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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20]이맛에 산다...한국인의 소울푸드 '라면' 1편

[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는 "라면먹고 갈래요?"라는 연애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던진다. 권했다가 거절당한다고 해도 민망하지 않고 언제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만큼 친근한 먹거리가 있을까. HMR(가정간편식)이 늘면서 라면소비량이 줄었다지만 한국인의 라면은 대체불가 식품이며,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소울푸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민 1인당 라면 소비량은 연평균 72개로 세계 1위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라면'의 탄생은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1963년 9월 삼양식품이 일본 명성식품의 기술을 도입해 우리나라에 첫 선을 보인다. 2년 뒤인 1965년은 현재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이 '롯데라면'을 생산하면서 라면시장이 형성되게 된다.

 

그 후 신한제분의 '닭라면', 동방유량의 '해표라면 등 후발주자가 난립하게 된다. 하지만 1969년에 농심과 삼양의 2개사 체제로 압추됐고 1983년 한국야쿠르트가, 1986년에는 빙그레, 1987년에 오뚜기가 라면시장에 뛰어든다.

라면의 역사에서 항상 거론되는 사건은 부동의 1위였던 삼양식품이 쇠락의 일은 걷게된 '우지파동'이다. 1989년 11월  검찰은 삼양식품이 식품원료로 사용할 수 없는 공업용 기름을 라면을 튀겼다는 혐의로 삼양식품을 수사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이 사건에 대해서 "당시 우리나라는 공업용 우지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삼양이 사용하던 우지는 12등급 중 2등급에 해당하는 최상급 우지"라고 말한다.

 

삼양식품은 긴 법정 싸움을 벌이며 1997년에서야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게된다. 또, 그 시간만큼 소비자들에게 부도덕한 기업으로 각인되면서 점유율이 10%까지 폭락한다. 삼양식품의 공백은 농심에게는 기회가 된다.

 

신라면은 라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라면이다. 음식의 맵기의 정도를 설명할 때 신라면이 기준이 신라면이 됐을 정도다. 1986년에 출시된 이 라면은 지금의 농심을 만든 일등공신이다.신라면은 '매울 신(辛)'자의 '맵다'는 뜻과 농심 신춘호 회장의 성을 동시에 의미한다.

짜파게티는 1984년에 처음 출시된 우리나라 최초의 짜장라면이다. 중식당에서 판매되는 짜장면과는 맛의 차이가 있지만, 짜파게티 특유의 맛으로 출시 당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대체 음식이 아닌 독자적인 음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짜파게티로 비빔라면이 처음 출시되자 팔도는 같은 해에 '비빔국수'의 맛을 재현한 팔도 비빔면을, 삼양식품은 짜짜로니를 출시했다.

 

국내에서 라면사업에 성공한 신춘호 회장은 1980년대부터 “세계 어디를 가도 신라면을 보이게 하라”고 말하며 수출에 주력했다. 1965년 라면을 생산한 같은 해에 라면연구소를 세워 연구개발(R&D) 노하우를 쌓은 농심은 1981년 일본 도쿄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한다. 1996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첫 해외 공장을 세웠다.

 

중국에 3개까지 공장을 세우고 2005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공장을 지었다. 2005년도에 설립한 공장에서 물량이 부족하자 서부 캘리포니아에 2021년 완공을 목표로 공장을 짓고있다. 농심의 라면 수출액은 2004년 1억달러를 넘었고, 2015년엔 5억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농심은 전체 매출의 약 40%인 8억달러(약 9591억원)를 미국과 중국 등 해외에서 달성했을 정도다.

 

최근에는 영화 기생충의 흥행하자 세계인들은 '짜파구리'에 주목했다. 미국 뉴욕타임즈와 캐나다 여행 전문 사이트 '더 트래블'에서는 신라면 블랙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으로 꼽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