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후퇴 거듭한 '어린이 비만식품 추방'

어린이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이 22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하지만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당초 정부와 정치권이 약속한 고열량저영양 식품의 퇴출범위가 여러 차례 축소됐을 뿐 아니라 법의 주요한 축인 TV 광고금지 조항은 시행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어린이 먹을거리 안전대책이 '용두사미'격이 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만 유발식품 기준 후퇴 거듭 =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해 '고열량저영양' 식품 기준을 마련하면서 처음에는 '고열량'이나 '저영양' 가운데 어느 한 쪽에만 해당되더라도 학교 안에서 팔 수 없도록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식품이 포함된다는 업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열량과 영양을 함께 고려하는 쪽으로 슬그머니 방침을 바꿨다.

지난해 11월 복지부와 식약청은 1회 열량기준 200㎉가 넘는 간식과 1회 열량 500㎉가 넘으면서 나트륨 함량이 600㎎이상인 식사대용품에 대해 고열량저영양 식품으로 분류하겠다는 잠정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하지만 식약청은 불과 두 달만에 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식사대용품의 나트륨 함량을 1000㎎으로 완화하고 열량기준도 50㎉나 높아진 250㎉로 변경해 빈축을 샀다. 나트륨과 열량 기준이 완화되면서 피자와 햄버거 등이 판매제한 대상에서 대거 누락돼 '비만식품 퇴출'이라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졌기 때문.

비판이 제기되자 당정은 나트륨 기준을 잠정안대로 600㎎으로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한 달도 안된 지난 18일 국물이 있는 식사대용품에 대해서는 완화된 나트륨 기준을 적용키로 또 다시 말을 바꿨다.

광고제한 규정은 아예 시행자체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지난해 입법 과정에서 정부는 고열량저영양 식품에 대해 5-9시 사이에 TV광고를 금지하고 이 시간대가 아니라도 어린이 프로그램 중간광고에는 이들 식품의 광고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송사와 업계의 반발에 밀려 시행령에는 일단 삭제됐다. 복지부는 방송통신위원회와 협의를 거쳐 5월에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햄버거, 피자는 안되지만 치킨은 돼? = 학교와 학교주변 우수판매업소에서 판매가 제한되는 식품은 어린이 기호식품이다.

이 어린이 기호식품에 컵라면은 포함되지만 봉지라면은 포함되지 않는다. 또 햄버거와 피자는 어린이 기호식품이지만 치킨은 아니다. 따라서 열량과 나트륨이 높은 치킨과 라면은 이 법 시행 후에도 팔 수 있다.

이와 관련 식약청 관계자는 "어린이 기호식품은 주로 어린이가 어른보다 더 많이 섭취하는 식품을 대상으로 선정했으며 보호자가 선택, 조리해 주는 식품도 고열량저영양 식품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열량과 염분함량이 높은 대표적인 식품인 치킨이 판매제한 대상에서 제외된 데 대해 소비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한과도 영양성분과 관계 없이 어린이 기호식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열량저영양 식품 판전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

어린이 기호식품에서 제외되면 영양이 풍부하고 첨가물이 적은 어린이 식품에 부여하는 '품질인증'도 받을 수 없게 된다.

◇규정 마련 늦어져 시행도 지연 = 지난해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특별법은 광고금지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날 시행에 들어간다.

그러나 고열량저영약 식품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실제 시행은 고시가 발표되는 4월말-5월초로 미뤄지게 됐다. 하위 규정 마련이 지연돼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게 된 셈이다.

특히 식약청은 지난달 고열량저영양 식품 기준안의 부칙에 시행일자는 8개월 연기하는 문구를 삽입했다가 뒤늦게 당정협의에서 제동이 걸렸다.

식약청 관계자는 "업계의 혼란을 고려해 당분간 시행을 연기하려고 했지만 논의 과정에서 식약청이 고시를 발표하는대로 곧바로 시행키로 결정했기 때문에 늦어도 5월부터는 고열량저영양 식품 학교내 판매가 제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