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줄어드는 인구, 사라지는 일손, 늘어나는 1인 가구. 인구구조의 변화는 식품산업의 판도 자체를 흔들고 있다. 고령화, 저출산, 1~2인 가구 증가,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식생활뿐 아니라 식품 생산·유통 구조까지 재편하는 중이다.
올해 우리나라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0.3%에 달한다. 지난 2000년 7.2%에 불과했던 고령 인구 비율은 불과 24년 만에 3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이 비율은 2036년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2023년 기준 1인 가구는 전체의 35.5%, 약 783만 가구로, 단일 가구 유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혼자 사는 사람’이 가장 일반적인 생활 단위가 된 셈이다. 이처럼 빠르게 늘어나는 고령자와 1인 가구는 간편식, 소용량 식품, 맞춤형 식단에 대한 수요를 견인하며 식품산업 재편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식품시장 대응과제’ 연구에 따르면, 식품기업들이 꼽은 미래 생존 전략은 ‘간편식’, ‘케어푸드’, ‘푸드테크’다.

절반은 “아직 준비 안 됐다”…중소기업 대응 미비
31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식품업체 및 식품기술연구소 관리자 1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53.9%가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고 응답했지만, 나머지 46.1%는 별다른 대응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히 대응이 부족한 곳은 중소기업 비중이 높았다. 그나마 대응 중인 기업들도 대부분이 생산 인력 부족을 대비한 설비 자동화(38.6%), 해외시장 개척(9.6%), 차별화 마케팅(10.8%) 등의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인구 고령화는 단순히 소비 패턴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식품 제조 현장에서도 생산 가능 인구 감소로 인한 인력난이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중소 식품공장에서는 청장년층 생산직을 구하기 어려워 주 6일 교대조차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설비 자동화, 포장·가공 공정의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서도 '설비 자동화 및 디지털화로 인력 대체’는 기업들이 가장 많이 시도하는 인구구조 대응 방식(38.6%)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식품산업은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전통 제조업 특성이 강해 고령화 충격이 빠르게 드러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소 식품제조업체의 자동화 설비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기 시장 전망 1순위는 '간편식'...10년 후, ‘푸드테크’와 ‘케어푸드’에 쏠린 눈
향후 1~2년 내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식품으로는 '간편식(HMR)'과 '건강기능식품'이 꼽혔다. 간편식은 전체 응답자의 63.6%, 건강기능식품은 51.9%가 선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리잡은 ‘집밥 수요’는 고물가와 맞물려 여전히 외식·배달의 대체재로 작동 중이다. 여기에 1인 가구와 맞벌이 가정 증가가 맞물리며 ‘조리 편의성’ 중심의 시장 확장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는 간편식(66.9%), 식품 스마트 제조(55.8%), 케어푸드(40.3%), 친환경 식품 패키징(39.6%)이 꼽혔다.
특히 케어푸드는 고령화와 만성질환자 증가에 따라 산업계의 관심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친환경 패키징은 탄소중립과 지속가능성 흐름 속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식품기업들은 기술 기반의 생산·유통 혁신과 함께, 고령친화식품·개인 맞춤형 식단 등 소비자 맞춤형 제품 개발을 미래 전략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CJ프레시웨이는 ‘헬씨누리’ 브랜드를 통해 고령자 맞춤형 식단을 설계하고 있으며, 연하곤란 환자부터 일반 시니어까지를 포괄하는 식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풀무원은 디자인밀 '풀스케어'를 통해 연하식, 연화식, 음료 및 간식 등 고령친화식을 선보이고 있다.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등 급식업체도 케어푸드 관련 전문 인력 TF를 조직하고, 연구개발부터 건강 상담까지 전문성을 확보한 맞춤형 식단 전략을 추진 중이다.
기업들은 향후 5~10년간 정부가 중점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원재료 수급 안정(68.8%), ▲해외시장 개척 지원(51.3%), ▲첨단기술·푸드테크 선점(40.3%), ▲생산 규제 완화(35.1%) 등을 꼽았다.
흥미롭게도 대기업은 기술투자와 푸드테크 중심의 정책을, 중견기업은 규제 완화를, 소규모 기업은 농업과의 상생협력 확대를 요구하는 등 기업 규모별 정책 수요의 차이도 드러났다.
푸드테크는 ICT 기반의 식품 자동화·맞춤화 기술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대표적으로 ▲스마트 조리로봇 ▲AI 수요예측 기반 식자재 유통 ▲개인 건강데이터 기반 맞춤식단 추천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이는 인력난, 고령화, 단인가구 증가 등 구조적 문제에 기술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국내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식품산업계의 방향은 생산과 소비 양측에서의 전략적 전환으로 요약된다"며 "생산 측면에서는 자동화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하고, 소비 측면에서는 다양한 제품 개발, 세대별 맞춤형 마케팅, 빅데이터 기반 소비층 분석을 통해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