 효소 분말을 포함해 소화와 영양 흡수를 돕는 발효 개념이 적용된 건강보조제였다. 당시 한국의 영양상태를 고려해 소화 효소와 비타민, 미네랄을 결합한 종합 영양제의 역할을 했다.
원기소는 부족했던 필수 영양소를 쉽게 보충할 수 있어 큰 인기를 끌며 학교, 군대, 공장 등에서 대한민국 대표 영양제로 군림했다.
1980년대 이후 영양 상태가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다양한 영양제가 등장하면서 원기소의 수요가 줄어들었고 제조사의 부도와 함께 결국 생산이 중단됐다.
◆1960년대 경제 급성장기...쌀 생산량 부족 밀가루 소비 장려
1963년 국내 최초 인스턴트 라면 '삼양라면' 출시...식생활 변화
인공조미료.식품첨가물 섭취로 건강 관심 증가, 비타민제 등장
1960년대는 한국의 산업화와 함께 식품산업이 변화한 시기였다. 정부의 밀가루 장려정책과 함께 라면, 빵, 밀가루 기반 식품이 보급됐다. 또한 비타민제, 인삼가공품과 같은 건강식품의 전신이 등장해 현대 건강기능식품 산업의 기초를 형성한 시기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을 복구하느라 쌀 생산량이 부족해 1964년 정부는 양곡소비절약지침을 통해 절미운동을 전개했고, 1969년에는 쌀을 먹지 않는 날인 '무미일(無米日·쌀을 먹지 않는 날)'을 정할 정도였다.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유입됐고, 정부는 밀가루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1963년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이 출시됐다. 당시 값싸고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식품으로 보급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라면은 밀가루 소비 촉진과 함께 국민 식생활의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됐다. 인공조미료와 식품첨가물이 등장하면서 이에 따른 건강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영양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보충제가 등장했다.

해외 원조를 통해 비타민제가 유입됐으며 국내 제약사들도 비타민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1년 동화제약이 출시한 '박하스'와 1963년 일동제약이 선보인 '아로나민'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으로 소비되던 인삼이 가공식품으로 발전한 시기이기도 하다. 국가 주도의 전매청 인삼사업부가 홍삼의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면서 산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고급 제품으로 여겨져 내수보다 수출 중심 정책이 강조됐으며, 주요 외화 획득 수단 중 하나로 국가 경제 성장에도 기여했다.
◆ 1970년대 서구식 식생활 확산...비만.고혈압 등 건강문제 대두
식이섬유 보충제 관심 증가, 다이어트.장 건강 용도로 발전
홍삼 제품 대중화, 선물용 세트 등장...로열제리 '장수식품' 주목
1970년대는 서구식 식생활이 확산되면서 가공식품 소비가 증가하고 이에 따른 비만, 고혈압, 당뇨 등 건강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시기다. 이에 띠라 건강기능식품 산업도 변화해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거나 식이 조절을 돕는 제품들이 등장했다. 특히 홍삼, 인삼, 비타민제, 로열제리, 식이섬유 보충제 등이 인기였다.
정관장의 초장기 성장기로 홍삼 제품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고 시작했다. 홍삼 제품이 가정에서 섭취하는 건강식품으로 자리 잡고 선물용 세트가 등장해 명절이나 특별한 날 선물로 주고받는 문화가 확산됐다. 특히 고려홍삼농축액, 홍삼차, 홍삼정, 홍삼환 등의 제품이 인기 있었으며 이 제품들은 면역력 강화와 피로회복을 목적으로 소비됐다.
이 시기 서구에서 로열제리가 '장수 식품'으로 주목받으면서 한국에서도 관심이 증가해 홍삼과 함께 대표적인 면역력 강화 및 자양강장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액상형, 캡슐형, 정제형 등 다양한 형태로 소비됐으며 중장년층과 여성들 사이에서 피로 회복, 원기 보강, 피부 건강을 위한 제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또한 서구식 식생활 변화로 인해 변비와 비만 문제가 증가하면서 건강기능식품이 본격적으로 다이어트와 장 건강을 위한 용도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한 시기이다. 메타뮤실(차전자피), 야쿠르트(프로바이오틱스), 사과식초, 녹차, 다이어트 쉐이크 등이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곤약, 해조류, 한천 등이 다이어트식으로 활용됐다.
