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집중분석-멜라민 파동이 남긴 것

<먹을거리 불안에 식생활도 바꿔>

과자·커피 소비 ‘뚝’…차·수제 쿠키 ‘인기’
국내제품 불신 일본산 분유찾는 부모 늘어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6일 중국산 식품 10개 제품에서 멜라민 성분이 발견됐을 뿐 국내 생산 분유나 시판 채소류에서는 멜라민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최종 발표했다.

이로써 중국발 멜라민 파동은 일단락 되며 봉합되는 국면이지만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먹을 거리에 대한 불안감과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의 식생활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검사 결과 일부 과자와 커피크림에서 멜라민이 검출되면서 과자류와 커피크림을 함유한 커피류의 매출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반면 대체재로 차(茶)와 수제 쿠키류, 과일을 찾는 경우가 늘었다.

집에서 직접 과자나 간식을 만들기 위한 조리도구나 분유 대신 모유를 수유하는 데 필요한 수유용품의 매출도 급증하고 있다.

최근 롯데마트에 따르면 국내 과자에서 멜라민이 검출된 이후 지난 달 25일부터 이 달 1일까지 과자류의 매출이 이전 1주일간에 비해 1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스킷(23.2%)과 스낵(18.4%) 매출이 크게 줄었고, 초콜릿도 14.2%나 감소했다.

또 과자에서 멜라민이 검출된 데 이어 커피크림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되면서 같은 기간 커피믹스 제품을 포함한 커피류 역시 10% 감소했다.

반면 대체재 역할을 하는 차는 전주에 비해 10.7% 신장했으며, 환절기와 맞물려 유자차(83.9%), 대추차(74.3%)가 높은 인기를 누리는 가운데 녹차(5%)와 기타 국산차(13.4%)도 덩달아 매출이 늘었다.

또 아이들의 간식류로 과자 대신 과일을 찾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과일류 매출이 전주에 비해 전체적으로 10.5% 신장했고, 감(146%), 사과(102.3%), 배(52.3%)가 인기를 끌었다.

먹을 거리에 대한 전반적인 불안감 확산으로 친환경 무항생제 한우도 전주에 비해 25.3%나 매출이 늘었고 우수농산물로 인증받은 상추, 버섯 등 채소류도 30~35% 신장했다.

빵과 쿠키 등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제빵용품 매출도 전주에 비해 14%나 늘었다.

이마트에서도 최근 3일간 비스킷류 매출은 전주 같은 기간에 비해 14.6% 감소했고 유기농과자와 과일류의 매출은 각각 20.5%, 33.3%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분유 원료인 뉴질랜드산 락토페린에서 소량의 멜라민이 검출되면서 “분유 제품에서는 멜라민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식약청과 농식품부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일부 아기 부모들이 대안 찾기에 나서고 있다.

분유 수유를 줄이고 모유 수유를 늘리려는 부모들이 많아지면서 관련 용품 매출이 급증하고 있고, 모유 수유가 어려운 부모들은 일본산 분유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온라인 오픈마켓 옥션 조사 결과 지난달 25일부터 1일까지 1주일간 일본산 분유의 판매량은 이전 1주일에 비해 3배 정도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모유 수유용품의 판매량은 이전주에 비해 40%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인터넷 카페에서는 아기 부모들끼리 남는 모유를 사고 파는 거래가 이전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친환경·유기농 식품에 대한 높은 관심이 최근 경기 침체와 함께 다소 주춤하는 감이 있었는데 이번 멜라민 파동의 영향으로 식품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매출이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불신의 늪에 빠진 식품업계 >

“문제없다”호언 후 검출되자 말바꾸기 일관
뒤늦게 사과광고 통해 소비자 달래기 부산



실추된 이미지 회복이 최우선

‘멜라민 파동’은 식품업체들에게 ‘먹을 거리’ 장사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또다시 일깨워 준 계기가 됐다.

멜라민 파동에 앞서 ‘기생충 김치’ ‘칼날 참치캔’ 등 굵직굵직한 식품사고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식품업체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과 분노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유명업체의 제품이든 중소기업 제품이든, 또 중국산이든 아니든 먹을 거리에 대해 결코 안심하고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규제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 멜라민 파동이 이번에 적발된 몇몇 식품업체의 문제가 아니라 식품업계 전반으로 그 파급효과가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멜라민 파동으로 식품업계는 사면초가에 빠진 채 유구무언의 신세로 전락했다.

