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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식품클러스터 추진 1년 점검

국가의 성장동력으로서 식품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대외 개방에 따른 농업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추진돼 온 ‘국가 식품클러스터 사업’이 1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사업 주체인 전북도와 농림수산식품부는 어느 쪽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사업의 추진 배경과 현주소, 문제점과 방향 등을 점검해 본다. /편집자


두리뭉실한 사업계획 원인 후보지 선정도 못해
전남 등 타 지자체도 추진 ‘나눠먹기’ 우려 커져
정치권 지역 이기주의 등 배제 최상의 해법 필요


작년 12월 사업지 선정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 공모를 통해 전북도를 국가 식품클러스터 사업지로 최종 선정했다.

농도인 전북은 도내에서 생산되는 우수한 농산물을 바탕으로 식품산업을 발전시켜 지역의 성장동력으로 삼고자 한국형 푸드밸리(Food Valley)인 식품클러스터를 정부에 제안했고 농식품부가 이를 국책산업으로 채택했다.

국가 식품클러스터는 단지 조성에 필요한 부지 등은 지자체가 제공하고 8000억원가량의 예산은 국가가 부담해 내년부터 식품전문단지를 시작으로 유통 체계 및 가공무역단지 조성 등을 2015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생산-가공-판매 시스템이 구축되면 농산품 및 가공품의 국내 판매와 수출 등으로 연간 4조 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 전북도의 설명.

그러나 국가 식품클러스터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1년 가까이 후보지조차 선정되지 않아 사업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북도는 국가 식품클러스터에 대해 “원료, 생산, 유통, 가공 등의 식품 연관산업이 대학과 연구소 등의 지원기관들과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덴마크나 네덜란드의 푸드밸리처럼 식품 연관산업이 오랜 세월을 거쳐 유기적으로 발전하면서 자생력과 경쟁력을 확보한 것과는 달리 국가 지원하에 클러스터를 만들어 식품산업의 네트워크(산·학·연)를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것이어서 그 효과가 의문시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전북도가 모든 농축산물과 식품, 가공업체 등을 포괄적으로 클러스터에 포함하는 바람에 정부는 식품클러스터의 핵심 콘텐츠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용역을 거쳤음에도 식품클러스터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명확한 사업 방향과 적절한 후보지가 아직 확정되지 못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또 원료, 생산, 가공단지를 비롯한 지원 기관들이 도내 곳곳에 분산돼 집적화가 어렵다는 점과 함께 후보지 선정을 놓고 지역 정치권이 벌이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사업을 더디게 하고 있다.

지역 정치권 신경전 발목

식품클러스터 후보지를 전북 일선 시군으로 확대해 광역화할 것인지, 특정 지역에 한정할 것인지 혹은 농산물 외의 축·수·임산물을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혼선은 정부와 전북도가 국가 식품클러스터 후보지로 새만금(김제), 농생명 혁신도시(전주·완주), 익산 등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연초에는 식품전용 산업단지를 조성하려는 익산지역이 적지로 부각됐으나 이후 새만금-김제-전주(혁신도시)를 잇는 ‘새만금권’으로, 또 최근에는 고창(복분자)과 순창(장류) 등 도내 각 시군이 참여하는 ‘광역권’까지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게다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농식품부의 조직이 개편되는 기간에 사업의 추진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그 틈을 타고 전남, 경북 등 다른 자치단체가 식품클러스터 사업에 뛰어들어 자칫 이 사업이 ‘지역 나눠 먹기’로 변질할 우려마저 낳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식품클러스터를 전북도를 중심에 두고 타 시도의 특화된 식품산업을 거미줄처럼 연계하는 방식으로 분산 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전북도의 근심이 더 깊어지고 있다.

