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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트랜스지방과 전쟁중

바야흐로 트랜스지방과의 전쟁이다.

세계 최대 커피 체인업체인 스타벅스가 최근 미국 전역에서 트랜스지방의 사용 중단을 선언했고, 이보다 앞선 지난해 말 미국 뉴욕시는 과자나 패스트푸드 등에 포함된 트랜스지방을 요식업체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올해 12월부터 과자나 음료 등 가공식품에 들어있는 당이나 트랜스지방의 함량표시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식품제조업계와 외식업계도 이에 발맞춰 올해 말까지 과자나 패스트푸드 등을 만들 때 트랜스지방을 유발하는 부분 경화유 대신 식물성 유지를 사용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트랜스지방 죽이기’에 편승해 외식업체들이 이를 대체하는 식물성 팜유 등에 트랜스지방 만큼이나 위험한 포화지방산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사실을 슬쩍 감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트랜스지방 규제 세계적 대세

트랜스지방은 액체 상태의 식물성 지방에 수소를 첨가, 상하지 않고 운반하기 쉽도록 고체화(경화유)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물질로 불포화지방의 일종이지만 포화지방처럼 혈관 건강을 해친다.

특히 혈액 내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증가시킴과 동시에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등 심혈관계 질환 유발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쇼트닝과 마가린이 대표적인 제품.

외국은 이미 식품표시에 트랜스지방 표시를 의무화하거나 규제책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덴마크는 지난 2004년부터 가공식품에 함유된 지방 중 트랜스지방 비율이 2% 이상인 경우 판매를 금지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2005년 12월부터, 미국은 지난해부터 트랜스지방 함유량 표시를 의무화했다.

우리나라도 식약청이 올해 12월부터 트랜스지방 함량 표시를 의무화하기로 하면서 관련 업계도 바빠졌다. 문제는 정작 논란의 중심에 있는 패스트푸드와 같은 즉석가공품이 제외 대상이라는 것.

물론 패스트푸드업계에서도 자체적으로 트랜스지방을 최소화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국내 최대 패스트푸드업체인 롯데리아는 지난해 6월부터 일반 패스트푸드업체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두경화유와 달리 트랜스 지방산을 최소화한 무(無)경화 액체 식물성 팜유를 전 메뉴에 사용하고 있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식물성 팜유 도입 후 트랜스지방 함량이 햄버거의 경우 평균 0.3% 이하, 디저트류는 0.5%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맥도날드의 경우 오는 3월부터 트랜스지방과 포화지방을 한꺼번에 낮출 수 있는 ‘무경화 식물성 배합유’를 점진적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맥도날드 홍보팀 관계자는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트랜스지방을 낮추기 위해 팜유 등으로 대체하고 있지만,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어 고심하고 있다”면서 “맥도날드는 장기간의 노력 끝에 트랜스지방과 포화지방을 모두 낮출 수 있는 새로운 오일을 개발해 전국 매장에서 사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스타벅스의 경우 현재 케이크와 샌드위치 베이글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들은 튀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트랜스지방을 함유한 기름을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튀김용 쇼트닝과 마가린 등을 생산하고 있는 삼양사는 올해부터 ‘트랜스지방 프리(Free)’ 쇼트닝 제품을 국내 최대 도넛 회사에 독점 공급키로 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 튀김 전용 쇼트닝은 도넛의 맛과 식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트랜스지방은 거의 없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정치권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트랜스지방 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노트랜스클럽(회장 장일순)과 함께 서울 강남구를 미국 뉴욕시처럼 ‘노트랜스 특구’ ‘노트랜스 청정지역’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강남이 웰빙에 관심이 큰 지역인만큼 ‘트랜스 지방을 없애자’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랜스·포화지방 모두 줄여야

패스트푸드업체가 이처럼 트랜스지방을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쇼트닝이나 마가린을 대체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팜유의 경우 포화지방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또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트랜스지방을 잡으려다 포화지방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식약청에 따르면 야자열매에서 짜낸 기름인 팜유는 식물성기름이지만 동물성기름과 비슷한 수준의 포화지방을 가지고 있다. 특히 포화지방산이 일반 팜유의 경우 50% 수준이고, 팜유 중에서도 고급유로 불리는 팜올레인 역시 40%에 육박한다.

한국식품연구원 하재호 박사는 “트랜스지방은 팜유를 사용하면 분명 줄어들지만, 대신 포화지방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면서 “일부 대형업체에서는 트랜스지방과 포화지방을 동시에 줄이기 위해 고가장비를 도입,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마가린이나 팜유를 쓸 때보다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식약청 관계자 역시 “유명 커피체인점에서 사용되는 생크림과 프림 등은 포화지방이므로 트랜스지방과는 상관이 없지만, 포화지방 역시 과다 섭취할 경우 몸에 해롭다는 점에선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패스트푸드업체도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한 업체의 경우 대두경화유를 팜유로 대체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팜유가 포화지방산인 팔미틴산의 함량이 약 45%로 매우 높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한 패스트푸드업체 마케팅 담당자는 “트랜스지방은 거의 잡았지만 포화지방산을 제로화한다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할 지 몰라도, 비용과 제품의 맛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 “하지만 팜유에 채종유를 혼합해 사용하는 등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포화지방산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트랜스지방과 함께 포화지방산도 낮추기 위해서는 팜유만 쓰지 말고 콩기름이나 채종유(카놀라유) 등 불포화지방 함량이 높은 식물성 기름과 혼합해 쓸 것을 권하고 있다.