식품업계는 당장 소비자들의 분노를 달래고 실추된 신뢰를 되찾는 것이 시급한 실정이다.

소비자들은 이미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거의 ‘공포’ 수준의 불안감을 갖고 있다.

여기에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제과 업체들의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다.

더구나 유명 제과업체들이 한결같이 자사 제품에 대해 “문제없다”고 했다가 나중에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검사결과 멜라민이 검출되는 것으로 나타나면 뒤늦게 시인하거나 “해당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등 말바꾸기로 일관하면서 신뢰마저 무너뜨렸다.

식품업계는 뒤늦게 사과성명, 사과광고 등을 통해 소비자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식품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은 지난2일 식품공업협회 CEO특별위원회를 열어 “멜라민 사태와 관련해 소비자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자성하고 앞으로 새로운 각오로 국민 여러분께 안전한 식품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실상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해태제과와 동서식품, 롯데제과 등 멜라민과 관련해 최근 문제가 된 기업들은 인터넷 홈페이지나 신문광고 등을 통해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전달했다.

각종 안전성 강화방안 마련

이번 멜라민 파동과 무관했던 식품업체들도 식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회복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국내 최대 종합식품회사인 CJ제일제당은 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식품관련 용어, 성분 등을 소비자의 언어로 쉽게 풀어서 안내하는 코너를 준비 중이다.

매일유업은 경기도 평택에 있는 공장으로 소비자들을 초청해 견학 등을 통해 제품 생산과정을 공개함으로써 제품의 안전성을 널리 알려나갈 계획이다.

식품업체들은 이번 멜라민 파동을 계기로 원·부자재에 대한 자체 검사를 강화하고 제품 생산공정에 대한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원산지 표시 등을 개선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번 멜라민 파동에서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던 해태제과는 발빠르게 자사 제품에 대한 안전성 강화방안을 내놓았다.

이 회사는 이번 멜라민 파동과 같은 전 세계적인 식품안전 이슈에 대해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아시아식품정보센터(AFIC, Asian Food Information Center)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을 포함해 모든 생산 제품에 대한 품질관리 기준을 국제 수준에 맞추기 위해 식품 성분 분석기관인 ‘유로핀스 사이언티픽’(EUROFINS SCIENTIFIC) 등과 연계해 품질관리시스템을 높이는 방안도 마련했다.

OEM이 아닌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중국 칭다오 공장의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된 롯데제과는 현지 생산공정과 원료 등에 대한 검사를 위해 검사요원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회사는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칭다오 공장을 잠정적으로 가동중단키로 했다.

이번 멜라민 파동으로 소비자들이 혼선을 빚은 품목은 분유였다. 분유와 이유식의 원료로 쓰이는 ‘락토페린’에서 멜라민이 검출됐으나 정작 완제품인 분유에서는 멜라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래선 변경·설비 보강 나서

남양유업과 매일유업, 파스퇴르유업 등은 다소 “억울하다”는 반응이었지만 아기의 주식인 분유라는 식품 특성상 “(멜라민이 나오지 않았지만) 소비자가 원하면 환불해주겠다”며 소비자 달래기에 나서는 한편 락토페린 수입업체 변경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멜라민이 검출된 뉴질랜드 타투아사의 락토페린을 사용했던 파스퇴스유업 등은 해당 제품을 폐기처분하는 한편 다른 해외 거래처를 찾기에 나섰다.

남양유업은 타투아사와의 거래를 끊고 네덜란드, 독일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거래처를 찾고 있으며 파스퇴르유업도 호주와 유럽의 락토페린 업체를 대상으로 거래선을 변경키로 했다.

