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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의학서' 본초강목 DB화 추진

흔히 동의보감(東醫寶鑑)을 '허준 저'(許浚 著)라고 하지만, 정확성을 기한다면 '허준 편'(許浚 編)이 맞다. 통상 저술이라면 글쓴이의 독창적인 사고를 글로써 표현한 문헌을 지칭하는 점에 비춰볼 때 동의보감은 분명 저서와는 거리가 멀다.

동의보감은 허준(1546-1615) 편술(編述)이다. 허준, 혹은 그를 우두머리로 한 일군의 지식인 집단이 그들의 노하우를 집적했다기 보다는 기존에 나온 각종 책자에서 관련 구절들을 가려뽑아 적절히 재배열했기 때문이다. 편(編)이란 배열이란 뜻과 상통하며 술(述)이란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말이 엿보이듯이 원전을 훼손시키지 않고 인용하는 일을 말한다.

편저 형태는 비단 동의보감 뿐만 아니라 전근대 동아시아 저술 행태에서는 일종의 관행이다. 따라서 동의보감이 편술이라 해서 그것이 지닌 가치가 감소되지 않는다.

동의보감이 완성되기 직전, 명(明)이 지배하던 중국에서도 '불멸의 의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이 출현했다. 동의보감이 종합의학서이자 허준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학계의 집단적ㆍ국가적 성과물임에 비해 본초강목은 약물학 전문서이자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이라는 개인이 30년을 투자한 결실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동의보감이 조선을 박차고 중국과 일본에서까지 널리 통용된 동아시아 의학계의 '스테디셀러'임이 분명하지만, 본초강목은 이를 능가한 '초대형 장기 베스트셀러'였다. 권수 기준으로 동의보감이 25권이며, 본초강목은 그 두 배인 52권에 달한다.

농촌진흥청 농업과학도서관이 고농서(古農書) 국역과 그 DB화 사업의 일환으로, 비단 식물성뿐만 아니라 동물성ㆍ광물성까지 포함해 1천892종에 이르는 각종 약재를 해설한 동아시아 약학서의 금자탑인 본초강목을 한글로 완전히 옮기고 그 원문을 포함한 관련 자료를 DB로 구축하는 일을 추진한다.

도서관 이길섭 관장은 "이번 DB화 작업대상에는 이시진 저술의 원전뿐만 아니라, 19세기 메이지유신기에 일본에서 본초강목 이해를 위해 제작한 도해집류들인 본초도보(本草圖譜) 25권과 유용식물도설(有用植物圖說) 3권도 포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결과물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본초강목은 원문 이미지와 그 텍스트, 그리고 국역 및 국역문의 DB화를 거쳐 e-book 형태로 가공하는 한편 관련 전문용어 또한 DB화해서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과 농업연구자에게 제공하게 된다.

문제는 사업비.

농업과학도서관은 2007년도 이후 2009년까지 3개년 사업계획을 신규사업으로 수립하고, 이에 소요될 예산으로는 18억원을 책정했다. 3월을 시작 기점으로 삼는 2007년도는 용역비와 장비비를 포함해 사업비 명목으로 8억원 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위해 농업과학도서관은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 본초강목 DB화를 위한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과제신청서'를 제출했다. 현재 2차 심사까지 올라간 상태.

도서관의 다른 관계자는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란 곳이 아무래도 IT산업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우리가 추진하는 고전국역사업에는 관심도가 덜 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나아가 왜 한국고전도 아닌 중국고전을 국역하려 하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한문고전이 지금은 죽은 것으로 아무 소용도 없다는 선입견이라든지, 중국문헌이기에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는 '국적주의'적 신념은 시급히 청산되어야 한다"면서 "본초강목을 알아야 동의보감도 더욱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