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씨 장남...경영스타일과 외형 등은 조부 닮아
2006년 학교 급식 식중독 사고 이후 최대위기에 빠진 CJ그룹
CJ그룹의 이재현 회장이 검찰에 출두했다.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다면 최태원 SK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이호진 태광 회장에 이어 재벌 회장 중 네 번째 구속이 된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구속만은 막기 위해 법무법인 광장과 김앤장 등 변호인단 드림팀을 꾸려 혐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명해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동휘 CJ제일제당 부사장을 그룹 홍보실장 겸 제일제당 홍보팀장으로 발령하는 등 구속 상황 이후까지 염두해 두는 철저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가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씨의 장남이며, 2002년 회장 취임 후 사명을 바꾸고 10년 만에 재계 12위로 거듭나게 한 이재현 회장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범삼성가 모태기업이라는 자부심
서울시 중구 쌍림동 CJ본사에는 이재현 회장의 조부인 이병철의 흉상이 3D 흉상 홀로그램으로 전시돼 있으며, 제일제당의 홈페이지에는 설립 당시 삽을 들고 서 있는 이병철의 흑백사진이 배경으로 나온다.
‘상징’처럼 자리 잡은 이병철의 형상들은 CJ그룹이 물론 범삼성가의 모태기업이라는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1953년 설립된 제일제당공업은 우리나라 최초의 설탕 생산 공장이었으며, 당시 국내 설탕 소비량의 3분의 1을 담당했다.
제일제당은 1993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됐으며, 당시 삼성전자의 이사였던 이재현이 제일제당의 경영을 맡고 1996년 제일제당을 기반으로 CJ그룹이 출범했다.
이재현 회장은 경영스타일 등 이병철 창업주와 많은 부분 닮아 ‘리틀 이병철’이라고 불리운다. 이 회장은 인재를 중시하는 경영철학이 고 이병철 창업주와 가장 닮은 점이라고 알려져있다.
고 이 창업주는 인재를 키우고 그 인재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경영을 했으며, 이 회장 역시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기존 경영진에 대해 대폭적인 신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병철 창업주는 또,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재를 털어 호암 미술관을 건립할 정도로 문화에 강한 애착을 보여 왔으며, 이재현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에게 문화의 중요성을 교육받았다.
이 때문에 특정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꼽히는 트렌드를 읽고 전 세계의 트렌드로 볼 때 중장기적으로 승산이 있다고 여겨지면 추진하는 것이 이 회장의 스타일이라는 분석이다.
삼성과의 끝없는 대립
1960년생인 이재현 회장은 삼성가 3세 중 유일하게 해외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다. 고려대 재학 시절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소박한 일상을 보내 가까운 지인들조차 그가 재벌가 자제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이 회장이 입사한 첫 직장은 삼성과 무관한 시티은행이었다. 하지만 조부인 이병철 회장이 "종손을 왜 남의집살이를 시키냐"며 불호령을 내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85년 제일제당 경리부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88년 경리부 차장, 89년 기획관리부장으로 근무했으며, 97년 부사장, 99년 부회장을 거쳐 2002년부터 회장에 올라 CJ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제일제당의 독립은 순탄치 않았다. 이 회장은 삼성 측의 제일제당 분리 반대에 맞서 분리 독립에 성공했고, 1996년에 제일제당그룹을 공식 출범시켰다. 그 당시 삼성에서 이 회장에 대한 미행과 감시카메라를 설치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갈등의 시발점이 된다.
또, 2011년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CJ는 당시 삼성증권을 인수자문사로 선정하고 인수를 추진했는데, 뒤늦게 삼성SDS가 포스코와 손잡고 인수전에 뛰어드는 과정에서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여기에 지난해 이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동생인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4조원대 상속소송을 제기하자 삼성이 이 회장을 차량을 미행한 정황이 포착됐다.
삼성과 CJ의 갈등은 1967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병철 전 회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이맹희씨는 경영일선에 나선 6개월 만에 아버지의 신뢰를 잃고 동생인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게 된다.
재개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맹희씨는 이건희 회장이 악의적인 헛소문을 퍼뜨려 아버지와 자신을 갈라놨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은 상속 분쟁 당시 이맹희 회장을 가리켜 “이맹희씨는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안 된다”며, “날 쳐다보지도 못했던 양반,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CJ와 삼성의 불편한 관계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25주기 추모식에서 삼성이 이 회장의 정문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이 회장은 장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반발하다가 끝내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정점을 찍었다.
협상자리에 청바지를 입고 피자 먹는 CEO
1996년 식품기업이던 제일제당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드림웍스 지분의 30%인 3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주주로 참여하게 된다.
드림웍스와의 투자 협상을 논하는 중요한 자리에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 피자를 먹으며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프리 카젠버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재현 회장의 일화는 아직까지 회자된다.
이재현의 소탈한 성격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회장이 직접 썼다는 이메일의 내용에는 “작은 설탕공장에서 시작해 임직원의 힘으로 키운 회사의 이미지에 누를 끼치고 자부심에 상처를 입혀 미안하다”며, “책임질 일은 책임을 지고 CJ가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CJ 내부 관계자는 “이 회장은 말단직원들과도 수시로 자유토론을 하고 등산, 영화감상 등을 함께 하는 자리도 자주 갖는다”며, “CJ는 여타 대기업보다 복장과 호칭이 자유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급식사고, 재기 성공...위기 극복해 새로운 60년 맞이할까
2006년 6월 CJ푸드시스템이 공급하는 학교 급식에서 3000명의 식중독 환자가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재현 회장은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당시 이 회장은 ‘학교급식 전면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학교 급식을 포기한 CJ는 700억대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출장길에서 소식을 들은 이재현 회장은 결론이 나기 전까지 잠을 안자고 화상으로 릴레이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화상회의를 통해 “기자회견이나 발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며,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한바 있다.
CJ푸드시스템은 급식사고로 CJ그룹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지만 사회적 책임을 지고 급식시장에서 철수하는 발 빠른 대응책을 마련했다.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CJ그룹은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CJ그룹에 대한 이번 수사는 개시 후 이틀 만에 이 회장을 출국금지 시키고 이례적으로 이 회장의 자택까지 압수수색을 펼치는 등 그야말로 속도전이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CJ의 출발점은 식품이었지만 식품회사의 대표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이재현 회장이 얼굴을 내비치는 일은 없었다”며, “이번 사태는 CJ가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군이 없이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준 계기”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이 이병철 창업주에게 배운 가르침 중에 최고는 "대세가 기울어서 이미 실패라는 판단이 서면 깨끗이 미련을 버리고 차선의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삼성가 ‘비운의 장손’출신으로 CJ그룹을 재계 12위로 일구어낸 이 회장이 향후 선택하게 될 차선의 길이 어떤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