매일유업은 지난해 분유·이유식의 유해성 논란 이후 자체적으로 생산설비와 원료에 대한 검사를 벌여 락토페린 수입처를 타투아사에서 네덜란드 DMV로 변경하고 생산설비 보강에 250억원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분유사고가 이번 멜라민 파동에서 우리 제품이 안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면서 “단기적으로 생산설비 개선이나 거래처 변경 등에 추가적인 비용이 들지만 이는 식품사고가 났을 때를 생각하면 큰 투자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 회사는 현재 식품에 부착되는 원산지 표시를 대폭 개선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남양유업도 이번 멜라민 파동과 관련, 이미 하고 있는 멜라민 검사와 환경 호르몬 검사 등 원료에 대한 검사를 더욱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화되는 정부규제>

식약청·농식품부 등 임기응변식 처방 봇물
식품안전 일원화로 체계적 대책 마련 절실



포상금제 신설 등 법규 개정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유제품을 함유한 중국산 식품과 뉴질랜드산 분유원료, 수입 채소 등에 대한 멜라민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태를 일단락지으려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국민의 불안감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사후약방문’식이지만 이번 사태로 정부의 식품안전 관리 규제는 강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멜라민 파동 중에도 먹거리와 관련성이 있는 정부 부처에서는 각종 안전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우선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는 멜라민 등 유해성분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은 식품뿐 아니라 부적합 여부가 확정되지 않아 잠정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진 식품을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신고포상금을 주는 제도를 지난 3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같은 조치에 따라 300㎡ 이상 식품판매업소에서 판매금지 제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신고하면 5만원이 지급되며 300㎡미만 영세 업체의 경우에도 3만원이 지급된다.

이번 조치는 식품소매업체 뿐 아니라 문구점에도 적용된다.

또한 복건복지가족부에서는 말라카이트그린이나 멜라민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검출된 현지 수출 업체에 대해 수입을 잠정 금지하도록 하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만약 정부안대로 식품위생법이 개정되면 멜라민이나 말라카이트그린, 니트로퓨란계 항생제 등 식품에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은 외국 식품업체는 더 이상 우리나라로 제품을 수출할 수 없게 된다.

개정안은 또 수입상이 해당 업체로부터 식품 수입을 재개하려면 유해물질이 포함된 경위와 개선사항에 대한 확인서를 현지 업체로부터 받아 당국에 제출하도록 했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서도 ‘멜라민 파동’을 계기로 각종 안전대책을 내놨다.

농식품부는 현재 국내 농산물 가공품 원산지 표시 방법을 담은 농산물품질관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을 위한 실무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행 시행령·규칙은 국내에서 만든 가공식품에 사용된 농산물 가운데 ▷비중이 절반 이상인 주재료 ▷주재료가 없을 경우 비중이 높은 순으로 두 가지 원료 ▷제품명으로 사용된 특정원료에 대해서만 국적을 포함한 원산지를 밝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바꿔 말해 성분 비중이 50%에 못 미치고 비중 순위 1~2위에도 들지 않으면 원료로 사용된 수입 농산물의 생산지 국적을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번 멜라민 사태로 가공식품 원료 농산물의 원산지를 소비자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일자 정부가 관련 규정 개정에 나선 것이다.

학교앞 불량식품 유통 근절

농식품부는 또한 앞으로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수입 유제품에 대해 멜라민 검사를 거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중국산 원료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유제품은 샘플 조사가 아닌 멜라민 전수 검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이번 멜라민 파동을 계기로 학교급식에 사용되는 식재료의 원산지를 의무적으로 심의하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사항 중 ‘식재료의 구체적인 품질기준’ 내용에 ‘원산지’를 명시, 급식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학부모의 불안을 없애겠다는 게 교과부의 방침이다.

교과부는 이와 함께 학교 앞 문구점이나 슈퍼마켓에서 국적 불명, 유통기한 미표시 제품 등이 판매되지 않도록 불량식품 판매행위 근절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또 보건복지가족부가 3월 제정한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특별법’에 따라 내년 3월부터 초·중등학교 주변 200m 이내를 ‘어린이 식품안전보호 구역’으로 지정, 자치단체가 전담관리원을 배치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 부처가 이 같은 식품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멜라민 사태로 촉발된 중국발 먹거리 안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무엇보다 식품안전대책이 일원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처별 임기응변식 처방으로는 근본적인 먹거리 안전대책 마련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따라서 멜라민 사태로 마련된 각종 식품규제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식품안전관리가 일원화돼야 한다는 게 대다수 식품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