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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가격 '인상 담합' 왜?

판매량 줄었는데 매출액 2배…농심 70% 점유 독과점 시장



22일 공정거래위원회가 2001년부터 서로 짜고 라면가격을 올린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4개 업체에 과징금 1354억원을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공정위가 밝힌 4개 라면업체의 가격인상 담합 이유는 1998년 초 가격을 올린 뒤 2001년 5월까지 3년 남짓 가격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단독으로 가격을 올리는 데 따른 매출 감소와 이미지 훼손이란 위험 부담을 피해 정부·언론·소비자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가격을 올리려는 의도로 담합했다는 게 공정위 설명.

공정위가 설명한 라면업계의 가격인상 담합 수법은 업계 1위 농심이 총대를 메고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가 뒤를 따르는 방식이었다. 

즉 농심이 가장 먼저 가격인상안을 마련한 뒤 3개 업체에 가격인상 정보를 알려주면, 뒤 따라 순차적으로 농심과 같거나 비슷한 선에서 가격을 올렸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업계 1위 사업자가 타사들이 가격인상을 추종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격인상 정보를 제공하여 가격인상을 독려하고, 후발업체들 서로 간에도 가격인상 정보를 제공하여 타사의 가격인상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농심이 라면가격 인상 담합에 앞장섰음을 짐작케 하는 설명이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액수를 보더라도 농심이 짬짜미를 주도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공정위가 4개 업체에 부과한 과징금 1354억 가운데 농심에 부과된 게 1077억6500만원이다. 두 번째로 많은 삼양식품 116억1400만원보다 9배 이상 많은 액수다. 

오뚜기와 함국야쿠르트에는 각각 97억5900만원과 62억7600만원을 부과했다. 적지 않은 액수지만, 농심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농심이 앞장서고 나머지 3개 업체가 뒤 따르는 방식으로 담합이 이뤄진 데는 국내 라면시장 규모와 유통구조가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22일 공정위가 발표한 국내 라면시장 규모를 보면, 판매량은 지속적 정체 또는 하락세, 매출액은 지속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판매량 기준 시장규모는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고령화 사회, 낮은 출산율 등의 영향으로 주 소비층인 10~20대가 줄면서 1997년을 정점으로 정체 혹은 하락하는 추세다. 실제로 라면 판매량(통계청 내수 출하량 기준)은 1997년 37억8000만식에서 2010년 37억2000만식으로 늘기는커녕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가격인상 및 고가라면 출시 등에 힘입어 매출액(4개 라면업체 제출자료)은 1997년 9411억원에서 2010년 1조7782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판매량은 줄었는데 매출액이 약 2배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값이 올랐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가격 담합이 라면업체들의 매출액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라면 제품의 유통구조도 라면업계 가격인상 담합에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라면 제품의 유통(표 참조)은 크게 특약점을 통해 소매점으로 유통되는 시판과 대형마트, 편의점, SSM 등을 통해 직접 유통되는 직판으로 나뉜다. 

공정위가 발표한 담합 수업 가운데 선도업체가 먼저 “가격을 인상했음에도 다른 업체가 가격 인상에 뒤따르지 않는 경우 구가지원 기간을 대폭 연장하는 방식을 통해 가격미인상 업체에 대해 즉각적으로 견제”했다는 내용이 있다. 

구가지원에 대해 공정위는 “인상 전 재고품의 소진기회 확보, 판매점에 추가 이익 기회제공 등을 위하여 가격인상 후 일정 기간 동안 가격인상 제품을 거래처에 종전 가격으로 제공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면 유통과정 중 ‘구가지원 기간’이란 관행이 라면업계의 가격인상 담합에 적지 않은 구실을 한 셈이다.  

1990년대 이후 농심이 국내 라면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나머지 3개 업체가 30%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과점 형태의 시장구조도 농심이 가격인상 담합을 주도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