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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드라마로 보는 식생활의 변화] (4)전원일기-순대

[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편집자 주> 각박한 일상에 지쳐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90년대 드라마가 여러 채널에서 부활하고 있다. 그 중 '전원일기'는 매니아층이 생길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방송된 전원일기는 농촌사회의 이면과 가족애를 섬세하게 그린 작품으로 각광받았다. '양촌리'라는 동네에서 손꼽히는 대가족으로 꼽히는 김회장의 가족을 주축으로 이웃 간의 일상을 이야기 하는 이 드라마는 유독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 23년이라는 세월을 담은 이 드라마를 보면 우리의 식생활도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다.

Episode
그날은 김 회장의 막내며느리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조른적도 없는데 남편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두 가지나 사왔기 때문이었다. 그 두가지는 바로 읍내에서 사온 예쁜 새 옷과 순대 2000원 어치였다.

 

새옷을 입어보고 한껏 기분이 들뜬 그녀는 순대를 가족들과 나눠먹기로 결심하고 큰집으로 향한다.

 

아들이 며느리 몫의 순대만 사와서 서운했던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부엌으로 순대를 가져오자 냉랭한 마음이 풀리고 노할머니와 이웃과도 순대를 나눠먹는다.

90년대 초반의 촌동네는 군것질을 할 수 있는 메뉴가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읍내에서 살 수 있는 순대는 훌륭한 간식이자 식사대용이었던 셈이다. ‘순대’에 대해서 수많은 고서를 연구하고 발품을 팔아 '순대실록'을 펴낸 육경희 대표는 "동물의 내장이나 케이싱(식용 비닐)에 각종 재료를 넣은 원통형 음식이 순대의 총칭"이라고 말한다.

서양 소시지의 한국 버전이 순대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순대는 조선시대의 문헌 '농정회요'와 '시의전서'에도 언급되어 있다. 지금처럼 떡볶이와 함께 친숙하게 먹을 수 있는 분식집의 메뉴, 든든하게 속을 채울 수 있는 국밥의 재료로 자리잡은 것은 1950년 이후다.

 

속초의 아바이순대와 천안의 병천순대 등 각 지역의 명물 순대들은 그 고장의 식재료로 만들었지만 1950년대 부터는 순대의 대명사가 된 저렴한 당면이 순대의 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림동의 순대타운은 순대매니아들과 애주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순대타운은 1992년, 70년대 중반부터 신림동의 시장 안에 순대볶음을 팔던 사람들이 입주하면서 시작됐다. 1970년대의 주된 단골 안주가 빨간 순대볶음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순대타운의 시그니처 메뉴인 백순대였다.

 

신림동 순대타운이 형성에 기여를 한 메뉴가 백순대였던 것이다. 1980년대가 돼서야 순대에 고추장 양념을 넣어 볶은 순대볶음이 나왔다. 1992년 민속순대타운 건물로 옮기면서부터는 대형 철판에 양배추, 파, 버섯 등의 돼지곱창과 가래떡, 쫄면까지 다양한 재료를 기름에 볶는 백순대와 양념순대볶음를 모두 취급하게 됐다.

돼지뼈를 고아 우려낸 국물에 순대와 오소리감투 염통 등을 넣고 끓인 순대국밥은 서민들의 소울푸드다. 배추겉절이와 깍두기, 새우젓, 된장과 고추가 곁들여져야 순대국밥 한상이 완성된다.

 

선릉에서 가장 유명한 외식업장 중 하나인 백암농민순대는 일년 내내 대기줄이 길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오전 11시 10분 부터 점심 장사를 시작하는데 30분 전 부터 웨이팅이 있기로 유명하다.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현관 앞에 비치된 대기명단에 이름과 인원수를 적는 것이다.

고기는 살코기와 비계가 아주 적절하게 섞여서 순대와 함께 곁들이는 수육도 순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뺴놓을 수 없는 훌륭한 술안주이자 식사메뉴다.

 

최근에는 철판에서 지글지글 구워서 칼로 썰어먹는 순대 스테이크도 젊은 층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가장 맛있는 음식은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불편한 사람과 함께 한다면 산해진미라 해도 그 맛이 느껴질리 없다.

 

지금은 특별함이 없는 서민음식이지만, 90년대 초 양촌리라는 동네에서 순대를 먹기 위해서는 언제 올지 감도 안잡히는 버스를 기다려서 읍내로 나가야 한다. 철없는 행동으로 시부모에게 핀잔을 듣는 일이 잦았지만 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아는 막내며느리는 귀한 음식이었던 순대를 기꺼이 내어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