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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유통 선진화' 발목 잡히나

각종 리베이트 등 의약품 유통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치고 제도개선을 목표로 출범한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TF)팀이 새 정부 출범 시기와 맞물려 휘청거리고 있다.

의약품 유통조사 TF팀은 복지부와 공정위, 식약청, 심평원을 비롯해 필요할 경우 경찰까지 참여할 수 있는 막강한 조직구성을 통해 의약품 유통구조 개선을 내걸었지만, 팀이 꾸려진 지 보름 만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측으로부터 제동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말기인데다 새 정부 출범일인 2월25일 이후로 제약사와 도매업체 등에 대한 불공정행위 조사를 미루는 것이 핵심 요지다. 더구나 TF팀의 활동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연일 강조하고 있는 규제 개혁과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이 같은 연기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TF팀 관계자들은 이같은 논란에 대해 일제히 함구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그 얘기(TF팀의 활동 연기설)는 우리쪽에서 나온 게 아니다”면서 “2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4월30일(TF팀 운영시한)까지 예정대로 주어진 임무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주도하고 있는 TF팀은 지난해 11월 공정위가 국내 주요 제약사 10곳에 대해 불공정거래행위를 이유로 200여 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데 이은 후속조치로 이보다 규모가 작은 매출 1000억원대 미만의 제약사 10여 곳과 도매업소 등에 대해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와 제도 개선을 목표로 지난 2일 발족했다.

TF팀은 주요 활동목표로 ▲약가제도 개선 ▲시판 후 조사(PMS) 개선 ▲공정경쟁규약 개정 등을 내세우고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의약품 유통질서를 바로 잡고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며 모인 정부 합동 TF팀이 정권교체기를 맞아 힘을 못쓸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같은 조사가 당장은 제약사와 도매업체에 부담이 되겠지만 길게 보면 약이 되는 만큼 쓴 처방전이라고 마냥 미룰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영업 편중, 제약사 경쟁력 발목

최근 LG경제연구원 고은지 책임연구원이 발표한 ‘의약품 유통 선진화를 위한 과제’가 이같은 시기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고 연구원은 이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의약품 유통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제약사들의 판촉경쟁을 과열시키고, 제품력 향상보다는 영업부문에 지나친 집중을 불러일으켜 제약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국내 의약품 유통이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도매의 대형화를 통해 유통구조를 현대화시키고, 유통정보시스템과 강력한 공정거래 감시체제를 통해 투명한 거래 질서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고 연구원은 “무엇보다 의약품 유통 거래의 주체들이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합리적인 유통문화를 만들어 나가는데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한·미·일 주요 5대 제약사의 매출구조를 통해 미국이나 일본의 주요 제약사들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R&D) 비중이 16~17%에 이르는 반면, 국내 제약사들의 R&D 투자비중은 평균적으로 7%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처럼 낮은 R&D투자는 차별화된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영업조직을 중심으로 한 판촉에 치중해 그 결과 매출원가의 20~25%에 이르는 금액을 리베이트 등에 지출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제약-도매 역할 분담, 도매업체 대형·복합화

보고서는 제약산업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은 제약회사와 도매업체가 서로 의약품의 제조와 유통 부문에서 분명한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과 일본은 도매업체를 경유해 유통되는 의약품의 비중이 90%를 웃도는데 비해 국내는 약 48%에 불과하며, 매출 톱3 도매업체의 점유율 역시 18%에 그칠 정도로 도매업체의 역할이 작고 대형 도매업체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경우 첨단 시스템과 대규모 물류 센터를 보유한 외국의 전문 업체들이 국내 의약품 유통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앞으로 국내 도매업계가 살아남으려면 업체 간 업무·자본 제휴, 자회사화, 인수합병 등을 통해 자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고은지 연구원은 “국내 도매업체들은 대형화와 함께 의약품 도매라는 단순 기능에서 벗어나 보다 복합화되고 종합적인 기능을 갖추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미국의 종합도매유통업체 카디널 헬스(Cardinal Health)가 의약품 물류뿐만 아니라 약품의 선택 및 가격 유지, 영업·마케팅 활동, 병·의원의 업무 지원 서비스 제공 등 보다 종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성격으로 역할을 진화하고 있는 사례를 꼽았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의약품 유통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유통 정보화를 제시했다. 의약품 유통에서의 정보의 수집 및 관리는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유통에 소요되는 제반 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다는 것.

정부 역시 지난해 10월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를 설립해 유통 구조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 동안 의약품 유통 정보는 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청,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각기 다른 주체에서 관리돼 온 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한편 현행 의약품 바코드와 EDI 코드를 통합한 의약품 표준코드를 도입해 의약품의 흐름을 보다 용이하게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준비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한 국내 의약품 유통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요인으로 약국 관련 규제 완화를 꼽았다. 실제로 일반의약품의 소매점 판매 허용, 약국 법인의 일반인 참여 등 약국과 관련된 규제 개혁에 대해 유통업계와 재계 일각에서 꾸준히 건의하고 있다.

고 연구원은 “지금 과연 어느 시점에서 일반의약품의 소매 유통이 허용될 지에 대해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일반 소비자들의 불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고, 의약품 사용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성숙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의약품 소매 유통 채널의 확대는 단계적으로라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