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1961년 창립 이후 대한민국 농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아온 농협이 전면적 지배구조 개혁 국면에 진입했다. 정부와 여당이 중앙회장 직선제와 고강도 내부 통제를 골자로 한 농협법 개정안을 추진하자, 전국 농축협 조합장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며 집단 반발에 나섰다.
겉으로는 ‘농민 주권 회복’과 ‘투명성 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농협을 사실상 정부 산하기관으로 편입하려는 관치 개혁”이라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농협중앙회와 지역 농·축협을 둘러싼 지배구조 개편 논의는 국회 입법 전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상반기 국회에는 농협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개정안들이 잇따라 상정되며 정책 방향을 둘러싼 충돌이 본격화됐다.
◇ 4인 4색 개정안…‘개혁’인가 ‘통제’인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들은 모두 '농협 개혁'을 표방하지만, 접근 방식과 파급 효과는 크게 엇갈린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개정안들은 전반적으로 지배구조 개편과 통제 장치 강화를 축으로 한다.
윤준병 의원안은 중앙회장 선출 방식을 전 조합원 직선제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 조합장 중심 간선제를 폐지하고 약 187만 명의 조합원이 직접 선거에 참여하도록 해 ‘조합원 주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아울러 농협 전반을 대상으로 한 통합 감사기구 설치와 정부의 지도·감독 권한 확대, 정보공개 강화 등을 포함한 구조 개편안이다. 이와 함께 조합원 자격을 정기적으로 정비하도록 하는 조항까지 담기면서 현장에서는 “행정 부담 확대와 외부 통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문금주 의원안은 직선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절충안 성격을 띤다. 중앙회에 정보공개심의회를 설치해 조직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회장선출기구를 통해 중앙회장을 선출하도록 하는 방안을 담았다. 선거인단에는 조합장과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추첨으로 선정된 조합원이 포함돼 선거 과열을 억제하면서도 일반 조합원의 참여를 반영하려는 방안이다.
임미애 의원안은 인적 쇄신에 방점을 찍었다. 사기·횡령·배임 등 조합 사업과 관련된 범죄나 금융관련법령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을 받은 인사의 임원 진입을 5년간 제한하는 내용이다. 경제·금융 범죄 이력이 있는 인사의 진입을 차단해 조직의 도덕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안은 경영 투명성과 내부 견제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독립이사 제도 도입과 함께 선거범죄 공소시효를 연장하고, 임직원의 직무 관련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최대 10년까지 적용하도록 했다. 위법 행위 발견 시 즉시 고발을 의무화하는 등 내부 통제 강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 입법예고 ‘반대 1만 건’…현장 “주인 없는 농협 될 것”
국회 입법예고 시스템에는 법안별로 1,300건에서 최대 4,000건에 달하는 의견이 접수됐으며, 대부분 반대 의견으로 나타났다. 현장의 반발 기류도 뚜렷하다.
의견 제출자들은 이번 개정안이 농협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외부 권력의 개입 여지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특히 “외부 개입을 통한 부정적 영향력 행사와 특정 세력의 감사기구 장악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와 함께 “여당 주도 입법으로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감독·통제 장치 강화와 관련해서는 “과도한 감시와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과 함께, “국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이어졌다.
인권 침해 소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일부 의견은 “확정 판결 이전 직무 정지는 무죄 추정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며 “개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조합원들이 여전히 비리와 부당 대우에 노출될 수 있다”며 개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확인됐다.
선거 및 인사 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는 “선거관리위원회 개입이 특정 인물을 배제하거나 임명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반적으로 의견 제출자들은 “농업인의 자주적 조직이라는 농협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며 법안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핵심 쟁점인 중앙회장 직선제를 둘러싼 논쟁도 격화되고 있다.
정부와 일부 농민단체는 직선제를 “농민 주권 회복의 출발점”으로 평가한다. 기존 조합장 중심 구조에서는 일반 조합원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반면 현장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한다. 조합원 수가 187만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직선제가 도입될 경우 ▲선거 과열 ▲공약 남발 ▲정치권 개입 확대 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 ‘창조적 파괴’인가 ‘관치 회귀’인가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서도 농협 개혁의 필요성 자체에는 일정 부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 경제사업 적자 구조 등으로 농협의 지속가능성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체 조합의 90% 이상이 경제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하는 등 구조적 한계가 누적된 상태다.
중앙회장 권한 집중과 반복된 비위 논란 역시 지배구조 개편 요구를 키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65년간 누적된 비효율을 해소하기 위한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농협중앙회 역시 내부 쇄신 필요성을 인정하며 변화의 불가피성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이번 농협법 개정 논의의 핵심은 ‘자율성’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이다.
농업인 자조 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지, 공적 자금이 투입된 거대 조직으로서 공적 통제를 강화할 것인지에 따라 향후 농협의 성격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 조합장 비대위가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 만큼, 향후 국회 심사 과정에서 현장 의견이 얼마나 반영될지가 농협 개혁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