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진단/학교급식비리 예방과 대책

저학교급식지원센터 설립이 해답


학생 담보 돈 챙기는 교육자는 퇴출 마땅
교장이 공급업체 선정…구조적 비리 조장
전자조달 등 확대해 비리 여지 차단해야


“뇌물 장부에 학교 관계자들 명단과 금액이 암호식으로 빼곡히 적혀 있더군요. 한두 군데도 아니고 100곳이 넘었어요.”

신진기 경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3팀장은 최근 경남지역의 한 대형 식자재 급식업체를 압수수색하면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한 번에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에 이르는 뇌물이 관내 110개 학교 교장이나 행정실장, 영양교사 등 256명에게 전달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식자재 급식업체가 주로 영업을 한 마산과 창원, 진해 일대 학교 4∼5개 가운데 한 개 학교는 연루된 셈이다.
뇌물의 대가는 질 낮은 식자재로 돌아왔다.

이 업체는 한우에 저등급 냉동육을 섞어 1등급 한우라고 속여 공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 중 만난 학생들은 하나같이 “고기가 너무 맛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신 팀장은 전했다.

영양교사가 이를 알아채지 못할 리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영양교사 자신도 뇌물을 받았거나 받지 않았더라도 교장이 업체 선정에 전권을 쥐고 있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창원의 한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은 납품업체에 부풀려 지급한 대금을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급식비 2억4천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도 드러났다.

경남지방경찰청은 이와 유사한 비리가 다른 대형업체에도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현재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교육비리 중 가장 심각한 비리

급식비리는 경상남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인천의 한 급식용 식자재 납품업체가 각급 학교 교장 47명에게 1인당 50만∼100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가 포착되기도 했다.

동훈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실장은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가장 심각한 비리가 아이들의 매일 먹거리와 관련한 급식비리”라며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만 먹으면 없어져 버리니 실태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급식비리가 싹트는 토양은 학교장에게 업체 선정의 전권이 있다는 데 있다.

신진기 경위는 “뇌물을 받은 학교들은 모두 수의계약으로 업체를 선정했다”면서 “납품하려는 업체는 많은데 학교는 한정돼 있으니 이런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각급 학교는 대부분 ▷쌀 ▷잡곡류 ▷농산물 ▷축산물 ▷가금류 ▷수산물 ▷공산품(장류 등) ▷김치 ▷떡 등으로 품목을 나눠 업체를 선정한다.

단가가 2000만원 이하면 수의계약, 이상이면 경쟁입찰로 업체를 골라야 한다.

학교에서는 수의계약으로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납품기간 등을 짧게 자르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수의계약으로 식재료를 구매하는 학교 비율은 전국적으로 31%이며, 지역별로는 서울(61%)과 인천(78.3%), 전북(82.5%), 충남(62.4%) 등이 특히 높다.

설령 경쟁입찰에 부치더라도 비리가 끼어들 여지는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복수의 적격 업체를 골라 입찰을 진행하지만 최종 결정권은 학교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동훈찬 실장은 “특정업체를 배제하기 위해 꼬투리를 잡으려 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급식비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학교와 업체 간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급식비리 대책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교-업체 접촉 원천 차단해야

수의계약 가능 금액을 현행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추는 한편 오는 9월 개통되는 농수산물유통공사의 ‘학교급식 식재료 전자조달 시스템’을 통해 학교가 업체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식재료를 공급받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올해 서울과 부산, 인천, 충남, 전북 등에서 각 50개교씩 총 250개교를 시작으로 2012년까지 전체 학교의 절반 정도인 4500개교가 이 시스템을 이용해 식재료를 조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재민 농수산물유통공사 과장은 “식재료 납품을 원하는 유통업체중 인허가 서류 검토와 현장실사 등을 거쳐 적격 업체를 선정해 납품회원으로 승인할 계획”이라며 “부적격 업체의 입찰 참여를 원천 배제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가 업체를 선정하는 절차가 남아있는 한 적격 업체라도 뒷돈을 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 과장은 이에 대해 “학교에서 개별적으로 입찰을 진행해 업체를 선정하면 선정 이유 등이 공개되지 않지만, 전자조달 시스템을 이용하면 근거가 다 공개되기 때문에 비리의 여지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학교급식지원센터는 학교가 업체 선정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리 가능성을 확실히 차단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진다.

