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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권에 머물던 구제역이 방역관리지역을 벗어나 예천과 영양 지역으로 확산,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발생건수가 이미 30여건을 넘어섰고 대상도 돼지에서 소까지로 확대됐다. 게다가 지난 8일에는 전북 익산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발생, 그야말로 초비상 상태다.

방역당국은 지난달 29일 구제역 첫 발생 이후 발생 농장을 중심으로 위험지역(3km), 경계지역(3~10km), 관리지역(10~20km)을 설정하고 긴급 방역과 함께 가축 10만마리를 살처분했다.

하지만 안동에서 21km 떨어진 예천군 호명면, 27km 거리인 영양군 청기면 한우농가에까지 번져 허술한 관리지역 방역체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구제역 발생농장과 역학적으로 관련이 있어 가축을 예방적 차원에서 매몰 처리한 경북 영주시 평은면 한우농장 1곳과 봉화군 법전면 한우농장 1곳에 대한 수의과학검역원의 정밀검사 결과, 구제역으로 확인됐다"고 9일 밝혔다.

이 때문에 가축 9만 마리를 추가로 살처분 및 매몰해야 할 판이다. 지난 2002년 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가 빚어지면서 가축 16만 마리를 살처분 했던 때보다 더 비관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뚜렷한 예방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백신을 보유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현재 국내에는 30만 마리를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이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구제역이 확산될 경우를 대비한 170만 마리 분량의 백신이 영국 항원은행에 비축돼 있다. 이를 합하면 정부의 보유량은 총 200만 마리분이다. 이런데도 백신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는 지난 7일 열린 청와대 국무회의에서도 나왔다. 일부 부처 장관들은 이 대통령 말이 끝나자 구제역 `살처분`과 관련해 몇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구제역이 발생할 때마다 `살처분이 너무 많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그것이었다.

이로 인해 보상 비용도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정부가 실질 보상을 다 해주니 축산 농가가 위생에 안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이번 안동발 구제역은 살처분 후 매몰될 소, 돼지 등 가축의 수가 12만 마리에 달한다. 차라리 예방백신을 접종했다면 이러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백신 사용에 대한 농식품부의 뜻은 단호하다. 백신을 사용할 경우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상 백신을 맞은 동물이 한 마리라도 있으면 구제역 청정국이 될 수 없다. 접종 후 1년간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아야 청정국 지위를 회복할 기회를 얻으며 회복까지 통상 1년 반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국내 축산물은 수출이 중단되고 중국처럼 구제역 비청정국의 수입도 거절할 명분을 잃게 된다. 반면 구제역 판정을 받은 가축을 매몰 처리할 경우 석 달 간 재발이 없으면 청정국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

접종 후엔 가축을 관리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지는 것도 백신을 꺼리는 이유다. 백신을 맞은 소와 돼지는 항체가 생기기 때문에 구제역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많을 경우 수십만 마리의 가축에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데 이를 관리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런 탓에 정부가 그동안 백신을 접종한 예는 2000년 구제역이 창궐했을 때가 유일하다. 당시 정부는 150만 마리의 가축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1년 6개월 뒤 청정국 지위를 회복한 적이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관계자는 "다른 국가들도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않으면 백신은 사용하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쓰지도 않은 백신을 쌓아 두다 예산만 낭비하고 매년 폐기처분한다는 것이다.

백신은 매년 수억원어치 구입된 후 폐기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구제역 예방백신 구입을 위해 편성한 예산은 7억3000만원이다. 이는 국내 비축용 백신 30만개의 구입비에 비상시 70만개를 들여올 수 있도록 영국의 구제역 항원은행에 지불하는 비용을 합친 액수다. 2008년에는 4억1000만원, 2009년에는 3억9000만원이 백신 구입비로 책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