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는 11돌을 맞아 장수식품을 선정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번 회에는 50년을 한결같이 서민의 피로회복제로 그 자리를 꾸준히 지켜오고 있는 ‘박카스’의 신화를 소개한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제품의 라이프 싸이클이 급속히 단축되고 있다. 발매 후 1년은 고사하고 불과 몇 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제품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약계엔 ‘박카스 신화(神話)’라는 말이 있다. 61년 정제 형태로 처음 출시된 ‘박카스’는 1963년 현재와 같은 병에 담긴 드링크 형태로 바뀐 뒤 2012년까지 판매량이 약 175억병을 넘어섰다. 지금까지 팔린 병의 길이를 더하면 지구 52바퀴를 돌고도 남는 천문학적인 양이다. 천안공장의 ‘박카스D’ 생산라인에서는 분당 2400개의 제품이 생산되는데 이 속도는 기관총 발사 속도의 4배에 달한다.
‘박카스’란 제품명은 동아제약 강신호(姜信浩) 회장이 ‘간장 보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이름을 생각하던 중 독일 유학시절 본 함부르크 시청 앞의 술과 추수의 신(神)인 박카스를 떠올리게 되면서 유래 되었다. 당시 회사명이나 성분명을 이용해 제품명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던 시대에 의약품의 이름에 신화 속 신의 이름을 붙이는 파격적인 상품명으로 ‘박카스’는 탄생한 것이다.
‘박카스’는 처음에 간장보호에 중점을 둔 종합강간영양제(綜合强肝營養劑)로 셀링포인트도 술에 맞추었다. 음주전후에 ‘박카스’를 복용하면 간이 손상되지 않는다는 캠페인과 함께 전사원이 나선 대규모 샘플링행사는 곧 결실을 맺어 발매 후 몇 달 만에 ‘박카스-정’의 월간 매출이 100정 포장단위로 1만개까지 늘어날 정도였다. 그러나 이듬해 봄, 제제 기술이 미숙한 탓에 정제의 외피를 형성하는 당의가 녹는 문제가 발생해 대량 반품사태가 빚어졌다. 긴급한 제품개선의 노력으로 당의 문제는 곧 해결되었지만 이미지가 한 번 손상된 제품은 시장에서 호응도가 현격히 줄어들어 새로운 대책을 수립할 수 밖에 없었다.
동아제약은 ‘박카스 정’의 제형을 당시 소비자 호응도가 높은 20cc 앰플제로 변경해 ‘박카스 내복액’을 전격적으로 재발매하였다. 청량감이 우수했던 ‘박카스 내복액’은 출발이 순조로웠지만, 앰플 용기로 인한 안전사고와 운반과정 중 파손사고가 자주 발생해 동아제약은 제품 개선을 한차례 더 실시하게 된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발매된 제품이 현재와 같은 병에 담긴 드링크 형태의 ‘박카스D’였다. 자양강장드링크 제품의 후발주자였던 ‘박카스D’는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사운(社運)을 건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대량광고(Mass Communication), 대량판매(Mass Sale) 전략, 이른바 ‘3M 전략’을 세우고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활동을 전개했다.
동아제약은 당시 전형적인 의약품 광고 형식이던 의사, 약사 대상의 전문지 광고에서 탈피하여 TV, 라디오, 신문, 잡지, 옥외광고 등 모든 매체를 활용해 대량광고 활동을 전개했다. 톱니바퀴 모양의 심벌 도입, 캐치프레이즈 활용, 차별화된 크리에이티브, 적절한 매체 믹스, 캠페인 광고, 증언식 광고, 스폰서형 광고 등 다양한 ‘박카스’의 광고 전술은 발매 1년 만에 드링크 시장 1위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현재까지 국내 의약품 매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박카스’는 한국 광고사의 효시가 되고 있다.
또한, 동아제약은 도매상을 거쳐 소매약국에 출하되는 당시의 의약품 유통 방식을 탈피하여 과감하게 소매 직거래를 뼈대로 하는 특약점 제도를 구축해 ‘박카스’를 유통시켰으며, 이러한 유통 전략은 현재 ‘박카스 루트세일’이라는 동아제약만의 독특한 유통시스템의 기반이 되었다. ‘박카스 루트카’는 전국 2만 여 개의 약국에 직접 방문해 ‘박카스’를 공급하고 있다.
