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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 환율급등에 '좌불안석'

밀가루, 설탕, 전분 등을 생산, 공급하는 식품소재 업체들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달러 환율을 못 견디고 곡물 수입을 일시 중단하거나 수입물량을 축소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본격적인 가격인상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 삼양사, 한국동아제분, 대한제분 등은 밀가루와 설탕, 전분의 원료가 되는 밀, 옥수수 등 곡물 수입을 일시 중단하거나 수입물량을 축소하고 있으며 일부 업체는 가격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밀가루, 설탕 등 식품 원자재의 가격인상은 곧바로 가공 식품의 원가상승 요인으로 작용, 가공식품의 가격도 덩달아 오를 것으로 보여 물가상승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 식품업체인 CJ제일제당은 올 상반기 들여온 수입 곡물 재고가 바닥날 때까지 곡물수입을 잠정 중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남아시아, 호주 등지에서 원당을, 미국에서 원맥과 옥수수를 연간 10억달러 어치 수입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수입할 당시 원.달러 기준 환율이 938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에 비해 무려 60%나 수입 원가가 오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태라면 회사가 생산을 중단하고 문을 닫지 않는 한 가격인상을 검토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탕 제조회사인 삼양사는 당장 곡물수입을 중단하지는 않지만 수입 물량을 줄이기로 했다. 이 회사는 설탕의 원료인 원당을 과테말라, 호주, 태국 등지에서 들여오고 있다.

옥수수로 전분을 생산, 공급하는 대상은 미국이나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에서 옥수수를 수입하고 있다.

이 회사는 바이오 제품과 가공식품을 연간 1000억원 가량 수출하고 있어 수출로 받은 달러를 수입 곡물 대금으로 상쇄하면서 환율 급등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

대한제분은 미국과 호주, 캐나다 등지에서 밀을 연간 60만t, 2억달러 어치를 수입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 7월 환율 안정을 전제로 가격인하를 단행했다"면서 "연초에 비해 달러가치가 400원이나 올라 연간 수입물량을 기준으로 보면 환차손이 무려 80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매달 곡물을 들여오는 상황에서 갑자기 수입을 중단하거나 축소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그는 "환율 때문에 곡물수입을 중단하고 기초 식품인 밀가루를 공급하지 않는다면 더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면서 "환율 급등이 장기화하면 가격인상 외에는 대안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동아제분도 환율급등으로 심각한 경영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 호주, 캐나다 등으로부터 연간 56억t 가량의 밀을 100% 달러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수입하고 있다.

이 회사 역시 대한제분과 비슷한 규모로, 환율급등에 따른 환차손은 8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환율상승 때문에 수입을 중단한다면 금융 파동이 식량파동으로 확대될 수 있다"면서 "결국 가격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가격인상 폭과 시기에 대해서는 "환율 폭등에 따른 원가상승 폭이 50-60%에 이른다"면서 "하지만 구체적인 가격 인상폭과 시기를 말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이 회사는 곡물수입 물량을 줄이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식품업체들은 최근 환율 급등에 대해 "외환 시장이 미쳤다"면서 "환율을 예측할 수 있어야 대책을 세울 텐데 지금으로서는 속수무책"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가격인상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물가 불안을 우려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