◆ 1980년대 건강기능식품 본격 성장기...영양강화식품군.특수영양식품 구분 정의
아로나민 골드 국민 건강기능식품으로 자리매김...'항산화 효과' 스쿠알렌 사랑받아
1980년대는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시기로 비타민, 미네랄보충제, 자양강장제, 다이어트 제품, 장 건강 제품이 대중화됐다. 이 시기에는 경제 성장과 함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고 특히 서구식 식생활 확산, 운동 문화 정착, 웰빙 트렌드가 건강기능식품 시장을 키우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직장인의 업무 강도가 높아졌고 피로 회복과 건강 유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일동제약의 아로나민 골드는 국민 건강기능식품을 자리 잡으며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피로 회복, 신경통 완화, 만성 피로 개선 효과로 널리 알려지면서 직장인, 중장년층, 수험생들에게 필수 보충제로 인식됐다. 아로나민 골드의 성공 이후 여러 제약사에서 비슷한 피로 회복제 및 종합비타민을 출시했다.
심해 상어 간에서 추출한 스쿠알렌도 인기를 끌었다. 신진대사 촉진, 항산화 효과, 콜레스테롤 개선, 피부 건강, 노화 방지 등의 효능이 강조되면서 중장년층과 노년층을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단순한 스쿠알렌 캡슐뿐만 아니라 피부 보습을 위한 오일 제품과 비타민 복합 제품이 등장하면서 더 다양한 소비층을 확보하기도 했다.
1988년에는 영양강화식품군과 특수영양식품으로 구분돼 정의되는 등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됐으며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능성 식품 및 보충제 산업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 1993년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 8000억 급성장
과다경쟁.허위광고 증가...건강보조식품 판매업종 신설
1990년대는 국내 식품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급성장한 시기다. 경제 성장, 건강 트렌드 확산, 기능성 식품 연구 발전 등이 맞물리면서 건강기능식품이 식품산업의 주요 카테고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정부의 제도 정비와 함께 건강기능식품의 대중화가 가속화됐다.
식품업계는 비타민, 홍삼, 유산균, 기능성 음료 등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해 신사업으로 확장에 나섰으며, 1989년 43개사 247개 품목에 불과했던 건강기능식품 품목은 1990년대 중반에는 143개사 1377개 품목으로 증가했다. 이로 인해 1980년대 중반 50억원이었던 시장 규모는 1993년 8000억원 규모로 빠르게 성장했다.

1990년대부터는 정관장이 프리미엄 건강식품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홍삼 시장을 주도했다. 특히 홍삼이 면역력 강화와 피로 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홍삼정' 품귀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약국과 대형 마트에서는 홍삼정이 입고되면 몇 시간 내에 매진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홍삼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 홍삼 재배 농가가 증가하고, 정부에서도 홍삼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을 확대했다. 정부는 홍삼 제품을 전략적인 수출 품목으로 지정하고, 해외 홍보를 지원했다.
