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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식량안보 준비 안됐다"…식품업계 72% "위기 대응 미흡"

곡물 자급률 20.1% 불과…“정부-민간 혼합 비축 체계 시급”
전문가들 "공공 비축 확대·위기 대응 전담기구 필요"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기상이변, 팬데믹, 전쟁 등 글로벌 리스크가 일상이 된 시대. 식량 위기는 이제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한국은 자급 기반이 취약하고, 정부 대응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밥상 위 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 식량안보의 근본적 재설계가 요구된다.

 

7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최근 발표한 '식량 위기에 관한 인식 및 대응 현황 조사 분석'에 따르면, 국내 전문가 및 업계의 70% 이상이 “한국은 식량위기 대응 역량이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자급률 제고와 비축 시스템 확충, 민관 협력 기반의 위기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실제 위기 체감… 정부는 체계 미흡”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발생한 3대 식량 위기(2007/08 애그플레이션,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민간 식품·가공·유통업계의 72.2%가 식량안보 위기였다고 평가한 반면, 연구·학계는 53.3%만이 위기로 인식했다. 업계는 실제로 원료곡 확보 실패나 급격한 가격 상승을 겪었고, 특히 제분용 밀과 사료용 곡물은 수입선 제한 등으로 더 큰 부담을 떠안았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위기 대응은 체계적이지 못했다. 민간 업계 70.9%, 학계 58.3%는 “현재 정부의 식량안보 위기 대응 정책은 미흡하다”고 답했고, 특히 ‘비축·저장시설 관리·확충’과 ‘국내 자급률 강화’에 대한 정책 점수가 가장 낮았다.

 

 

“민관 전담기구 필요”… “비축 목적도 명확히 해야”

 

현재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0.1%, 전체 식량자급률은 45.8%(2022년 기준)에 불과하다. 밀, 콩, 옥수수 등 주요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국의 제한 조치나 운송 중단 등은 즉각적인 공급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는 “위기에 대응하려면 원료곡 수입국을 다변화하거나, 계약물량 조절·배합 변경·선도구매 등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도 단기 처방일 뿐, 결국 장기적으로는 공공 비축 확대와 비축물량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정부-민간 혼합 비축체계 구축이 해법으로 제시된다.

 

스위스, 일본 등은 식량안보 위기 대응 전담 행정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도 80% 이상이 “한국도 전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응답자의 38.9%는 위기 대응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국민의 식량 소비 수준 보장”과 “물가 안정”으로 꼽았다.

 

연구에 참여한 최윤영 책임연구원은 “쌀 외에도 밀, 콩, 옥수수 등 수입 곡물의 공공 비축이 필요하며, 정부 단독이 아닌 민간 위탁 혼합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업계에서는 "비축의 목적이 공급 안정인지, 가격 안정인지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최근 기후위기, 전쟁, 전염병 등 전방위적 리스크가 일상이 되며, 식량안보는 더 이상 농업 이슈에 국한되지 않는다. 식량위기는 곧 경제·복지·안보 위기로 연결되는 복합 위기다. 보고서는 정부의 대응체계 정비, 법제도 재정비, 실효성 있는 민간 참여 기반 조성 없이는 ‘위기의 식탁’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대응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식량 방패'를 세우는 일이다. 한국 사회는 이제 식량안보를 '농업'이 아닌 '국가전략'으로 인식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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