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업계, 쇠고기이력추적제 '딜레마'

사육단계 투명성 확보없이 가공업체까지 확대
유통구조 복잡 책임분쟁 유발 등 혼란 불보듯


쇠고기 이력추적제 전면 확대를 한달가량 앞두고 식육가공업체들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식육을 포장할 때 쇠고기 개체식별번호가 기재된 라벨을 일일이 부착해야 하는 경영상의 어려움은 차지하고라도 자칫하면 법적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쇠고기 이력추적제는 지난 2007년 12월 ‘소 및 쇠고기 이력추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 사육단계에서 단계별로 시행돼 오다가 오는 6월 22일부터는 도축 및 가공, 판매, 유통단계까지 확대 시행된다.

이에 따라 식육가공업체(식육포장처리업자)는 도축장에서 넘어온 쇠고기에 붙어있는 개체식별번호를 확인한 후, 식육을 포장할 때 해당 쇠고기의 개체식별번호가 기재된 라벨을 부분육 또는 포장지에 붙여야 하며, 식육포장처리한 실적 및 판매실적 등을 전산시스템이나 자체장부에 기록하고 농림수산식품부에 신고해야 한다.

만약 소의 소유자를 비롯해 도축업자와 식육포장처리업자, 식육판매업자 등이 쇠고기 이력추적제 의무사항을 위반했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이러한 내용의 쇠고기 이력추적제가 정부 방침대로 무리없이 추진된다면, 법 제정 목적에서 밝힌 것처럼 쇠고기 안전성을 확보해 축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소비자 보호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소 사육단계에서 이력추적제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제도를 식육가공 및 포장처리업체까지 확대할 경우 업계의 혼란만 부추겨 결국 생산성만 떨어지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식육가공업체 관계자들은 토로하고 있다.

실제로 KBS 등 언론보도에 따르면, 사육단계에서 축산농가의 이력추적제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인해 소의 이력이 둔갑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으며, 해당기관인 축협에서도 이력추적제를 전담하는 인력이 거의 없어 체계적인 기록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다양하고 복잡한 쇠고기 유통구조로 인해 이력추적제에 대한 신뢰도 낮은 상황이며, 현재 소 출하량의 극소수만 사후검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각 단계에서 쇠고기 둔갑판매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허위로 이력이 기재된 쇠고기가 가공업체에 들어와 가공 및 포장된 후 판매업소로 유통됐을 경우 그 책임소재를 규명하기 어려워 자칫하면 법적분쟁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는 게 식육가공업체의 고민이다.

이에 대해 한 가공업체 관계자는 “가공업체는 원료포장을 뜯은 상태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도축장에서 이력이 허위로 기재된 쇠고기가 들어오거나 정육점 등 판매업소에서 장난을 칠 경우 불리한 점이 많아 억울하게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며 “이론상으로는 역추적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다양한 유통단계를 거쳐야 하는 쇠고기 유통을 감안할 때 실제적으로 가능할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주관부처인 농식품부는 국내 소 중 90% 이상이 귀표를 장착했기 때문에 사육단계에서 이력 허위 기재는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설령 둔갑판매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축산물 이력추적시스템을 통해 모든 쇠고기의 이력추적이 가능하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동물방역과 윤영렬 사무관은 “이력추적시스템이 완비돼 있으므로 번호없는 쇠고기의 유통은 이뤄질 수 없다”며 “이력추적시스템에서 전 두수 시료체취를 해놓고 있기 때문에 중간에 바꿔치기 하는 사례가 발생하더라도 DNA 조사를 통해 밝혀낼 수 있으므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고발하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