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부비만이 없어야 심장병·돌연사·중풍 예방 비만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 비만은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많다는 것을 많이 인식하게 되었다.건강도 중요하지만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현대인들에게는 비만은 더욱 중요해졌다. 비만이 부유해 보이고 재산이 많이 보이는 것보다는 자기관리를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 졌기 때문이다. 특히 외관상 가장 잘 나타나고 많은 것은 바로 복부비만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복부비만이 우리의 건강을 가장 많이 해친다는 것이다.복부비만의 문제는 성인병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다. 초기의 비만에서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서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만이 오래되고 비만이 심해지면 어느 순간부터인가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심장병, 지방간 등의 증세가 나타나며 마지막에는 심장마비,
제 26대 고종생몰 연도1852~1919/재위 기간1863~1907흥선군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조선의 26대 왕이 되었다. 병인박해,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외세와 많은 충돌이 있었고, 조일수호협약이 체결된 후 구미 열강과 차례로 개화 정책을 실시했다.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를 잃고, 1907년 순종에게 선위하고 1919년 세상을 떠났다. 이 시기에 동학 혁명이 일어났고, 시민계급이 성장했으며, 독립협회가 활동했다.조선왕조실록 엿보기약원에서 여름 감기로 인해 체후가 편치 않으므로 입진을 청하다.-고종 27년 경인(1890, 광서 16년) 5월 14일(임오)약원에서 구계(口啓)를 올려, ‘전하의 체후(體候)가 여름 감기로 편치 않은 증세가 있다고 하므로 감히 입진을 청합니다.’ 라고 하니, 비답하기를, “한때 더위를 탄 데 지나지 않고, 또 이미 나아가고 있으니 경들이 입진할 필요는 없다
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학교 앞에서 팔던 불량식품을 먹어봤을 것이다. 인사동에 가보면 그 시절 즐겨먹던 추억의 불량식품을 파는 곳도 있다. 지금의 초등학생이라고 하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초등학생들에게 학교 앞 먹을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다. 만약 초등학교 앞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불량식품을 단속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해도 거의 대부분이 단속 대상이 될 것이다. 학교 앞에서만 그럴까?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후 각 부처에서는 저마다 앞다투어 불량식품 근절을 외치고 있다. 경찰청에서는 3월 8일부터 부정‧불량식품 100일 집중단속을 벌이고 있다. 4월 26일까지 50일간 1,911명을 검거하여 이 가운데 11명을 구속하였다고 한다. 유형을 보면 가짜 홍삼 식품 제조, 과대광고, 유통기한 경과 식품 판매
계절의 여왕으로 푸름의 달 인 5월에는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날, 5월의 셋째 월요일은 성년의날 등 이 있는 가정의달 이다. 그중 ‘어린이날’ 은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어린이를 위한 뜻 깊은 날이다.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로 미래 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맑고 바르며,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어린이의 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제정한 기념일 이다.1919년 3·1운동 이후 소파 방정환을 중심으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고자 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해 1923년 5월 1일, 색동회를 중심으로 방정환 외 8명이 ‘어린이날’ 을 공포하고 기념행사를 치름으로 어린이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1927년부터 5
스트레스는 여러 가지 병을 일으킨다. 보통 신경을 많이 쓰거나 긴장을 하면 소화가 안되거나 뒷목이 뻐근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하는 증세가 나타난다. 이러한 통증이 오면 생각을 하는 것이 옛날에 다쳤거나 병명을 진단을 받은 경우에 그곳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신경성으로 인한 통증의 특징은 긴장을 하거나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이어서 통증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러한 스트레스가 비만하고도 관련이 많다. 인체 내의 욕구불만, 화나는 것을 억제할 때에 그 불만이 풀리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먹게 된다. 주위에 비만한 사람들을 보면 신경을 많이 쓰면 소화가 안 되어 먹지 못하는 유형도 있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어서 풀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먹지 않아야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불안하고 안정이 안 되어 억제하
