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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숙 문화칼럼> 송편 예찬

                                                             손바닥에 굴리고 굴려 새알을 빚더니

손가락 끝으로 낱낱이 조개 입술을 맞추네.

금쟁반 위에 봉우리를 깎은 듯 쌓아올리고,

옥젓가락으로 집어올리니 반달이 둥글게 떠오르네.

  -김삿갓 시

 

 

추석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풍습으로 올해에 새로 거둔 햅쌀과 햇과일로 차례 상을 차리고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축제의 날이다. 올 추석은 대체휴일제가 적용되어 토요일부터 나흘간의 연휴를 즐길 수 있어서 각 가정마다 가을빛 나들이가 붉게 타들어가는 단풍처럼 아름다운 빛으로 피어날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신라 3대 유리왕이 도읍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뉘어 7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 까지 한 달 동안 베짜기 내기를 한 뒤 진편에서 음식과 다과를 준비하고 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이때 부르던 노래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로 전해져 왔다. 이는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의 넉넉한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다.

 

그래서 추석은 민족의 대이동이 있는 큰 명절이며, 남과 북은 물론이려니와 연변 조선족을 비롯한 해외동포들에게도 기다려지는 큰 잔칫날이며 온 가족이 모이는 화합의 날이기도 하다. 이런 명절이 있기 때문에 고향을 찾아 성묘도 하고 변화해 가는 고향산천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 어렵고 힘든 귀성길을 마다하지 않고 수백만 도시의 인구가 부모님 계신 고향으로 길을 떠나는 것이리라.

 

어디 그 뿐인가,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는 일이야말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일이라는 생각에 어린 자녀들을 앞세워 고향을 찾아 가는 게 아닐까. 하지만 가정의 위계질서나 전통적인 가치관이 실종위기에 있는 현대사회는 과거와 미래의 지형도까지 바뀌고 있다. 그래도 설이나 추석 명절만은 잊지 않는 걸 보면 고향에 대한 향수만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가 오직 선영(先塋)을 찾기 위한 것인지 문득 의구심이 일어 곰곰이 생각해 본다. 명절 때마다 겪는 민족 대이동의 행렬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 민족의 성장력이 높아졌다는 뜻일 수도 있고,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이지만 조상에 대한 감사함은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아니면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성장해 가고 있음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석이 쓸쓸하고 외로워서 고통스러운 소외된 이웃이 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주위에 친지나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이나 숨어 고생하는 실직자들이 있다. 그들과 어려움을 함께 한다면 더욱 포근하고 정다운 추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추석 한가위 날만이라도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이나 양로원, 고아원 같은 곳을 찾아볼 수 있는 여유와 관심을 나눈다면 더욱 풍성한 한가위가 될 것이다.

 

과거 인류는 천신과 용왕신, 조상신 등이 날씨를 다스린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을에 수확한 첫 농작물을 차려놓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례를 지낸데서 유래되어 동서양이 함께 누리고 있다. 우리의 추석이나 중국의 중추가절, 서양의 추수감사절은 농작물 수확에 대한 감사의 축제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은 어떤가, 산업사회의 성장으로 추석의 의미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가족중심의 감사 축제에서 공휴일 개념으로 젊은 세대들은 여행스케줄을 맞추는 게 우선이다. 하긴, 요즘처럼 무엇이든 고속화된 시대에 서로가 필요한 시간대를 맞추어 부모님을 찾아뵙는 젊은이들이 많은 걸 보면 그들만 탓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있는 추석 명절, 열 일 제쳐두고 고향을 찾아 온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시간을 갖는다면 서로 떨어져 지낸 시간들이 송편 속에 갖가지 고물이 파묻혀 서로의 얼굴에 송편꽃이 피어나지 않을까.

 

어찌됐든, 우리민족의 귀소본능은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다. 더구나 올 추석은 만월보다 더 큰 달(Super Moon)을 보게 된다고 하니 기쁨이 더욱 상승되는 기분이다.

 

모처럼 둘러앉은 가족들이 함께 송편을 빚으며 반달모양의 떡을 주고받는 다면, 필시 먼 훗날 그 반달은 점점 배가 불러 둥근 보름달로 서로의 가슴 속에 영원한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