‘박카스’는 이후 대중광고 금지, 사카린 파동, 식품드링크의 시장잠식 등 몇 차례의 시련을 겪었지만 1위 자리를 꿋꿋이 지켜냈다. 특히 1990년대 초, ‘박카스D’에서 ‘박카스F’로 리뉴얼 되었고 2005년 3월 기존의 ‘박카스F’에서 타우린 성분을 두 배(2000mg)로 늘리며 14년 만에 ‘박카스D’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2005년 8월 8일 ‘박카스’는 여성과 젊은 소비자들을 위해 카페인 성분을 제외한 ‘박카스 디카페’를 발매했다.
2011년 9월 ‘박카스’는 의약외품 전환에 따라 달성공장에서 ‘박카스F’의 생산을 재개하게 된다. 새로 출시된 ‘박카스F’는 1990년대 ‘박카스F’와는 달리 카르니틴 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며 부재료를 추가하여 청량감을 한층 높였다. 뿐만 아니라 용량도 100ml에서 120ml로 증량하여 선보였다. 기존 거래처인 약국과 편의점이라는 신규 거래처의 유통이원화 전략을 구사하며 새로운 시장 활로 개척을 통해 성공적인 안착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수상품은 오랫동안 그 제품을 믿고 구매하는 충성 고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동아제약은 그러한 소비자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박카스’를 최초로 발매한 이후 현재까지 맛과 품질에 대한 원칙을 지키고 1병의 ‘박카스’를 만들기 위해 30여 가지의 공정과 완벽한 품질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타우린 2000mg을 비롯해 각종 생체 활력성분이 적절하게 배합된 황금처방 피로회복제 ‘박카스’는 50년 전 발매 당시의 낮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이제 ‘국민드링크’라는 애칭을 얻으며, 50년 동안 소비자 곁에서 한결같이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박카스 신화를 세계인의 신화로
‘박카스 신화’라는 말까지 만들어 내며 대한민국 대표 피로회복제로 자리잡은 박카스가 이제 세계인들의 피로회복제로 거듭나기 위해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박카스의 2012년 수출액은 208억원으로 현재 28개국(미국, 중국, 필리핀, 몽고, 캐나다, 캄보디아, 일본, 호주 등)에 수출되고 있으며 점차 수출 대상국을 확대할 계획이다.
2010년부터는 캄보디아 시장을 박카스의 동남아 전초기지로 개척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공략을 위해 각종 행사 지원 및 샘플링을 통해 제품 인지도를 높이는 현지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작년 캄보디아에서는 또 하나의 한류 열풍이 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 대표 피로회복제인 ‘박카스’로 작년 한해 동안 캄보디아에 수출한 박카스는 150 억원 정도 이다. 이는 단일 국가를 대상으로 박카스 해외 수출에 있어 최대 매출이다.
캄보디아에서의 성공적인 박카스 판매에는 숨은 공로자가 있다. 바로 현지 유통을 맡은 캠골드사(社) 속 삼낭 사장이다. 속 삼낭 사장은 동아제약과 캄보디아에서 이름도 생소한 '박카스'를 알리기 위해 밤낮 없이 뛰어다녔고. 고민 끝에 캄보디아 최초로 음료수 옥외광고를 시도했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캄보디아는 우리의 1960년대와 사회 분위기가 비슷한데 산업화 초기 샐러리맨의 피로회복을 컨셉으로 잡은 것이 매출 상승에 주효했다.
동아제약과 삼낭 사장의 과감한 도전과 열정에 판매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2011년 6월 박카스는 시장 1위이던 '레드불'을 역전하는 데 성공했다. 강 회장은 삼낭 사장에게 공로상을 전달하며 "미치지 않고서는 이렇게 팔 수 없다. 그 열정에 감복했다. 우리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기반을 마련해줘 고맙다"고 격려했다.
동아제약은 캄보디아에서의 박카스 매출 성장으로 미얀먀, 필리핀 등으로 동남아 시장을 필두로 글로벌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미주시장 공략을 위해 탄산을 함유한 박카스캔 제품을 출시하여 동부 및 LA지역 한인마켓에 공급하고 있다. 박카스 캔 제품은 젊은층의 기호에 맞추어 동아제약의 오랜 자양강장제 노하우로 야심차게 준비한 글로벌 제품으로써 에너지 드링크의 절대강자인 레드불제품에 비해 확연히 차별화된 성분함량(고려인삼액기스50mg, 로얄젤리20mg 등), 깔끔한 맛과 저렴한 가격($0.99)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이다. 현재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아시안계와 히스페닉 고객을 주 타겟으로 시장을 개척해 나갈 예정이다.
이밖에도 ‘바오지아스’란 중국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중국에서는 기존 판매처가 한인 및 교포시장 위주였으나, 현재 중국 마트 입점 등을 통해 중국 한족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에너지드링크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약 7조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연평균 10%이상의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박카스는 국내 판매량을 감안할 경우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동아제약은 거점국가 성공전략을 통하여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향후 거점국가를 확대하여 세계화를 이루겠다는 전략이다.
