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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콜라 한 캔에 세금 55원?…4년 만에 다시 불붙은 ‘설탕세’

비만·당뇨 급증, OECD 최저 조세부담률 속 설탕세 논란 재점화
120개국 도입, 국민 58.9% 찬성에도 산업계 반발·역진세 우려 과제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비만과 당뇨 등 만성질환이 급증하고, OECD 최저 수준의 조세부담률 속에 건강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설탕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미 120여 개국이 시행 중인 세계적 흐름에 헬시플레저 열풍이 더해지며, 한국도 제도 도입 여부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 청소년 세 명 중 한 명이 WHO 권고치를 초과해 당류를 섭취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 차원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설탕과다사용세(설탕세) 국회토론회’에서 던진 발언이다.

 

설탕세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강병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가당음료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산업계 반발과 사회적 합의 부족으로 임기 만료 폐기된 바 있다. 그러나 헬시플레저 확산, 초고령사회 도래, 만성질환 증가라는 환경이 맞물리며 4년여 만에 다시 불이 붙었다.

 

왜 다시 설탕세인가: 만성질환 급증·건강 불평등 심화

 

서울대 윤영호 교수(건강문화사업단장)는 발제에서 “남성 비만율은 20대에서 꾸준히 증가해 2023년 43.9%에 달했고, 여성 20~30대 비만율도 전년 대비 4~5%p 상승했다”며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 청소년 세 명 중 한 명이 WHO 권고 기준(하루 당 50g, 권장 25g)을 초과 섭취 중”이라고 지적했다.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이미 연 15조6천억 원(2021년 기준)으로, 흡연(11조4천억), 음주(14조6천억)을 넘어섰다. 저소득층일수록 가공식품 의존도가 높아 건강 불평등도 확대되고 있다.

 

윤 교수는 “설탕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건강 불평등 해소와 예방 중심의 건강 사회로 전환하는 투자”라고 강조했다.

 

해외는 이미 120여 개국 시행…소비 감소·질환 예방 효과

 

세계보건기구(WHO)는 2016년부터 설탕세 도입을 권고해 왔으며, 현재 영국·프랑스·멕시코 등 전 세계 120여 개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설탕세를 도입한 이후 첨가당 음료 판매량이 33% 줄고, 음료 내 설탕 함량은 46%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멕시코 역시 가당음료 소비가 10% 이상 줄면서 비만율과 당뇨병 환자 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포르투갈에서는 고당 음료 소비가 6% 줄어든 반면, 저당 음료 소비는 18% 늘어나는 대체 효과가 나타났다. 뉴질랜드의 경우 설탕세 시행 후 남성의 당뇨 발병률이 32.7%, 여성은 26.7% 감소한 것으로 보고됐다.

 

윤영호 교수는 “가당음료의 가격탄력성이 -1.2 수준으로, 가격이 10% 오르면 소비는 12% 줄어든다”며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가격 변화에 민감해 건강 개선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쟁점① 부담금 vs 조세, 어디에 귀속할 것인가

 

강지아 변호사(사단법인 온율)는 “설탕세를 조세로 부과할지, 아니면 특별부담금으로 설계할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밝혔다.

 

조세 방식으로 도입할 경우 국세나 지방세 형태로 일반 재정에 편입되지만, 부담금 형태로 운영하면 담배에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처럼 별도의 기금에 적립돼 공익사업 재원으로 활용된다.

 

강 변호사는 “설탕세는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는 만큼 부담금 형태가 타당하다”며 “납부의무자는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이 제품 재조정을 통해 건강한 산업구조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쟁점② 과세 범위…음료만? 빵·과자도?

 

과세 대상 범위는 논란의 핵심이다. 업계는 “음료만 겨냥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발한다. 반대로 법학자들은 “혈당 상승 속도가 빠르고, 주 소비층이 청소년인 만큼 우선 가당음료에 한정하는 것이 필요 최소한의 규제”라고 본다.

 

강 변호사는 “제품 유형별 유해성 정도와 주요 소비자층의 연령, 주식 대체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과세 범위를 필요 최소한으로 설정해야 한다”며 “예컨대 가당음료에 한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당류가 들어간 음료는 일반 식품보다 혈당을 빠르게 높이고, 주식 대체가 어렵지만 유아와 청소년이 주요 소비층인 만큼 규제 필요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업계가 기존 제품을 재조정해 설탕 함량을 줄이거나 용량을 축소하고, 저당 대체품을 확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유예기간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쟁점③ 역진세·조세저항…저소득층 부담 어떻게 완화하나

 

설탕세는 본질적으로 간접세이기에 소득 대비 부담률이 저소득층에서 더 높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우선 세수 일부를 ‘건강포인트’ 형태로 환급해 소비자가 친건강 식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최근 조사에서 국민의 71.9%가 이에 찬성 의사를 보였다.

 

또한 해외 사례처럼 보조금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미국은 저소득층의 건강식품 구입을 지원하는 ‘더블 업 푸드 벅스(Double Up Food Bucks)’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국은 학교 아침급식 프로그램을 통해 취약계층 아동의 영양을 보완하고 있다.

 

아울러 확보된 재원을 청소년 비만 예방, 노인 돌봄, 지역 의료격차 해소 등 건강 사회간접자본(SOC)에 재투자하는 방안도 제안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활용 방안이 마련돼야 설탕세가 단순한 조세를 넘어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실질적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승필 한국외대 교수는 “설탕세를 일반 재정이 아닌 건강 기금으로 투명하게 운영하고, 재원을 취약계층 건강 지원에 재투자한다면 역진성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설탕세 도입에 힘을 싣고 있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지난 5월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8.9%가 설탕과다사용세 도입에 찬성했다. 특히 건강보험료 인상보다 ‘건강세’ 부과를 더 선호한다는 응답이 80%를 넘었다.

 

전문가들은 “국민 다수가 건강을 명분으로 한 세금에는 동의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세수 활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건강증진에 재투자한다면 조세저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쟁점④ 산업계 반발…제품 재조정 유예기간 필요

 

식품업계는 설탕세 도입을 두고 ‘기초 생필품에 대한 징벌적 규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고용 감소와 매출 하락, 물가 인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에 대해 토론회에서는 영국 사례처럼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설탕 저감 기업에는 세제 혜택과 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등 연착륙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영국은 2016년 설탕세 도입을 발표한 뒤 실제 시행까지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이 과정에서 음료업계가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서 가당음료의 당 함량을 평균 11%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설탕세는 단순한 세금 논쟁이 아니다. 비만·당뇨 등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절감, 국민 건강권 보장, 건강 불평등 해소라는 공익적 가치를 담고 있다.

 

다만 과세 범위·방식·재원 활용에 대한 정교한 설계, 산업계 충격 완화, 저소득층 역진성 보완책이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