전북도와 익산시의 관계자들은 “식품클러스터를 맡은 농식품부의 담당자가 1년 동안 수차례 바뀌고 일부 용역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아 사업이 지지부진하다”면서 “사업을 제안한 전북도가 식품클러스터에 무엇을 담을지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농식품부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업 고도화가 핵심

국가 식품클러스터 사업은 1차 산업에 머문 농림수산업을 2~3차 산업으로 고도화해 이들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국가경쟁력을 높이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전북도의 국가 식품클러스터가 국내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식품 중계기지로 성장하려면 집적화와 특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정밀한 기본계획과 후보지 선정이 최대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모든 농축수산물(혹은 식품)을 백화점식으로 끼워 맞춘 전북도 클러스터의 기본 계획은 이 지역의 특화된 식품(농축수산물)을 엄선하는 방향으로 재조정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북도가 제시한 기본계획은 식품클러스터에 무엇을 담을 ‘콘텐츠’를 발굴하지 못한 채 단순히 식품산업의 선진국인 덴마크나 네덜란드의 푸드밸리 등을 모방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우선 집중과 선택을 기해 수조 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김치와 젓갈, 유제품, 장류 등의 발효 식품과 대량 생산되는 육류와 신선 유기농 채소, 건강식품 등을 중심으로 클러스터에 들어갈 품목(콘텐츠)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순창 고추장의 전국 시장 점유율은 50%, 임실치즈는 30%, 곰소 젓갈은 12%에 이르고 있으며 도내에서 생산되고 있는 발효 식품의 원료는 타 시·도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만큼 어느 분야보다도 클러스터의 핵심 부문으로 집중하여 육성할 수 있다는 논리다.

또 값싼 중국산 원재료를 들여와 가공해 세계 시장에 수출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도내에서 생산되는 우수한 농산물을 원료로 고부가가치 식품을 개발, 수출함으로써 동남아의 식품 허브로 확실하게 자리를 굳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함께 식품클러스터 후보지는 식품전문 산업단지와 재배단지를 중심으로 식품과 물류·유통 기업을 비롯해 연구개발 관련 기관과 생활, 환경, 교육, 보건 등의 인프라 등을 한 곳으로 모아야 기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지역별로 단지 및 지원기관을 분산배치하는 것보다 이들 기관을 한 데 모아 집적화하는 것이 산업·경제적인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시기 등 문제 새만금 어려워

클러스터 후보지 선정과 관련, 전문가들은 농식품부가 연구기관들의 공동 용역결과를 토대로 연말까지 세부 일정을 발표하기 전에 이 사업을 주도한 전북도가 무엇을 생산하고 연구할 것인지, 후보지를 언제, 어떤 방법으로 선정할 것인지 등 명확한 기본계획을 새로 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식품클러스터 후보지는 ▷물류비용 절감을 위한 고속도로와 KTX 등 교통 접근성 ▷식품과 농업 관련 연구·개발 기관 및 인력 확보 ▷배후도시 ▷식품회사와 연관 산업의 소재 등을 충분히 고려해 선정돼야 한다.

최근 도내 일각에서 클러스터 후보지로 얘기되고 있는 새만금지역의 경우 새만금의 개발과 식품클러스터를 패키지로 추진하면 국가 예산을 확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새만금 기반조성 공사의 완료 시점(2020년)과 식품클러스터 완공 시점(2015년)이 달라 일단 배제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전문가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고 용역 결과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거나 정치권의 지역 이기주의에 휘둘려 후보지가 선정된다면, 식품클러스터는 새만금사업이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장기 표류할 것은 뻔한 일이다.

또한 굴지의 식품회사와 한국식품연구원, 농업생명공학연구원 등의 유치활동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전북대 익산캠퍼스 송춘호(생명자원 유통경제학과) 교수는 “1차 산업을 산업·경제적으로 고도화하기 위한 식품클러스터는 집적화된 인프라와 특성화가 필수”라면서 “업계와 대학, 연구기관,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하는 시스템을 초기 단계부터 마련해 한국형 식품클러스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전문기관에 다시 용역을 맡기다 보니 사업 추진이 다소 늦어지고 있다”면서 “농식품부가 연말께 기본 계획을 확정하고 후보지를 선정하면 식품클러스터 사업이 속도를 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