◇박카스 이력
1961년 ‘박카스’는 정제 형태로 처음 출시되었다. 강신호(姜信浩) 현 회장이 술과 추수의 신 ‘박카스’가 간장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착안해 의약품으로는 파격적인 상품명인 ‘박카스’가 탄생하였다. ‘박카스 정’은 거래처, 사원가족들까지 합세한 대대적인 마케팅을 전개해 월 매출 1만개(100정 포장단위)를 돌파하였지만 당시 제제기술의 미숙함으로 외피를 형성하는 당의가 녹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1962년 20ml의 앰플제인 ‘박카스 내복액’을 발매하였다. ‘박카스 내복액’은 기존의 황금처방에 속효성과 청량감이 가미되어 큰 사랑을 받았지만 소비자들의 앰플제의 취급상 안전사고가 야기되었다.
1963년 8월 8일 동아제약 창업자 故 강중희 회장께서 당시 보건사회부로부터 ‘박카스D’의 ‘제조품목 허가’를 받아 100ml 청량강장영양제 ‘박카스D’가 발매되었다.
1963년 12월부터 ‘박카스D’의 본격적인 대량광고와 대량판매작전이 전개되었다. 대량생산, 대량광고, 대량판매 전략 이른바 ‘3M 전략’을 활용한 공격적인 마케팅은 오늘날 ‘박카스 성공신화’의 기반이 되었다.
1964년 ‘박카스D’는 드링크제 발매 1년 만에 매출 1위를 차지했다.
1967년 ‘박카스D’의 매출에 힘입어 동아제약은 제약업계 매출 1위에 올랐다.
1971년 연간 1억병의 ‘박카스D’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인 안양 주공장이 건립되었다. ‘박카스D’의 원활한 생산을 위해 안양공장에는 3개의 박카스 생산라인이 증설 가동되었다.
1972년 ‘박카스D’의 주성분인 타우린을 생산하는 반월공장이 건립되었다.
1972년 한국 마케팅사에 기록될 만할 ‘박카스 루트카 세일’이 실시되었다.
1976년 자양강장 드링크의 대중광고 금지조치로 대중광고 이외에 스포츠 마케팅이 전개되었다.
1981년 아랍에미레이트와 미국에 ‘박카스’가 처음 수출되었다.
1984년 중부이남지역에 ‘박카스’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동아제약 달성공장이 신축되었다.
1985년 안양공장이 KGMP 시설을 갖추고 동아제약이 국내 최초의 KGMP업체로 지정되었다.
1986년 ‘박카스D’에 20%의 특별소비세가 부가되었다.
1989년 인도네시아에 타우린, 병, 알루미늄캡 등이 수출되어 ‘박카스’가 처음으로 해외에서 생산되었다.
1991년 ‘박카스D’의 성분을 보강해 ‘박카스F’가 발매되었다. ‘박카스F’는 타우린 1000mg을 비롯해 5종의 비타민과 생체 활력성분인 카르니틴이 적절하게 배합된 황금처방의 피로회복제이다.
1993년 광고 금지조치 17년 만에 ‘박카스 TV광고’가 재개되었다. 묵묵히 음지에서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박카스’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어 3억병대로 추락했던 매출을 5억병대로 끌어 올렸다.
1996년 중국 강소성에 ‘박카스’ 생산공장이 건립되어 ‘박카스’가 중국내 생산 판매되었다.
1997년 ‘박카스’ 누계 매출이 100억병을 돌파하였다.
2000년 동아제약 천안공장이 준공되어 ‘박카스’ 생산과정을 모노 블럭화, 분당 2400병을 생산할 수 있는 자동생산 시설을 갖추었다.
2000년 연간 ‘박카스’ 매출이 7억병을 돌파하였다.
2003년 8월 8일 ‘박카스’ 발매 40주년을 맞이하였다.
2005년 3월 18일 기존의 ‘박카스F’에서 타우린을 두배(2000mg)로 늘리며 14년 만에 ‘박카스D’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2005년 8월 8일 여성과 젊은 소비자들을 위해 카페인 성분을 제외한 ‘박카스 디카페’를 발매하였다.
2005년 ‘박카스’ 누계 매출이 150억병을 돌파하였다.
2010년 ‘박카스’ 누계 매출이 170억병을 돌파하였다.
2011년 ‘박카스’ 의약외품 전환에 따라 ‘박카스F’ 생산을 재개하였다(유통이원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