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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실의 맛집 멋집] 고모리 시리즈 제 2 탄

외갓집 같은 욕쟁이할머니 두부집

우리 외할머니는 키가 아주 작으셨다.
그런데다가 내가 중학교2학년 다닐 때 돌아가셔서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키가 아주 작고 단아하셨단 것만 생각난다. 해서 할머니들만 뵈면 늘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같이 살았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주 뵈었던 것도 아닌데 우리 강아지..하셨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욕쟁이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랑은 하나도 안닮으셨다.
우리 외할머니의 두 배쯤 되시는 체격에 목소리도 괄괄하시고 더구나 욕도 잘 하신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욕을 하신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겨울에 눈이 펑펑 내려서 길이 미끄러운데 식사 하러 오겠다고 전화하는 손님들이나 잔뜩 시킨 음식 먹지도 않고 남기거나 그 것도 아니면 술 먹고 운전한다는 손님한테만 욕을 하신다.

이쯤 되면 아마 모두 당신들의 할머니를 생각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음식은 정이 담뿍 들어있다.

할머니 집에서-굳이 댁이라고 표현하지 않겠다- 파는 음식의 주종은 우거지 정식과 두부인데 모두 할머니가 손수 참견해서 만든 음식이다.

보기엔 시커멓고 맛없게 생긴 우거지된장국은 아무데서나 맛 볼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꼭 어느 시골 밥상에서나 맛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 것은 겨우내 말린 우거지를 잘 삶아서 그 날 그 날 소비할 양만을 꺼내 국을 끓인다.

밥은 또 어떤가.. 통통한 보리가 섞인 밥을 밥통 째 갖다 주신다.
식사량이 많은 사람도 전혀 걱정이 안된다.(흐흐..)

모든 야채는 거의 무기농법으로 할머니가 직접 재배하신 거다.
젓갈이면 젓갈, 장아찌면 장아찌, 할머니의 손길이 배지 않은 것이 없다.

일단 상을 받아보면 이십 가지의 반찬에 입이 떡 벌어지는데 찌개만 해도 청국장에 비지찌개까지 두 개나 된다.

청국장, 된장, 고추장 모두 할머니가 손수 담그신 거란다.
갖은 젓갈에 오밀조밀하게 무친 나물, 생선까지 몇 도막 정답게 올라와있다.

비지찌개에 비벼서 한 그릇, 된장찌개에 비벼서 한 그릇.. 누구나 이렇게 과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남은 반찬이 아까워서 또 한 그릇 먹게 되면 못 일어난다. 배불러서.. 그렇다고 두부를 안 먹을 수는 없다.
새벽 일찍 일어나 가마솥에 두부 만들 불을 직접 떼신다는 할머니의 정성이 느껴지는 따끈한 두부를 보면 술 한 잔이 어찌 빠질 수 있을쏘냐..

누룩과 당귀, 솔가루로 만든 동동주는 한약재를 넣어서 그런지 몸에도 좋을 것 같다.

한약재가 식당내부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식당 뒤 산에다 일주일을 묻어 두신다는 데 어디 묻었냐고 살짝 여쭈어보니 절대 비밀이란다.

할머니는 원래 저수지 옆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셨단다.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에게 라면이나 매운탕을 만들어주시다가 그 음식 솜씨에 반한 낚시꾼들이 식당을 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해서 시작한 식당업이 거의 이십년이 되간다.
허름한 식당건물에 비해 주차장이 엄청 넓다.
주차장이 넓은 식당 음식이 맛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 의견이 또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본 기자 역시 할머니의 우거지정식을 먹으러 다닌지도 그러고 보니 꽤 오래 됐다.

식사를 마치고 할머니를 만나러 댁으로 갔다.
늘 바쁘셔서 언제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못 했는데 막 밭에서 돌아오셨다며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으신다.

‘대통령 말야.. 그냥 하라고 하면 안될까? 어차피 그 눔이 그 눔인데 그래도 우리가 뽑아준 의리가 있지.’ 하신다.

식당하시고 돈 많이 버셨어요? 하고 묻자 돈 못 버셨단다.
이렇게 손님이 많은데..하자 음식을 팔아서 무슨 돈을 벌어!! 하신다. 그래서 이 푸짐한 상이 일인분에 오천 원,동동주 한 되에 사천 원이다.

아들이 둘 있는데 지금 있는 주차장으로 쓰는 땅도 박대통령 시절에 산거라고 하시면서 절대 유산으로 물려주거나 하지 않으실 거란다.
빚지고 못 먹는 시골사람들에게 남겨 주고 가시겠다는 할머니..뱀장사며 된장장사 안해보신 것이 없단다.

나는 할머니 옆에 서서 그런 할머니가 너무 좋아 자꾸 웃음만 터졌다.

차려진 상에 너무 입맛이 돌아 사진 찍는 것도 깜빡 잊어 먹다가 도중에 찍은 것을 절대 추접스럽게 생각하시지 말기를..

욕쟁이 할머니 두부집은 고모리 저수지 옆에 있다.
포천 시내 들어가는 사거리에서 우리병원이 보이면 우회전해서 십 분 쯤 달리다 보면 저수지 옆에 자리한다.

허름한 시골집을 그대로 식당으로 사용하여 마치 고향집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욕쟁이 할머니 두부집..

서예가인 아들이 직접 써서 걸어놓은 금연안내문도 재미있다.
가끔 외롭거나 맘이 허전하면 외갓집 생각하면서 할머니를 뵈러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전화:031-542-4939,542-3667)

우은실 기자/silver@f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