국회 의원회관 신관 지하 1층에 신세계 그룹 계열사인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 들어섰다. 점심시간에는 긴 줄을 기다리며 밥을 먹어보기도 했다. 밥을 먹으며 대화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세계가 식당까지 하네”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정부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을 말하면서 공공기관들은 얼마나 이를 실천하고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날 나눈 대화에는 동반성장에 관한 핵심이 다 들어 있었다. 오늘 이 칼럼의 목적도 바로 그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대기업이 구내식당업까지 진출하여 중소상공인들의 생존까지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급기야 작년에는 중소상공인들이 단체급식사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야 한다며 정부에 탄원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기업이 공공기
제 25대 철종생몰 연도1831~1863년/ 재위 기간1850~1863년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恩彦君)의 손자로 강화(江華)에서 아무 교육도 받지 못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영조의 유일한 혈손으로서 대왕대비 순원황후의 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에는 순원황후가 수렴청정을 했는데, 대왕대비의 친정인 김조순 가문이 경쟁 세력을 도태시키면서 전보다 강화된 독점권력을 누렸고,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로 맞아 들이면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계속되는 바람에 정치를 바로잡지 못했다.1852년에 친정을 시작, 나이가 들고 친정의 경험도 쌓이면서 관리들의 부정을 공격하는 등 비교적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련도감의 마보군(馬步軍)과 별기군(別技軍)의 군사를 이용하여 궁궐의 숙위를 강화하려 했으나
현대판 모세의 기적 이라 불리는 제35회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만남! 그 설레임 이 있는 신비의 바다로!" 라는 주제로 오는 4월25일부터 4월28일까지 나흘간 진도군(이동진군수) 고군면 회동리 와 의신면 모도 사이의 바다가 조수 간만의 차이로 길이 2.8㎞, 너비 40m로 갈라지는 현장에서 열린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조수간만의 차이로 수심이 낮아질 때 바닷길이 드러나는 현상으로 40여m의 똑같은 너비의 길이 바다에 만들어지는 신비로운 현상이 약 1시간 가량 연출되어 국가지정 명승지 제8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 축제에는 제35회를 의미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외국인 130명, 군인 40명, 주민 180명 등 350명으로 구성된 모도 탐험대원이 배를 타고 섬으로 이동해 모도 벽화마을과 어촌의 정겨움을 체험한다. 체험객 은 전교생 4명
살을 빼야하는 목적이 뚜렷해야..올 봄은 유난히 추운 것 같다. 따스한 봄바람이 몸과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주어야 할 때인데 아직도 찬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한다. 봄이 되면 신경이 쓰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비만이다. 겨울에는 두터운 옷에 의하여 비만이 안 보이지만, 봄이 되면 옷이 가벼워지며 가벼운 반소매, 반바지, 치마 등을 입다보면 자신의 몸매가 그대로 노출이 된다. 물론 날씬한 사람들은 자신의 날씬한 몸매를 과시할 것이다. 그렇지만 비만한 사람들은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떼어내고 싶은 살 때문이다.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살을 빼고 남 앞에 나설 수 있을까?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살을 빼야겠다는 강한 의지와 목표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어떤 마음을 먹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매우 차이가 난다. 자신의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살은 더 잘 빠
제24대 헌종 생몰 연도1827~1849년/재위 기간1834~1849년순조의 손자로, 아버지 익종이 대리청정 하던 중에 병사하자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8세에 왕이 되었다. 학문을 좋아하고 글씨를 잘 썼다.즉위 초 순조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했고, 재위 기간 내내 외척의 세도정치가 계속되었으며, 천주교 탄압이 강화되었다. 내영(內營), 총위영(摠衛營)을 설치로 세력기반이 되는 군사력을 양성하기도 했으나 국정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 시기에는 천재지변이 빈번했고, 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말년에는 서구의 군함이 출몰하여 통상과 천주교 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23세에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다. 조선왕조실록 엿보기약원의 입진을 행하여 권돈인이 왕의 건강을 염려하다- 헌종 15년 기유(1849, 도광 29) 4월 10일(무신)중희당(重熙當)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