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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세계화, 정권 바뀌면 사라질까?

단발성 이벤트에 집중 등 너무 서두르는 느낌
대선 후 정책동력 떨러질까 우려 목소리 커져

힌식 레시피 표준화 등 인프라 조성 우선돼야


 "유행은 길어야 3년, 정책은 길어야 5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부가 한식세계화 정책으로 분위기를 잡은 것은 굉장히 큰 성과입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 지속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김성민 우송대 글로벌한식조리학과 교수를 비롯해 한식업계 종사자와 전문가들 대다수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정부의 한식세계화 구호가 단명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식세계화는 지난 2008년 10월16일 서울 농수산물유통공사(aT)센터에서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한식 세계화 선포식'에서 공식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한식을 세계인이 즐기는 음식으로 만들자는 의지가 담긴 행사였다.

  
그로부터 2년6개월이 지났다.


아직까지는 우리 음식이 해외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는 않고 있다.

 
◇ 이제 시작단계..."갈 길 멀다"
   

한식세계화는 한식에 대한 외국인의 인식과 입맛을 변화시켜야 하는 만큼 가시적 성과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김성민 우송대 교수는 "한식세계화는 우리 마음 같아서는 빨리 실현시키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한식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문화, 국격 등과 복합적으로 연결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식세계화 정책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추진돼야 하는 이유지만, 일각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정책의 동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벌써 나온다.

  
또 정부가 한식세계화를 위해 일부 해외 진출 한식당만 지원하기보다는 국내 인프라 조성에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대기업들은 정부 지원이 필요 없다고 본다"면서 "정부가 일부 한식당을 지원하기보다는 민간들이 자기 경쟁력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정책 방향이 해외의 유명 쉐프를 초청해 한식을 대접하거나 해외에서 한식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등 단발적 이벤트에 집중한 측면이 있는 것도 대국민 홍보나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

  
특급호텔의 한 한식 주방장은 "한식세계화는 우리의 식문화를 세계화시킨다는 측면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정부는 너무 쉽게 생각해서인지 서두르는 감이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도 이런 지적을 감안해 홍보 전략을 다듬고 있다.


농수산식품부 박순연 외식산업진흥팀장은 "과거에 여러 행사를 많이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면서 "앞으로는 이벤트적 성격의 행사를 축소하고 건강식이라는 한식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전략적 홍보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정부 지원책 "도움 안 돼"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업계에서는 나오고 있다.

  
해외진출 식당 시설비의 80%를 저리로 융자해주는 제도가 있었지만 건물 임대와 내부 인테리어 등 사업이 완전히 세팅된 뒤에야 지급돼 실제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더구나 한식당을 열려는 해외교포나 외국 자본 등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중국과 싱가포르, 태국 등에서 항아리갈비 체인을 운영하고 있는 '놀부'의 조재범 영업담당 이사는 "싱가포르와 태국에서 체인을 개설한 교포분들이 정부의 자금 지원을 희망했지만 자격이 안 돼 무산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조건이 까다롭다 보니 작년에 해외진출 식당 시설비 지원 명목으로 4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지만, 집행액은 절반도 안 되는 16억원에 그쳤다.

  
정부도 이 제도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없애고 필요시 수출입공사를 통해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금 지원보다는 오히려 해외시장 조사 등에 정부 역량이 집중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견해를 펴고 있다.

  
조 이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해외시장 조사나 합작파트너 발굴 등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면서 "해외 공관이나 정부 차원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서 이를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어떤 자금지원보다 도움이 되는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2009년부터 시장조사를 하고는 있다.

  
현재까지 미국, 중국, 베트남, 일본, 싱가포르, 파리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조사 결과가 개괄적인 내용만 담고 있어 업계 입장에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한 업체의 임원은 "해외시장 보고서를 봤는데 인터넷 검색이나 현지 한인을 통해 얻는 정보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어서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 한식에 대한 인식 개선 '뚜렷'
   

한식세계화 정책에 대한 불만에도 한식을 둘러싼 풍경은 분명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우선 한식에 대한 국내외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이병우 롯데호텔 총주방장은 "한식세계화 움직임 속에 우리 국민의 의식 속에서도 한식의 재발견이 이뤄지는 것 같다"면서 "손님을 대접할 때 과거에는 다른 나라 음식을 찾았지만 지금은 한식도 충분히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해외 30여개국에서 한식 홍보행사를 열었던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의 김용한 부원장도 "2년 전 처음 행사를 나갈 땐 과연 한식세계화가 가능할지 의문이 많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한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음식연구원에는 일본과 중국 등에서 단체로 한국 음식을 배우기 위해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식에 대한 인식 개선은 한식을 업(業)으로 삼으려는 요리사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한식 요리사는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취업도 힘들며 일식이나 프랑스식 등에 비해 사회적인 인식도 낮아 기피하는 경향이 짙었지만 이런 분위기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숙대 앞에서 한식당 '더함'을 운영하고 있는 김인복 대표는 원래 양식당을 경영했지만 숙대에서 정부 지원을 받아 진행된 '한식 스타쉐프' 과정을 수강한 뒤 동료들과 함께 한식당을 열었다.

  
김 대표는 "스타쉐프 과정의 일환으로 파나마에서 한식 홍보행사를 했는데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인기였다"면서 "한식으로 선회할 때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한식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한식 레시피 표준화하자"

   
세계 곳곳에서 한식이 맛을 인정받고 인기를 끌어가면서 한식의 이름은 달았지만, 실체가 모호한 '짝퉁 한식'도 늘어나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촌으로 불리는 왕징(望京)에서는 까르푸 같은 대형 외국계 할인점에서부터 난후(南湖)시장 등 재래시장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김치를 팔고 있다.

  
그렇지만, 일부 한국 업체가 공급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한국 김치 고유의 맛을 지킨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대부분이 짝퉁 김치다.

  
상하이의 일본식당에서도 돌솥 비빔밥이나 곱창구이, 불고기, 갈비, 김치 등을 팔며 한식이라는 설명을 하지 않는 곳이 많아 한국 음식이 일본 음식으로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이들 상하이 일식당은 한식의 맵고 짠맛을 적절하게 순화시켜 중국인들로부터 전통 한식당보다 더 호평을 받는 때도 있어 한식의 맛과 이미지가 왜곡될 우려도 높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일식당 '수미노야'의 메뉴판에는 김치와 함께 5종류의 돌솥 비빔밥이 'Stone Pot Bibimba'라는 이름으로 소개돼 있다.

  
이 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특별한 설명이 없다면 김치나 비빔밥을 일본 음식으로 착각하기 쉽다.

  
해외 한식당 대표와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한식 레시피의 표준화와 수준 높은 한식 요리사가 양성돼 세계 곳곳에서 우리 맛을 알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경림 돈의보감 대표는 "해외 한식당마다 음식의 편차가 너무 크다"며 한식 레시피 표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식당 '개나리'를 운영하는 신승모씨는 "한식을 잘하는 한국인 셰프를 많이 길러야 한다. 유명한 한인 셰프가 많이 나오면 한식이 많이 알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맨해튼의 한식당 강서회관 곽자분 사장(57)은 "한국 요식업계의 최근 동향이나 트렌드 등에 관한 정보가 아쉽다"면서 "한국에 자주 들어가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한 교육이나 정보 제공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