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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드라마로 보는 식생활의 변화] (1)전원일기-닭백숙

[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편집자 주> 각박한 일상에 지쳐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90년대 드라마가 여러 채널에서 부활하고 있다. 그 중 '전원일기'는 매니아층이 생길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방송된 전원일기는 농촌사회의 이면과 가족애를 섬세하게 그린 작품으로 각광받았다. '양촌리'라는 동네에서 손꼽히는 대가족으로 꼽히는 김회장의 가족을 주축으로 이웃 간의 일상을 이야기 하는 이 드라마는 유독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 23년이라는 세월을 담은 이 드라마를 보면 우리의 식생활도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다. 

Episode
김 회장의 시집간 막내딸이 친정에 왔다. 출가한 딸의 친정 방문이 누구보다 반가운 김회장 부부는 딸의 저녁상에 특별 메뉴인 '백숙'을 올렸다. 하지만 가족들은 귀한 음식에 선뜻 손을 대지 못하고 국물만 떠먹는다. 고기를 좋아하는 둘째 며느리는 눈치를 보면서 가족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닭고기 한 점을 뜯는다.


1980년대 '닭'은 매우 귀한 식재료였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기 전의 시대였기 닭고기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는 ‘고깃닭’이 아닌 대부분의 양계업이 계란을 얻기 위한 ‘산란계업’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닭을 잡아먹는 행위는 그만큼의 달걀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1971년에 출시된 콩기름은 지금처럼 흔한 식재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튀긴 닭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조리법도 흔치 않았다. 닭만큼이나 기름 자체도 귀했기 때문에 잔치나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만 기름에 굽거나 튀긴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모두가 가난한 시기에 대가족이 맛이라도 볼 수 있는 요리법은 백숙이 제격이었다. 고기는 물론 국물까지 나눠 먹을 수 있고 남은 국물에 찹쌀과 마늘과 같은 부재료를 넣어 죽도 끓일 수 있어서다. '백숙'이라는 이름에서 흔히 닭을 떠올리지만 사실 백숙은 소,돼지,생선까지 모든 육류를 맹물에 푹 삶아 익힌 음식을 뜻한다. 즉, 조리법이라는 이야기다.

 

철기시대 무쇠솥의 등장과 함께 닭백숙의 조리법도 개발됐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다른 가축들에 비해 그나마 저렴했던 닭은 푸성귀 일색인 농촌 밥상에서 가족의 보양과 손님 접대를 상징하는 문화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백숙과 비슷한 요리법인 삼계탕은 부재료도 많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이름을 달리하지만 닭 한 마리를 여러명이 나눠먹을 수 있는 백숙과 달리 한마리가 1인분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작고 어린 닭인 영계를 쓰는 삼계탕과 달리 백숙은 육계와 토종닭 등을 쓰기 때문이다.

 

끓여 먹기만 하던 닭은 콩을 수입해서 식용유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상황이 갖춰지면서 볶음이나 튀김요리로 더 많이 먹게됐다.

 

닭과 밀가루, 식용유의 조합인 프라이드치킨은 닭을 물에 넣어 끓인 백숙보다 고소한 껍질과 육질로 사람들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하지만 백숙은 칼로리가 낮고 우수한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점에서 보양식으로 꼽힌다.

 

나른한 봄, 가마솥에서 은근히 끓인 백숙과 시골풍경이 떠오른다. 하지만 도시 생활에 지친 직장인들에게는 로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