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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지표시 강화 "올것이 왔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오는 8월 5일부터 전국의 모든 음식점은 사용하고 있는 쌀과 배추김치의 원산지를 오는 표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농수산물의 원산지표시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마련해 지난달 21일 입법예고 했다.

정부가 가공식품에 대한 원산지 표시제를 대폭 강화한 것은 외국의 값싼 농산물을 사용한 식품이 늘면서 중국 등 특정국 수입식품으로부터의 위해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08년에 중국산 수입가공품에 멜라민이 검출됨에 따라 수입식품과 수입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이 극에 달하면 가공식품원산지표시제도의 개선안이 끊임없이 요구돼 왔다.
 
또 같은 해 중국에서 반재료 형태로 제조된 밀가루 반죽을 통해 만들어진 새우깡에서 이물질이 혼입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원산지 표시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가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2년여 실무검토를 통해 가공식품에 들어간 원재료를 비중에 상관없이 2개를 의무적으로 밝히게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원산지 표시제를 실시함에 따라 식품업체가 감당해야 할 수입국가명 표기변경에 따른 추가비용만 1000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식품업계는 CJ제일제당, 롯데제과, 남양유업 등 주요 12곳의 식품업체가 원산지표기 강화에 따른 포장비 등으로 723억원을 추가로 부담해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원산지표시제에 고민이 대기업에게만 해당 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가공식품의 원산지표시 대상품목은 과자류, 두부류, 면류, 어묵류, 음료류, 조미식품류 등 211개품목으로 사실상 우리가 쉽게 접하고 있는 가공식품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곳은 주류업체로 예상된다. 특히 막걸리업체들의 경우 주류에 대한 원산지표시제 시행을 앞두고 원료를 국산쌀로 전환하면서 원가 부담이 20%이상 높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형 막걸리 제조사들은 ‘국산 표시’상품 선택이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연내 제품 대부분을 100% 국산쌀로 만들 계획이다. 농협에서 쌀을 받거나 김포, 이천 등의 농가와 재배계약을 맺는 곳도 늘고 있다. 막걸리업계에서는 원산지표시가 시작되면 전체 막걸리시장에서 국산쌀 제품비중이 70% 정도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국산쌀 막걸리가격이 또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제조원가중 쌀 비중은 10~20%에 불과하지만 국내산 쌀값이 수입 쌀 보다 2.5~3배 비싸 상승분을 감안할 경우 현재 수입쌀 막걸리에 비해 20~30% 인상이 불가피해 지기 때문이다.

막걸리 생산업체에 이어 치킨 전문점의 타격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대부분의 국내 치킨 전문점들은 국산 닭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뼈 없는 순살' 제품은 수입산인 경우가 상당수다. 원가가 저렴한데다가 외관상으로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구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육류유통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국내에 수입된 닭 3만4456톤 가운데 1만2430톤이 브라질에서 온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가슴ㆍ다리ㆍ날개 등 부분육 형태로 들어온 것이다.

수입산을 국산처럼 판매해온 업체들은 제품 포장 비용도 추가로 부담할 수밖에 없다. 현재 사용하는 포장지 외에 수입산이라고 표기한 포장지를 별도로 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들은 수입산 표기방식을 어떻게 할지를 놓고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식품 원산지 표시는 식품업계의 부담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국내산 농축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원산지 표시를 강화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서울대 이문한 교수는 최근 식품관련 한 세미나에 참석해 국내산 농축산물을 보호하기 위한 원산지 표시를 강화하면 안 된다는 이론을 펼쳐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이 교수는 토론회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이 강조하며 “외국산과 국내산을 소비자가 분별해 구매할 수 있는 유통체계가 구축되어 있다면 모든 것을 소비자의 판단에 맡길 수 있겠지만, 우리처럼 부정유통이 보편화된 사회에서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교수는 선진국처럼 소비자 중심으로, 전문가에 의해서, 농장에서 식탁까지 일관성 있게, 과학적으로 식품안전을 관리해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유통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교수의 발언은 식품 원산지 표시를 한다고 해도 부정유통 등으로 그것이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 지에 대한 불안도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과자류, 두부류, 면류, 어묵류, 음료류, 조미식품류 등 211개 품목의 먹을거리를 제조하고 있는 가공식품 업계에는 8월 5일부터 해야 하는 원산지 표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가공식품 업체들은 원료에 대해 국가명을 표시한 경우 포장재 폐기량 중가로 인한 손실과 원료와 반제품 구분을 위한 탱크 증설 등 시설투자, 원료조달에 있어서 경쟁력 저하 또 수입 완제품의 경우 생산국만 표시하면 되지만 국내 생산품의 경우 원료의 원산지 표기까지 해야 되는 데서 오는 국내 생산 식품에 대한 역차별 문제 등 산적한 문제들을 넘어서야만 ‘생존’이 가능하게 됐다. 가공식품 원산지 표시 강화로 인한 지각변동이 조금씩 감지되는 식품업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