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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가격 혁명'..소비자는 '저울질 중'

신세계이마트가 '가격 파괴'를 선언하며 자체상품(Private Brand, PB) 신제품 3000여 가지를 내놓은 지 보름 가량 지난 4일. 이마트 용산점에는 주말을 맞아 장을 보려는 쇼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자체상품 출시 초반에는 행사 매대를 PB상품 위주로 도배하듯 꾸며놓았지만 이날은 최근 시작된 이마트 창립 기념행사로 제조업체 상품의 할인행사가 늘어나면서 PB상품을 진열해놓은 공간이 다소 줄었든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일반 진열대에는 여전히 이마트 상품이 가장 눈에 잘 띄고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마트 '맛으로 승부하는 라면'은 진열대 한가운데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농심 '신라면'과 함께 놓여있었고 '이마트 표백제'나 즉석밥 제품인 '왕후의 밥' 등도 진열 공간이 경쟁상품의 2-3배에 달했다.

황태나 구이김 코너는 아예 5단짜리 진열대 중 상위 4개를 모두 이마트 자체상품들로 채워넣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타사 제품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웠다.

구이김 코너를 찾은 박모(53.여)씨는 "이마트 브랜드 구이김 말고 다른회사 제품도 살펴보고 고르고 싶은데 찾아보기 힘들다"며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은 어느정도 보장해줄 필요도 있는데 너무 자사 제품만 늘어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마트 브랜드 상품을 사용해 보고 다시 써보려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마트의 '맛으로 승부하는 라면'을 고른 최화정(35.여)씨는 "처음 나왔을 때 호기심에 사먹어 봤는데 원래 먹던 라면보다 텁텁한 맛이 덜하고 깔끔한 맛이 마음에 들어서 계속 사먹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효창동에서 온 주부 박은진(40)씨는 '이베이직' 브랜드의 아동복 티셔츠를 택했는데 "초등학생 아들이 입을 옷 중에서 기본적인 티셔츠나 바지는 이마트 상품을 종종 산다"며 "시장 제품보다는 조금 비싸도 무난한 디자인에 품질도 괜찮은 편"이라고 평했다.

제조업체 상품과 이마트 브랜드 상품의 가격과 품질을 신중하게 살핀 뒤 제조업체 상품을 고르는 소비자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돌 지난 아들의 기저귀를 고르러 온 진모(30)씨는 "원래 사용해온 '하기스'제품이 같은 급의 이마트 제품보다 만원 정도 비싸긴 하지만 아이가 그동안 잘 써왔던 만큼 싸다고 섣불리 바꾸지 않을 작정이다"고 말했다.

최모(28.여)씨도 "이마트 콜라는 용량이 1.5리터짜리밖에 없고 시음해봤을 때 맛도 원래 마시던 제품이 더 나은 것 같다"며 이마트 콜라 대신 코카콜라를 카트에 넣었다.

이마트는 PB제품 출시직후 집중적으로 진행하던 판촉행사가 대부분 마무리되면서 초반에 비해서는 매출이 소폭 줄어들 가능성은 있지만 여전히 즉석밥, 세제, 콜라 등 주요 제품군의 판매량은 경쟁 제품을 여전히 앞서며 판매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진열면적이 줄었는데도 PB상품이 꾸준히 잘 팔린다는 건 가격과 품질면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반증"이라며 "제조업체들이 PB상품의 진열이나 원가 등을 놓고 불만을 표시하는데 유통업체의 재량 권한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자사 제품의 원가구조를 진지하게 평가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제조업체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마트가 압도적인 유통망을 바탕으로 가격압박을 계속하면 원자재나 인건비, 연구개발비 등 기본적인 품질 유지를 위한 비용마저 깎는 출혈경쟁이 불가피하며 이 경우 특히 중소업체들이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CJ관계자는 "식료품은 재료값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이마트는 이점을 무시하고 제조업체들이 가격인상을 부추기는 주범인 것처럼 몰고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CJ 햇반의 경우 이마트에 납품하는 물량이 7%에 그치는 등 판로가 다양해 이마트 PB에 따른 매출 영향이 회사 전체 매출의 1% 미만일 정도로 미미하지만 대형마트에 매출의 상당부분을 의존하는 중소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그러나 당장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이 우세하다.

한국식품공업협회 관계자는 "이마트의 PB 강화로 가공식품 제조업체의 반발이 두드러지고 실제로 손실을 보는 업체들도 있지만 이마트의 자사상품 밀어주기에 문제가 있는지도 확실치 않고 PB를 제조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대기업과 중견ㆍ중소기업의 이해가 엇갈려 업계 차원에서 대응에 나서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궁극적으로는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가 서로 접점을 찾아나가야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일부 제조업체가 타격을 받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마트는 이에 대해 "이마트가 모든 취급상품에서 PB를 생산하는 것은 아닌 만큼 시간을 두고 제조업체와의 입장 차이를 조율해 나가면 PB를 통해 서로 충분히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