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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2차 3차가 있었을까

조선시대에도 2차와 3차가 있었을까? 어른들 앞에서는 왜 고개를 돌리고 술을 마시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선시대에는 술은 한 자리에서 마시고 옮겨 마시는 것은 사양했다. 밤이 늦도록 열어놓은 술집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2차는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상례였다.

코리아푸드엑스포(KFE2008) 제2전시장 ‘향(香)에 취하다’ 코너에서는 우리 고유의 전통식품 제조 기술을 보유한 전통명인이 만든 최상의 차와 전통주를 마시고 향음주례에 관해서도 배울 수 있다.

향음주례는 조선조 유생들이 음주가무를 즐기는 향촌의례로, 고대 예기(禮記)의 관혼상제향상견례(冠婚喪祭鄕相見禮)에 예시돼 있다.

향음주례의 시작은 ‘첫잔은 거절하지 않는다’이다. 서먹한 분위기를 없애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어른 앞에서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는 주도를 행하는 경우 긴장감을 놓치지 않아 실수를 줄이게 된다.

조선시대 선비에게도 주량이 정해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일불(一不), 삼소(三少), 오의(五宜), 칠과(七過)라고 하는 주량의 명칭이 있었다.
즉, 7잔 이상은 과한 것이니 마시지 말라는 뜻인 것이다.

잔은 씻어서 돌리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위장질환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의 감염을 방지할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