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노태영기자] 지역의 맛은 곧 그 땅의 정체성이다. 같은 김치라도 산지에 따라 염도와 숙성 방식이 다르고, 같은 국밥이라도 육수와 고기, 양념의 배합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는다. 골목의 작은 식당에서 시작된 한 끼, 제철 농축수산물로 차려낸 밥상, 세대를 거쳐 내려온 손맛에는 그 땅의 기후와 역사, 산업 구조, 주민의 삶이 응축돼 있다.
표준화된 프랜차이즈 메뉴가 일상이 된 시대, 소비자는 이제 ‘어디서나 같은 맛’이 아닌 ‘그곳에서만 가능한 맛’을 찾는다. 이는 로컬이 다시 경쟁력이 되는 시대임을 방증한다.
푸드투데이는 창간 24주년을 맞아 ‘K-로컬푸드 여행’ 시리즈를 통해 전국 각지의 대표 농산물·축산물·수산물과 이를 활용한 향토음식을 조명한다. 산지 생산 현장과 가공·유통 구조, 외식업계의 메뉴 전략, 지자체의 먹거리 정책까지 입체적으로 분석해 단순한 맛집 탐방을 넘어 지역 먹거리 생태계를 짚는다. 로컬푸드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 콘텐츠 확장, 청년 창업, 푸드테크 접목으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살펴본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중앙부와 동북부에 위치한 충북 충주시는 월악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산간분지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남한강·달천강·요도천이 관통하는 수자원 풍부한 내륙 도시로, 이러한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다양한 향토 음식 문화가 발달해 왔다. 그 중심에 있는 대표 별미가 바로 ‘꿩요리’다.
충주가 꿩요리의 본고장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지리적 요충지라는 조건과 함께 왕의 휴양지였던 역사적 배경이 작용했다. 특히 수안보는 문경새재와 충주를 잇는 길목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와 상인들이 반드시 거치던 교통 요지였다. 험준한 산세와 풍부한 자연환경은 야생 꿩 서식에 적합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식문화로 이어졌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가 욕창 치료를 위해 수안보 온천을 찾았고, 이때 꿩요리를 즐겨 먹은 것이 계기가 되어 ‘왕의 온천’ 수안보와 꿩요리가 결합된 지역 문화가 형성됐다.
현재 수안보의 ‘꿩요리 거리’는 197~80년대 정책적 육성의 결과다. 1970년대 후반 지역 농가가 대체 소득원으로 꿩 사육을 시작했고, 1983년 ‘주정산산골가든’이 전문 꿩요리를 선보이며 대중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1990년대 초 대장군식당 박명자 씨가 꿩요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지역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질긴 육질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꿩 코스요리’는 수안보만의 독창적인 식문화다. 꿩을 부위별로 나눠 회, 샤브샤브, 만두, 전 등 8가지 코스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며, 특히 신선한 꿩 회가 중심 메뉴로 꼽힌다.
꿩은 4~6월 산란 후 최소 5개월 이상 사육해야 식용이 가능하며, 지방 함량이 극히 낮은 고단백 식재료다. 신선도가 핵심인 만큼 당일 손질·소비가 원칙으로, 대부분의 전문점이 예약제로 운영된다.
대표 메뉴인 꿩 회는 붉은빛의 윤기 있는 육질과 담백한 풍미가 특징이다. 고추냉이 간장에 곁들이면 부드럽게 녹는 식감을 느낄 수 있으며, 사과를 활용한 ‘꿩 사과초밥’은 초심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메뉴로 꼽힌다.
이외에도 산나물과 곱게 간 꿩고기를 얹어 부친 꿩산나물전, 꼬치, 만두, 불고기, 수제비 등 다양한 응용 요리가 코스 형태로 제공되며 지역 식재료와의 조합을 통해 계절성을 강조한다.
충주시는 이러한 향토 음식을 관광 자원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 꿩요리 특화 거리 조성과 함께 지역 축제·온천 관광과 연계한 체류형 관광 전략을 추진 중이다.
대표적으로 수안보온천관광협의회가 주관하는 ‘수안보 온천제’에서는 꿩 산채비빔밥 시식 행사(약 800인분)와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가족 단위 관광객 유입을 이끌고 있다. 또한 꿩 신메뉴 개발 시식회, 타 지역 벤치마킹, 음식점 서비스 교육 등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 식품·외식 산업에서 로컬 식재료 기반 스토리텔링과 웰니스 식문화가 주요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꿩요리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저지방·고단백이라는 기능적 가치에 지역 서사를 결합할 경우 차별화된 미식 관광 콘텐츠로 확장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