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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AI방역 대책

우려하던 사태가 그예 터지고 말았다. 조류 인플루엔자(AI)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태세다. 지난달 말 전북 에서 처음 발견된 고병원성 AI가 전남에 이어 수도권까지 북상했고 이젠 충청 등 다른 곳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

AI가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조차 어렵지만 일각에서는 방역망이 완전히 뚫려 이미 통제 불능 상황에 이른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하고 있다.

15일 현재 신고 또는 발견된 AI 의심 사례는 모두 36건으로 전북 김제, 정읍, 전남 영암, 나주 등이 고병원성으로 판정났다.

'H5형' AI 바이러스로 확인된 경기도 평택까지 고병원성으로 확진될 고병원성 AI는 5개 시.군 21건, '양성 판정'이 아닌 '발생'은 12건으로 각각 늘어난다.

이는 AI가 처음 우리나라를 덮친 4년여 전보다도 더 나쁜 상황이다. 지난 2003년 12월 충북 음성 닭사육농장에서 AI가 처음 발생한 후 4개월 동안 6개 시.도 10개 시.군의 19개 농장에 번져 닭ㆍ오리 530만 마리 살(殺)처분과 함께 1500억 원 상당의 손실을 냈다.

언뜻 보면 그 때의 피해 규모가 더 커 보이나 당시에는 반경 3㎞ 이내는 무조건 살처분한 반면 현행 AI 긴급행동지침(SOP)은 우선 반경 500m 이내만 살처분한 뒤 상황을 봐서 3㎞로 확대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번에는 보름 남짓 만에 발생건수가 당시의 4개월치를 훌쩍 넘어섰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AI는 사람의 힘으로만 막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 셈이다.

정부는 11월1일~2월 말까지를 AI 방역특별방역기간으로 정해 축사 300㎡ 이상의 가금류 사육농가 5000 곳을 집중 점검하고 철새 분변의 감염 여부를 조사하는 등 겨우내 AI 예방활동을 폈다.

그러나 3~4월에도 돌아가지 않는 철새가 있으므로 방역기간 설정이 애초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초동단계의 방역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AI 발생 농가에서 미리 오리를 빼돌린 후 신고하는가 하면 전북의 유통업자가 버젓이 통제구역을 벗어나 충남과 전남까지 돌아다녀도 전혀 통제되지 않는 방역체계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김제, 정읍 등은 국내 최대 가금류 집산지로 통제가 쉽지 않다는 당국의 군색한 변명에는 기가 찰 뿐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앞으로 고병원성이 확진되면 무조건 3㎞안의 닭.오리를 모두 살처분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이토록 허술한 방역망부터 철저히 보강하지 않으면 계속 뒷북만 칠 게 뻔하다. 이제라도 AI 확산을 차단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농가와 유통업자 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AI가 2003년 이후 잠잠하다 2006년 11월에 다시 발견됐으나 이번에는 1년여 만에 재발된 만큼 연례행사가 되지 않도록 AI 방역체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농가든, 유통업자든, 당국이든 AI 확산 사태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 위법 사실이 확인되면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려야 할 것이다.

아울러 닭.오리 살처분이 수질과 토양 오염으로 이어지는 이중의 재앙은 기필고 막아야 하며 인체에 전염되는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