학교급식지원센터가 현장실사 등을 통해 납품업체를 선정하면 일선 학교에서는 지원센터를 믿고 물건을 납품받는 방식으로, 학교와 업체가 마주칠 일이 없다.

서울시 급식지원센터인 친환경유통센터에서 식재료를 공급받는 강서초등학교의 김남주 영양교사는 “예전엔 매일 아침 검수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었는데 급식지원센터를 이용한 뒤로는 서울시에서 품질관리까지 해주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박진욱 교육과학기술부 학생건강안전과 사무관은 “전국 299곳에 있는 산지 유통센터를 확대해 급식지원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통해 급식지원센터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급식비리 막을 대안은 없나?>

지자체가 개입 농 축산물 제공 바람직
학교-업자 유착 막아 비리 원천 봉쇄
학생은 고품질 친환경 급식 싸게 먹어


“학교급식지원센터는 급식비리를 막아주면서도 친환경 급식을 가능케 하는 좋은 제도입니다.”

김남주 강서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업체들의 과당 경쟁 때문에 과거에는 비리가 끼어들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가능성 자체가 차단돼 있다”며 “학교와 영양교사, 학부모 모두가 학교급식지원센터 이용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초등학교는 올해 3월부터 급식 재료 구매 방식을 바꿨다.

입찰로 선정한 업체에서 음식재료를 공급받는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서울시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설립한 서울시 강서 친환경급식유통센터에서 농산물과 축산물을 조달한 것이다.

학교급식지원센터로도 불리는 이 센터는 납품업체 선정과정에서 생기는 리베이트 비리를 막고 우수한 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지난해 서울시가 설립했다.

이 센터를 이용하는 학교는 업자들과 대면할 필요가 없고 필요한 재료를 센터에 주문하기만 하면 된다.

센터가 공급하는 재료는 농산물과 축산물로 농산물은 친환경 등급, 소고기·돼지고기도 모두 1등급 이상이다.

예전에는 학교급식에서 이런 고가의 농축산물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급식비가 오르지도 않았는데 값비싼 재료를 쓸 수 있는 이유는 센터에는 복잡한 농축산물 유통단계가 없기 때문이다.

센터는 전국의 지자체로부터 우수 산지를 추천받아 그곳에 주문하고, 상품은 바로 학교로 배달되는 경우가 많다.
친환경 상품이지만 가격은 최대한 낮추는 것이다.

또 센터 이용을 장려하는 측면에서 서울시와 자치구도 학교에 한해 6:4의 부담으로 급식 한 끼에 150원을 지원하고 있다.

강서초등학교의 한 끼 급식 비용은 1565원이다.

김 교사는 “아이들 급식의 60%는 친환경 재료들로 채워진다”며 “가정에서도 비싼 가격 때문에 친환경 농산물을 많이 쓰지 못하는데 학교급식지원센터를 이용하면서 아이들의 급식 질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료의 품질을 무조건 믿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인 센터가 일차적으로 품질을 관리한다고 해도 영양교사와 학부모들은 매일 아침 배달된 재료의 품질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만약 품질에 문제가 있으면 전량 반품도 가능하다.

김 교사는 “업체에서 물건을 받을 때는 아침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는데 이제는 서울시에서 농약잔류 검사 등 품질관리를 해주니 정말 편하다”며 “제품의 품질을 신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양교사들은 급식지원센터 제도가 비리와 급식 질 저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제도로 판단하고 있다”며 “센터가 현행 농산물과 축산물 외에 닭고기, 김치, 잡곡, 공산품 등도 공급해주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강서초등학교처럼 급식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학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교장과 급식 실무자, 학부모들이 최근 몇 년간 센터의 역할을 지켜보며 학교 급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식지원센터는 현재 서울과 양평, 청원, 순천, 나주, 목포, 문경, 영주, 김해 등 11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932개 학교가 이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