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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명절만큼은 농민의 정직한 땀이 깃든 우리 농산물로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입법논의부터 우려를 나타내며 수없이 내뱉은 속담이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법 취지에 공감할 것이다. 다만, 현실과 동떨어진 방법론은 농민을 파탄으로 내몰기 때문에 김영란법 적용대상에서 국내산 농축수산물은 제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피해를 호소하고 수정을 요구했지만 청렴사회 건설이라는 대의와 ‘일단 시행 후 시행령 보완’방침으로 강행됐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뒤 농축산업계는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명절 선물 수요가 급감하고, 외식업계도 경영난에 시달렸다. 농경연 조사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인 2017년 설 기간 국내산 농식품 선물세트 판매액은 25.8% 감소했다. 국내산 농축산물 판매액이 줄어든 빈자리는 수입 농축산물이 꿰찼다. 수입 농축산물 선물세트 비중은 2015년 3.6%에서 2017년 5.4%로 상승했다.


외식산업연구원은 음식점 10곳 중 7곳이 수입이 줄고, 평균 매출 감소율은 37%에 달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서초동 한복판 한정식집에는 수입 쇠고기로 구성된 2만9900원짜리 식사메뉴 이른바 ‘김영란 세트’가 등장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고 있었다. 소비 위축의 우려가 현실화되는 과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생계를 위협하는 현실적인 피해를 호소하며 여의도 한복판 아스팔트로 나왔다. 이후 농축수산품 선물에 한해 상한액을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지만, 이 역시 반사이익은 수입농축산물이 누렸다. 상한가액이 올라가면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인기 부위를 포함한 선물세트 구성이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전국한우협회가 김영란법은 ‘수입농축산물 장려법’이라고 지적하는 지점이다. 


정부와 농민이 함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갔던 좋은 선례도 있었다. 코로나19와 태풍수해 등으로 피폐해진 농심(農心)을 달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날은 선물가액 범위를 20만원으로 상향하는 임시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법 시행후 지금까지 농축수산물이 김영란법의 입법취지를 훼손하거나 청렴사회 건설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인정되기에 내릴 수 있는 조치다. 


전국한우협회는 당정의 노력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내면서도 선물적용대상에 국내산 농축수산물 제외를 할 수 없다면 가액범위 20만원 상시유지를 당부했다. 


그런데 추석을 앞두고 정부는 ‘청렴 선물권고안’을 만들어 민간영역까지 확대할 움직임을 보여 논란이 불거졌다.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20만원 상향으로 달랜 농심에 기름을 붓고 태워버린 셈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으로 사회경제적 불안감이 여전한 가운데 이러한 소식은 과도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농축산업계에 대한 폭력과 다름없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급격한 소비위축이 일어난 결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부문까지 범위를 확장해 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권익위는 개탄을 금치 못하는 국민적 분위기를 감지하고 ‘청렴 선물권고안’의 제정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 정부와 정치권의 해법을 기대한다. 명절 대목만이라도 농축산물 선물가액 20만원 정례화에 뜻을 모아 가라앉은 국민경제와 농축산업계에 위안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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