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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식품행정 개혁의지 어디로?

‘식품관리처’ 신설 건의 묵살
업계 “말로만 혁신” 답답함 토로


청와대가 최근 ‘식품관리처’ 신설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정부의 ‘식품안전행정체계개편’ 건의를 묵살한 것으로 확인돼 식품행정에 대한 개혁의지가 실종된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은 이해찬 국무총리가 지난 9월 15일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내년도 상반기까지 식품안전조직을 근본적으로 정비하라”는 지시에 따라 ▲중앙부처 기능개편 ▲중앙과 지방의 집행권한 조정 ▲의약품 행정체계 개편 등 세 가지의 행정체계 개편방향을 마련, 청와대에 보고했으나 묵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는 중앙부처 기능개편과 관련해 총리 소속의 ‘식품관리처’를 차관급 행정기관으로 설치해 ▲식품안전 관련 법령 제·개정 ▲식품안전기준 설정 및 연구·분석 ▲식품안전통합정보시스템 운영 등 식품안전정책을 전담하도록 하는 방안과 총리 소속의 ‘식품안전위원회’를 장관급 행정위원회로 설치 운영하는 방안을 1안으로 제시했다.

‘식품관리처’ 신설의 경우 생산과 수입단계는 농림부 등 생산부처에서, 제조와 유통, 소비단계는 식품안전 전담기관인 식품관리처에서 담당하도록 했으며 차관급 처장이 농림부 등 관계부처 장관을 상대로 식품안전 관련 정책을 조정하기 어려우므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식품안전정책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으로 돼 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현행체계 유지 하에 정책조정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식품안전정책조정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는 것을 2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현재의 중앙식품행정체계의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식품안전 전담부처를 신설하는 안이 바람직하며 전담부처 신설안 중에서는 총리가 위원장인 식품안전정책위원회를 통해 정책 조정이 가능하고, 기관 신설에 대한 관계부처의 반대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식품관리처 신설이 식품안전위원회 신설보다 바람직하다는 검토의견을 붙였다.

보고서는 또 중앙과 지방의 집행권한 조정과 관련해서는 중앙은 위험이 높은 품목과 업소를 담당하고 지자체에서 기타 품목과 업소를 담당하토록 하고 식품안전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후에는 지자체로 이관하는 방안(중앙·지방 병행체계)을 1안으로, 지자체에서 모든 품목과 업소를 담당하고 중앙은 평가업무를 통해서 지자체를 지도·감독하는 방안(지방 일원화 체계)을 2안으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검토의견을 통해 식품안전 문제의 적극적인 해결을 위해 1안(중앙·지방 병행체계)을 채택하되, 식품안전에 대한 의식수준이 개선되고 식품안전 문화가 정착되면 2안(지방 일원화 체계)으로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건의했다.

보고서는 이밖에 의약품 행정체계 개편에 대해서는 현행 식약청의 의약품 조직을 복지부 소속의 ‘의약품관리본부’로 운영하는 방안과 식약청에서 식품조직을 분리한 후 현행대로 복지부의 외청 ‘의약품관리청’으로 운영하는 방안 중에서 1안(의약품관리본부)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정부가 마련한 이같은 식품행정체계 개편 방향에 대해 “행정조직을 너무 많이 개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주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선을 다해 만든 방안인데, 한마디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한 입장을 보였다.

또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청와대가 현행 식품행정체계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 정부가 마련한 혁신적인 개편방안을 묵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그동안 강조해온 식품행정에 대한 개혁의지가 실종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병조 편집국장/bjkim@f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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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식품행정체계 개편

“도대체 어떻게 되는거야”
대안만 무성 실행은 오리무중
사고발생하면 수면위 떠올랐다가 시간지나면 흐지부지


식품안전을 위한 행정체계 개편이 수년간 표류하고 있다. 식품행정을 이대로 둬서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지만 사실 그동안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사람이 없는 꼴로 논란만 거듭할 뿐 구체적인 진전은 없었다. 부처이기주의 탓에 어느 특정부처에서 일원화를 추진하면 다른 관련부처에서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식’으로 서로 흠집 내기에만 급급해왔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6월 ‘불량만두’ 사건이 발생했고 여론에 떠밀린 정부는 이해관계가 첨예한 행정체계개편은 엄두도 못 내고 일단 단기적인 대책으로 부랴부랴 ‘식품안전기본법’ 제정을 통해 식품안전체계를 구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국무조정실이 올해 정기국회에 상정해 내년부터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공청회와 부처협의까지 거쳐 최종 법안을 복지부로 이관하려는 순간에 이해찬 총리가 제동을 걸었다.

