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한식세계화 추진단이 출범한 것도 벌써 5년째 접어들고 있다. 투입된 예산과 성과를 기초로 평가하면 어느 정도의 점수를 얻을 수 있을까?2009년부터 본격 추진된 한식세계화 관련 사업 총 예산은 770억원에 가깝다. 한식 세계화 예산은 홍보비용이 너무 과다하다는 비판과 함께 영부인 예산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해외에 진출하는 한식당 사업에 농수산물유통공사가 20여억원의 예산을 편성하여 이를 추진하였으나 성과는 거의 없다.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루아침에 한식이 세계화되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된다. 정부에서는 한식세계화란 목표를 마치 몇 년이라는 단 기간 내에 달성할 수 있는 것처럼 추진하였다.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고 했던 탓에 거시적 안목 보다는 미시적 관점에 매몰되었다.2013
2013년 3월1일은 제94주년 삼일절이다. 일제 강점기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기미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의거이다. 기미독립운동 또는 3·1 인민봉기라고도 부른다. 대중화·일원화·비폭력의 3원칙에 따라 진행하려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한민족 독립운동 이었다.‘손병희’ ‘한용운’ ‘이승훈’ 등 민족대표 33인이 주도한 이 만세 운동은 만세성명서에 직접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직접, 간접적으로 만세 운동의 개최를 위해 준비한 이들까지 합쳐서 보통 민족대표 48인 또는 스코필드를 포함 민족대표 49인으로도 부른다. 이들은 모두 만세 운동이 실패한 후에 구속되거나 재판정에 섰다.삼일절 하면 가장먼저 생각나는 인물이 유관순열사이다. 유열사는 1902년 3월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191
말을 하거나 음식을 씹을때에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턱관절이다. 그러나 턱관절에 디스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디스크는 턱관절사이의 움직이는 곳에서 턱과 머리뼈의 마찰을 줄여준다.주로 오징어를 많이 씹거나 딱딱한 음식을 많이 먹은 후에 통증이 심해져서 치료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다. 입이 잘 안 벌어지고 통증도 심하고 음식을 씹을 수가 없는 증세다. 음식을 씹을 때에 턱관절에서 소리가 나기도 하고 귀속에서 소리가 나기도 하며 두통이나 편두통이 오는 경우도 있다.보통 하루나 이틀이면 점점 가벼워지면서 통증이 감소가 된다. 그러나 턱관절의 통증이 감소가 되지 않는다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경우가 있는지 확인을 하여 보아야 한다.턱관절의 통증은 왜 오는 것일까?가장 큰 원인은 주로 아픈 쪽의 턱관절을 무리하게 써서 그쪽의 근
생몰 연도1575~1641년/재위 기간1608~1623년선조의 둘째아들로, 공빈 김씨의 소생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서울을 떠나게 되자 피난지 평양에서 서둘러 세자에 책봉되었고, 선조와 함께 의주로 가는 길에 영변에서 국사권섭(임시로 나랏일을 맡아봄)의 권한을 받았다.전쟁동안 강원도·함경도·전라도 등지에서 의병 모집 및 군량 조달 등의 활동을 전개해 난의 수습에 노력하고, 서울이 수복된 뒤 설치된 군무사의 업무를 주관했다.즉위 후에는 자주적·실리적 외교로써 명·청 교체의 국제 정세에 대처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수취 제도의 모순이 심해지자 기존의 공납제의 폐단을 조정하고자 경기도에 대동을 실시했다. 조세제도를 공평하게 하기 위해 호패법과 양전을 실시하여 재원 확보에 노력했다.선조말에 시작한 청덕궁 재건 공사를 끝내고, 경덕궁·인덕궁
식품정책은 얽힌 사안들이 많기 때문에 먼저 거시적인 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려놓고 구체적인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식품산업이 미래의 핵심 산업임을 고려할 때 거시적 안목은 더더욱 중요하다. 식품정책은 단계적으로 보면 식품의 생산·가공·유통·소비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정책, 영역별로 보면 농수산업·식품산업·외식산업에 대한 정책이 필요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음식문화에 대한 정책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 식품정책은 크게 식품산업정책과 식품안전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식품산업과 식품안전이 별개의 영역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산업과 안전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식품산업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식품안전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식품산업발전의 의미가 없으며 식품안전에만 치중하면 규제 중심이 되어 식품산업은 발전할 수