홍삼정이 품귀현상을 겪자 수많은 기업들이 홍삼 관련 제품을 출시했다. 저가 홍삼 제품이 난립하면서 품질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부 업체는 홍삼이 암, 당뇨, 고혈압까지 치료할 수 있다고 허위 광고해 논란이 됐으며, 이같은 문제는 홍삼 제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많은 기업들이 건강기능식품 사업에 진출하면서 과다경쟁이 심화되고 무리한 마케팅과 허위.과장 광고 문제가 증가했다. 특히 면역력 증진, 다이어트 효과, 질병 치료 등을 과대하게 홍보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1994년 식품위생법을 개정해 건강보조식품 판매업종을 신설하고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 2002년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제정...2004년 본격 시행
개별인정형 원료 제도 도입...식품업체, 건기식 시장 진출 이어져
코로나19 팬데믹 건강 관심도 극대화...온라인 채널 매출 급성장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 6조440억원...2020년 대비 116% 증가
2000년대는 웰빙, 기능성 식품, 가정 간편식(HMR), 다이어트 식품 등 다양한 식품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건강기능식품의 성장을 견인했다. 소비자의 건강 관심 증가, 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의 융합, 기능성 원료 연구 확대 등이 맞물리면서 건강기능식품 산업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소비자의 건강 관심도를 극대화시킨 계기가 됐으며 건강기능식품이 선택이 아니 필수 소비재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또한 비대면 소비 확산으로 온라인 채널에서 매출이 급성장했다.
2002년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제정'이 제정되면서 건강기능식품의 개념이 명확해지고, 기능성 표시 및 제조.판매 기준이 체계적으로 마련됐다. 건강기능식품법은 2003년 8월 본격 시행됐으며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2003년 12월과 2004년 1월에 각각 공포됐다.
건강기능식품법 중에서도 개별인정형 원료 제도 도입은 건강기능식품 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핵심 제도로 자리 잡는다. 고시형 원료 외에도 루테인, 밀크씨슬, 가르시니아캄보지아 등 다양한 기능성 원료 시장이 형성돼 개별인정형원료 시장 규모는 지난 2005년 83억원에서 2023년 기준 7409억원으로 90배 이상 증가했다.
단순한 영양 공급을 넘어 특정 건강 기능을 강화한 제품이 인기를 얻기 시작해 면역력 강화, 혈행 개선, 항산화, 체지방 감소 등 기능성을 강조한 제품 출시가 잇따랐다. 기존 식품업체들은 기능성 원료를 활용해 건강기능식품 시장에 속속 진출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다이어트 붐이 일면서 체중 감량과 관련된 건강기능식품 수요도 증가했다. CJ제일제당의 '팻다운', 대상 '칼로컷' 등 다이어트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확대됐다.
바쁜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가정간편식 시장이 급성장하고 건강기능식품도 알약.캡슐형 제품에서 액상.젤리.음료 등 간편한 형태로 변화했다.
건강기능식품이 일시적 유행이 아닌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자리잡으면서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2020년 5조1750억 원에서 2024년 6조440억 원으로 116% 증가했다.
◆ 유전자 분석, AI 건강관리 등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시대 도래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제도가 시행되면서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제도는 개인의 건강 상태, 유전자 정보, 생활 습관 등을 기반으로 맞춤형으로 건강기능식품을 제공하는 제도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4년간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1월 3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기존의 일반 건강기능식품보다 개인 맞춤형 솔루션이 제공되면서 불필요한 영양소 섭취가 감소하고, 유전자 분석, 장내 미생물 검사 등을 활용한 정밀 건강 관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장이 향후 주요 트렌드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시장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기존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IT기업, 스타트업 등도 시장에 진입해 기업들의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한글과컴퓨터는 지난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다고 발표하며, 맞춤형 건강검진 서비스에 진출했다. 또한 지난 2022년 가천대 노화임상영양연구소와 바이오 헬스케어 사업 협약을 체결,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른 분석 결과를 토대로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영양제 등을 출시할 계획이다.
AI 건강 분석을 통한 구독형 맞춤 건강기능식품 서비스 확대와 온라인 헬스케어 플랫폼을 활용한 비대면 건강기능식품 추천 서비스 활성화 등 유통.판매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 확보, 개인정보 보호, 법.규제 정비, 가격 부담 등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업계 관계자는 "맞춤형 건강기능식품은 유전자 분석, 웨어러블 기기 기반 AI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기존 건강기능식품보다 더 효과적인 개인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면서도 "안전성과 효과성 확보를 위해 추가적인 장기 임상 연구, 데이터 보호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