‘식품안전기본법’의 내용이 지나치게 소비자 위주로 편중돼 있어 업체의 반발이 심한 것도 법안 상정 보류의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총리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해찬 총리는 “법을 만드는 것보다 행정체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전면적인 대책을 내놓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힘을 얻은 국무조정실 식품안전T/F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는 의지로 두 달 동안의 작업 끝에 ‘식품안전행정체계 개편방향’을 만들어 냈다.

우선 가장 중요한 행정체계의 일원화와 관련해서는 특정부처로의 일원화는 현실상 쉽지 않다고 보고 총리 소속의 ‘식품관리처’를 차관급 행정기관으로 설치 운영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식품관리처가 ▲식품안전 관련 법령 제정과 개정 ▲식품안전기준 설정 및 연구 분석 ▲식품안전통합정보시스템 운영 등 식품안전 정책기능을 총괄적으로 수행토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생산과 수입단계는 농림부 등 생산부처에서 맡고 제조, 유통, 소비단계는 식품관리처가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기존 조직의 활용도 어느 정도 유지시키도록 하고 있다.

또 차관급 처장이 농림부 등 관계부처 장관을 상대로 식품안전 관련 정책을 조정하기 어려우므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식품안전정책위원회’를 두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지금까지 나온 방안 중에서는 가장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대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같은 방안은 본지가 지난 11월 1일부터 4일까지 식품업계에 종사하는 업체 관계자 2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긍정적인 답변이 나온 바 있다. 식품업체 관계자들은 식품전담부처 ‘(가칭)식품관리처’의 신설을 통한 행정체계 일원화 방안에 대한 질문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전체 응답자 200명 가운데 68%인 135명으로 ‘반대한다’는 의견(20%, 40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아 식품관리처 신설을 원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국무조정실의 행정개편 방향 중 또 하나 주목할 사항은 식품과 의약품 행정을 분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현행 식약청의 의약품 조직을 복지부 소속의 ‘의약품관리본부’로 운영토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또한 본지 설문조사에서 식품과 의약품 행정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78%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 식품업계가 원하는 사항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식품업계가 바라고 있고, 정부가 공감해 정부 스스로가 만든 개편방향이 청와대에 의해 묵살됨으로써 식품안전행정체계 개편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해찬 총리가 국무조정실에 내년 상반기까지 식품안전조직을 근본적으로 정비하라고 내린 지시가 무색해져 버렸다.

행정체계 개편과 병행해서 추진하려고 ‘식품안전기본법’의 국회 상정을 보류도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총리의 지시를 받아 의욕적으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했던 국무조정실 직원들은 허탈감에 빠져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모르겠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가 총리실이 제안한 개편방향에 대해 ‘NO’를 한 이유가 들리는 바로는 총리실 안대로 하면 행정조직을 너무 많이 흔들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지 의구심이 든다.

항간에는 대통령 선거에서 노골적으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약사회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식품안전행정체계 개편과 관련해 제시한 3가지 대안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냐는 등의 추측이 나오고 있다. 후자의 추측이라면 몰라도 만약의 경우 전자의 이유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혁식지방분권위원회가 제시한 대안은 ▲1안(식품안전위원회): 현행체계를 유지하되, 부처간 기능조정을 강화하기 위해 식품안전위원회를 행정위원회로 신설 ▲2안(복지부 식약청):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식품안전기능 일원화 ▲3안(농수산부 식품안전청): 농림부를 식품농수산부로 개편하고 그 소속기관으로 ‘식품안전청’을 신설하여 식품안전 기능 일원화 등 3가지다. 청와대가 총리실의 의견을 무시한 이유가 지방분권위의 대안을 선택하겠다는 뜻이었다면 이에 대한 입장을 하루 속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식품업계가 이제 더 이상 혼란을 겪지 않을 것이다.

또 그래야만 업체는 물론 국민들이 식품안전에 대한 현정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노무현 정부의 식품행정에 대한 개혁의지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병조 편집국장/bjkim@f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