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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농협법' 전면재개정이 필요한 이유

농민들 17년 열망 짓밟은 '개악 후과' 눈덩이

올 3월, 정부와 국회는 농민들의 절절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혁’이라는 미사여구를 앞세워 농협법 개정을 강행하였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가락시장 방문과 “농협을 농민에게 돌려주라”는 발언으로 급물살을 탄 농협법 개정이 결국 농협 개혁을 위해 애써온 범농업계의 17년간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으로 귀결된 것이다.

 

언론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농협 개편’ 문제가 마치 정부가 약속한 지원금 6조원을 모두 지원하지 않는 데 있는 것처럼 호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덮고 왜곡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큰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개정된 농협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개정된 농협법대로라면 농협중앙회는 ‘경제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그 대주주가 되어 권력을 독점하는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기이한 형태의 협동조합이 된다. 이미 지난 11월 말 농협중앙회 이사회가 날치기 통과시킨 조직개편안에서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지주회사로의 신경분리가, 곪을 대로 곪은 신용부문마저 파탄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지주회사화는 현 정부의 금융기관 대형화·겸업화 정책과 맞물려 금융이 농업을 지배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2009년 날치기 통과된 현재의 금융지주회사법 체계에서 농민들이 상부상조를 위해 출자한 농협이 금융지주회사 설립 후에는 외환은행처럼 론스타와 같은 투기자본의 먹이가 될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한-미 FTA와 맞물려 농협의 대농민 지원사업이 ISD(투자자 국가중재) 제소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농협의 금융지주가 상장하게 되면 외국 금융자본에 의해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농협법 개정 당시 ‘경제사업’을 활성화하겠다며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약속했던 6조원의 지원금 중 정부가 내놓겠다는 것은 주식 1조원에 현금은 1500억원이 고작이다. 민주당은 재원 마련을 위해 2017년까지 농협법의 발효를 늦추겠다는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이는 본질을 덮는 것일 뿐 결코 농협 개혁을 위한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농협중앙회의 경제사업이 활성화된다고 해서, 이것이 농민들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지금도 농협중앙회는 많은 수익을 거두고 있지만, 이 수익이 과연 농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던가? 농민의 이익을 보장할 그 어떤 명확한 수단이 개정 농협법에는 담겨있지 않고, 농민의 이익을 해치는 경우에 대한 제재 조처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올 3월 개정된 농협법은 제왕적 권력을 누리며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농협중앙회장의 독점적 지배구조를 결코 해체하지 못한다. 농민에게 봉사해야 할 농협이 농민을 팔아 몸집을 부풀리고 고위직들이 자기 배를 채우는 동안 농민과 농업은 더욱 피폐해져가는 현재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지금도 농협중앙회 600여명의 임원들과 지역 농협의 3000여명 임원들이 억대 연봉을 챙겨가는 동안, 농협의 기층노동자들은 150만원의 월급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형편이다. 게다가 농가 평균 2700여만원의 빚으로 농민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농협은 대출금리까지 조작해가며 농민들의 고혈을 짜내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감독원은 ‘농협은 농식품위 소관’이라며 감독을 회피하고, 농식품부는 농협이 자치조직이라며 ‘나몰라라’ 한다. 

 

현재의 농협법으로는 농협중앙회의 경제사업 활성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만에 하나 실현되더라도 농협중앙회만을 위한 경제사업 활성화는 오히려 지역조합, 품목조합과의 경합을 심화시켜 지역조합과 농민조합원들은 더욱 피폐화 될 것이다.

 

이대로 농협개편이 이루어진다면, 농협은 중앙회장만 살고 모두가 죽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농협이 진정 농민들을 위한 농협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세계적인 추세인 ‘연합회’ 방식만이 유일한 길이다. 농촌의 생산조직을 연합회로 조직화하고, 회원조합과 연합회 중심의 생산·가공·유통 질서를 만들어가는,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농민의 농협’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17여년의 오랜 논의를 거쳐 우리 범농업계가 숙고해서 내놓은 결과다.

 

한시가 급하다. 농협이 악화일로를 걸어 ‘제무덤’을 파기 전에, 농민 조합원들의 피땀 어린 돈으로 만들어진 농협이 스스로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전에 반드시 농협법 전면 재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