트랜스지방, 건강에 치명적

비만·심장병·동맥경화 유발
간암·당뇨병 등 관련도 의심


지방산에는 동물성 기름(지방)인 포화지방산과 식물성 기름인 불포화지방산이 있다.

그동안 포화지방산은 심장병이나 비만 같은 혈관 질환의 주요 원인이 되는 반면, 불포화지방산은 혈관 건강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연구 결과, 식물성 기름인 불포화지방산에도 동물성 기름 못지않게 혈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지방산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지방산이 바로 트랜스지방산이다.

이 지방산은 액체 상태의 식물성 기름을 마가린·쇼트닝 같은 유지(油脂)나 마요네즈소스 같은 양념 등 고체·반고체 상태로 가공할 때 산패(酸敗)를 억제할 목적으로 수소를 첨가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지방산을 일컫는다.

산패는 유지를 공기 속에 오래 방치했을 때 산성이 되어 불쾌한 냄새가 나고, 맛이 나빠지거나 빛깔이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액체 상태의 식물성 기름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수소와 결합해 만들어진 지방산이다.

트랜스지방산을 많이 섭취할 경우, 포화지방산과 마찬가지로 체중이 늘어나고, 해로운 콜레스테롤인 저밀도지단백질(LDL)이 많아져 심장병·동맥경화증 등의 질환이 생긴다.

또 간암·위암·대장암·유방암·당뇨병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는 등 트랜스지방산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르고 있다.

식품 가운데는 마가린, 쇼트닝, 마요네즈소스, 파이, 피자, 도넛, 케이크, 쿠키, 크래커, 팝콘, 수프, 유제품, 어육제품 등에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미국식품의약국(FDA)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는 트랜스지방산 함량 표시제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평소 동물성 기름이 많은 요리를 즐겨 먹다 협심증 발병 후 지방 섭취를 줄이라는 의사의 충고를 받고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있다는 식물성 기름으로 대처해도 안심할 수 가 없다.

지방 맛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마가린을 밥에 비벼먹곤 한다면 동물성 기름을 먹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식물성 기름 중 트랜스 지방(지방산)은 동물성 기름 못지 않게 심장에 해롭다.

‘트랜스지방’ 생활을 바꾼다

직접요리 가정 급증 요리학원 문전성시
영화관람시 팝콘 ‘뚝’ 수제햄버거 인기


‘트랜스 지방’(trans fat)으로 인한 주부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트랜스 지방은 최근 성인병과 비만 등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유해성이 꽤 많이 알려졌지만 국내에서 유통되는 대부분 제품에는 함유량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패스트푸드와 빵, 쿠키 등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식품에 많이 들어 있지만 어떤 것을 골라 먹여야 할지 자녀를 둔 부모 심정은 막막할 따름이다.

최근 미국 뉴욕시가 식당의 트랜스 지방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밝히는 등 세계적으로 규제가 잇따르고 있으며 한국은 내년 12월에야 트랜스 지방의 함유량 표시가 의무화될 전망이다.

▷불안한 주부들=경기도 안양에 사는 주부 정선경(32)씨는 얼마 전 한 백화점이 운영하는 요리학원에 등록하고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전기오븐과 튀김기를 구입했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트랜스 지방의 유해성을 알게 된 뒤 5살짜리 딸 아이에게 직접 간식을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트랜스 지방의 실체가 알려지면서 이처럼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주 식단은 물론 간식까지 직접 요리를 하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

유치원생 딸을 둔 김영지(36·여)씨는 “남편과 딸이 입맛이 까다롭기 때문에 남편에게는 도시락을 싸주고 아이에게도 집에서 만든 햄버거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트랜스 비만’ 공포=트랜스 지방은 20~30대에게 비만의 최대 적으로 꼽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극장에 갈 때면 어김없이 팝콘을 샀던 회사원 김태주(28·여)씨가 영화감상 습관을 바꾼 것도 트랜스 지방 때문이다.

김씨는 “잠시 느끼는 즐거움보다 몸에 끼치는 해악이 더 크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기름기 있는 음식을 꺼리게 됐다”며 “이 참에 아예 군것질을 줄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체중 때문에 고민인 남모(34)씨 역시 즐겨먹던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끊고 값이 3~4배 더 비싼 수제(手製) 햄버거집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서울 삼청동의 한 수제 햄버거집은 얼마 전 부터 예약을 안 하면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