식품산업은 좁은 의미의 제조업에서 이제는 연계산업을 함께 조망 할 필요가 있다. 직접 관련된 산업을 보면 1차 산업인 농축산업, 식품소재의 전처리산업, 가공업과 외식산업, 그리고 상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유통업, 원.부재료 및 완제품의 저장사업, 등이 포함 될 것이며 지원 분야로 식품기계제작업 및 포장산업, 수송업 등이 망라되는 거대 산업군이다. 식품가공산업, 외식산업, 그리고 유통업만 포함해도 전 매출액이 257조원에 이르며 농산물울 포함하면 근 300조원에 달하게 된다.따라서 식품.외식산업은 한정된 산업 개념에서 연관 산업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며 식품 외식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제시된 모든 분야가 망라되어 동반 성장해야 국가적으로 최대의 효율을 기대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래 정부에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인 일자리 창출에서 식품산업의
요즘 어린이,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믿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얼마나 될까?우리 어렸을 때는 길거리 음식이 거의 없어 부모님이 해 주시는 간식을 먹고 자랐는데 요즘 아이들은 맞벌이 부모와 바쁜 학업으로 인해 인스턴트식품과 길거리 음식을 주로 섭취해 건강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나트륨은 체내에서 세포내외의 수분평형과 산-염기평형을 조절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무기질로서 세포외 액의 나트륨 농도는 늘 일정하게 유지된다. 즉 나트륨의 섭취량이 많으면 여분의 나트륨이 물과 함께 소변으로 배설되고, 섭취량이 적으면 신장에서 나트륨이 보유돼 배설이 감소된다.땀을 많이 흘리거나 설사를 오랫동안 하였을 때, 이뇨제를 장기 복용하였을 때 나트륨과 수분이 결핍돼 구토, 근육무력증, 근육경련, 식욕부진, 두통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그러나
호박의 기원열대 및 남아메리카 원산이며 널리 재배한다. 한국에서 재배하는 호박은 중앙아메리카 또는 멕시코 남부의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동양계 호박(C. moschata), 남아메리카 원산의 서양계 호박(C. maxima), 멕시코 북부와 북아메리카 원산의 페포계 호박(C. pepo)의 3종이다. 이 중 동양계 호박은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지로 전파된 시기가 가장 이른 것으로 추정되며 예로부터 애호박 ·호박고지용 ·호박범벅 등으로 이용되었다. 동양계 호박은 과실이 크고 익으면 과피가 황색이 된다. 호박의 성분과 효능 및 효과1) 녹말 및 식이섬유호박은 과채류 중에서는 녹말 함량이 가장 많아 감자 ·고구마 ·콩에 이어 칼로리가 높아 전시에는 대용식으로 재배가 많다. 식이섬유도 풍부해 장내에 유용한 미생물의 성장을 돕는 효능도 있다. 호박은 식이섬유로 인해 식감이 부드
견갑대는 많이 들어본 단어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견갑통, 어깨질환, 오십견 등의 통증에 대한 내용은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견갑대는 어깨질환에 많은 영향을 준다.그렇다면 견갑대는 무엇인가?견갑대는 견갑골, 쇄골을 말하며 여기에 상박, 상지가 연결되어 있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의 팔은 튼튼하게 붙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세히 본다면 몸통에서 떨어져 있으며 겨우 붙어 있는 것이다. 견갑대가 몸통의 뼈와 연결된 곳은 턱아래의 몸통의 흉골과 쇄골이 만나는 부위뿐이다 다른 부위는 근육, 인대, 힘줄로 단단하게 연결이 되어 팔을 마음대로 움직여도 팔이 빠져 나가지 않는다. 다른 부분은 근육에 의하여 척추와 갈비뼈에 붙어 있다.좀더 세부적으로 본다면 견갑골은 등의 뒤쪽 상부에 붙어 있다. 삼각형의 모양으로 팔을 움직일 때마다 자유롭게
생몰 연도1552~1608/ 기간1567~1608년중종의 일곱째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셋째아들로, 명종이 후사 없이 죽자 조선의 14대 왕으로 등극했다. 재위 기간 동안 사림정치가 확립되고 이후 붕당정치가 시작 되었으며, 임진왜란 · 정유재란이 발발했다. 7년간에 걸친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되어 경작지가 크게 줄어들자 이를 회복하고 전쟁으로 소실된 토지 대장을 재정비하기 위해 양전을 실시하는 한편 전쟁중에 명군의 식량 조달을 위해 실시했던 납속을 더욱 확대했다. 납속책의 실시는 부유한 상민 · 천민의 신분 상승을 가능하게 해 조선 후기 신분제 변동의 한 계기가 되었다. 이시기에 이순신, 곽재우, 율곡 이이, 송강 정철 등의 영웅과 석학들이 활약했다. 주자학에 조예가 깊었고, 서화에도 뛰어났다. 전란 수습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1608년에 생을 마감했다.조선왕조실록 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