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지방농정 '새 패러다임' 전환 신호탄

농림부, 지역농업 클러스터 선정 본격 착수

농림부는 이번달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역농업 클러스터 시범사업과 관련해 접수를 받고 본격적인 선정작업에 들어간다.

다음달 중순 경 10여개 지역의 윤곽이 그려질 예정인 가운데, 각 지자체도 준비가 한창이다. 올해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를 통해 농림부는 중장기 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지역농업 클러스터, 왜 시작하지
이 사업은 농가소득증대와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농산물 산지를 중심으로 거점을 확보하고 배후의 관광, 가공산업 등에 파급효과가 극대화 되도록 각 지자체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 각 지자체별로 농산품에 대한 브랜드화 작업이 광범위하게 추진되고, 재정경제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특구선정 작업 등과 맞물리면서 농산업분야 및 농촌지역의 큰 틀이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것.

이와 관련해 농림부측은 지역에 특화된 농산업을 중심으로 기술과 경영이 융합된 '시스템 농업'의 구축을 통해 농가소득을 증대시키는 전략적 차원에서 지역농업 클러스터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과거의 생산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가공, 유통 등 농산업과 지역의 문화, 관광산업을 연계해 맞춤농정으로 전환시키는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핵심 농산업을 중심으로 산·학·관의 핵심역량을 체계화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지역특구와는 무엇이 다른가
지역특구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원하는 규제를 풀어주는데 목적이 있는 반면, 지역 농업 클러스터는 '네트워크 형성'에 비중을 둔다.

지역특구는 지역 특성에 맞는 개발사업을 하도록 도와줌으로써 투자를 활성화하고 고용을 늘려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는데 기여하게 된다면 클러스터는 생산, 가공, 유통, 관광 등을 연계해 지역농업을 혁신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와 관련해 농촌경제연구원 김태연 박사는 "지역특구와 클러스터 사업은 정책내용이 다르다"면서 "예컨대 순창장류산업 지역특구의 경우 공정거래법 적용 배제 등 규제완화를 통해 시장점유율 향상, 매출증대를 도모하고 이에 덧붙여 지역 농업 클러스터까지 병행 추진한다면 그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역농업 클러스터를 통해 재배농가와 가공농가 간에 정보공유가 이뤄지면 품질향상을 포함해 생산기술적인 측면에서 진일보 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농림부 관계자도 "지역 클러스터 사업은 지방농정강화 차원에서 지자체와 지역농업인, 지방 소재 대학 등이 연계해 지역농정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고자 하는 첫 시범사업"이라며 "보성녹차의 경우 한편으론 농림부예산을 지원 받아 클러스터를 발전시키고 다른 한편으론 지역특구법 내에서 각종 규제완화의 혜택까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력한 후보지 '보성녹차'
많은 전문가들은 클러스터의 전형적인 모델로 주저 없이 보성군의 녹차 클러스터를 추천한다.

보성녹차의 경우 생산에서 가공, 유통까지 체계적인 조직이 이미 구축되어 있다는 것.

지난해 9월 가공업체와 재배농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보성차생산자협의회'가 결성돼 가공업체와 차재배농가간에 정보공유가 이뤄지고 있어 지역 클러스터가 요구하는 네트워크 형성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또한 보성군은 해양성·대륙성 기후의 절묘한 조화, 적절한 강수량 등 차 재배를 위한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는 점도 지역적 특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이밖에 주말에 보성다원에서 보성녹차와 보성소리에 대한 체험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며 연간 550만명의 관광객이 보성을 찾고 있는 점도 재배, 가공, 관광산업까지 아우르는 클러스터로서 손색이 없다.

보성군 녹차계 관계자는 "재배면적이 646ha 정도, 전국 생산량의 46% 점유, 녹차재배로 인한 직접적인 농가소득은 1184억원이다"며 "세계적인 모델로 보성녹차를 키워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 코냑이나 영국의 스카치 위스키처럼 특정지역 특산물의 지역표시권을 배타적으로 보호하는 제도인 지리적 표시제 1호 상품으로 지난 2002년 보성녹차가 등록됐다"며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된 차에 대해서는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해 지역마크를 붙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대정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최근 농촌진흥청은 명품 브랜드 모음집 '우리 농축산물 참 좋아요!'를 발간했다.

이 책에는 특허청 등록 브랜드, 각 지자체가 자부심으로 내세우는 브랜드, 농촌진흥기관에서 개발 및 육성에 참여한 브랜드를 포함해 총 134종의 브랜드가 소개돼 있다.

농축산물에 한정해서만 명품브랜드가 이 정도이다. 그야말로 '브랜드 천국'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셈.

이는 다른 한편, 각 지자체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는가를 역으로 보여준다.

이와 관련, 농림부 축산물위생과 관계자는 "03년 현재 한우 177개, 돼지 242개, 닭 52개, 계란 181개 브랜드 등 총 700여개의 브랜드가 난립하고 있다"며 "핵심 브랜드 육성을 위해 난립되는 브랜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1차적으로 브랜드를 통해 이미지를 띄우고 이를 발전시켜 지역 농업 클러스터로 연결되는 경로가 일반적인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살아남는 브랜드보다 무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브랜드가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재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역농업 클러스터, 지역특구 등이 지역주민과 유리된 채 수익창출모델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강원도의 한 농민은 "지역 농업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농가소득이 향상되고 지역 인지도가 올라가 관광수입도 만만치 않을 테지만 우리가 치러야할 대가도 분명 있을 것"이라며 "클러스터 내부에서도 가공업체들끼리 경쟁이 심해질 것이고 이는 오히려 농민들에겐 화가 될 수 있으며 관광산업 활성화는 난개발을 포함한 생태파괴 등을 가져올 것이다"고 우려했다.

시행착오 비켜가기
참여정부는 지방분권, 지역균형을 중시해 지자체에서 중앙정부로 정책이 올라가는 (bottom-up) 상향적 정책결정 방식의 큰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아직 정착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실제 기자가 취재하는 기간에 농림부 심사요건에 대비, 각 지자체는 팀별로 혹은 어떤 지자체의 경우는 단 한명이 이를 전담하면서 준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의 박용규 연구원은 "지자체의 여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열악하다"며 "지역 농업 클러스터의 경우 중앙정부에서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는 것이 오히려 지자체에게는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고 충고했다.

그는 이어 "향후 100여개가 넘는 지역농업 클러스터를 조성할 경우 품목이 중복되지 않게 조정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며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포함해 수출에 필요한 해외홍보마케팅, 전문가들의 컨설팅도 중앙정부가 신경을 써야 될 사안이다"고 조언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다른 관계자는 "한 지역당 평균 20억이 지원되는 사업인 만큼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장미빛 청사진을 내걸고 지원할 것"이라며 "엄격한 심사를 통해 해당 지역을 선정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정병기 기자/hope@f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