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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희 변호사의 생활 법률

일반시민의 입장에서 천만원 정도이면 큰돈이지만 막상 천만원을 받으려고 소송을 하기 위하여 변호사 사무실에 가면 쉽게 소송을 위임시킬 수가 없다. 승소금액 천만원에서 변호사 성공보수와 선임비용을 제외하고 나면 실상 승소판결금은 받아낸다고 하여도 현실로 손에 들어오는 액수는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채무자에게 돈을 달라고 구두 상으로나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취하는 조치이지만 민법에서는 구두상 또는 내용 증명우편으로 채무 이행을 촉구(법률적인 용어로는 ‘최고’라고 한다)하더라도 최고를 한 날로부터 6월내에 재판을 제기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중단되지 아니하기 때문에 하루 이틀 일년 이년이 지나면서 시효기간도 함께 지나가기가 보통이다.

그러는 동안 채무자의 행방도 알 수 없게 되어 포기하게 되다가 문득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둔 차용증을 발견하게 되고 옛일을 다시 생각하여 보며 어떻게 돈을 받아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문의를 하지만 돈을 빌려준 뒤 10년을 훌쩍 넘겨 버린 경우에는 이제는 소멸시효라는 제도 때문에 소송을 하더라도 돈을 받아내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이러한 사실상의 권리 포기는 결국 감정상의 앙금으로 남게 되고 평생 남의 탓을 하여 그 사람과 영원히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국회는 이러한 소액사건의 경우 신속하고 쉽게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즉, 2,000만원이 초과하지 아니하는 금전 기타대체물, 유가증권의 일정한 수량의 지급을 청구하는 소액사건의 경우에는 법원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소액사건심판법이라는 특별법이 그것인데 소액사건심판법은 민사소송법상 민사소송을 함에 있어 여러 복잡하고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원칙을 간이화한 특징이 있다. 특히 이러한 소액사건에 관한 재판을 보다 간이화하게 하기 위하여 2001년 초 이행권고결정제도가 신설되었다.

이행권고결정은 소액의 청구를 내용으로 하는 소가 제기된 때에 법원이 소장의 내용과 증거완비 여부를 살펴보고 소장자체로 보아 타당한 소 제기라고 여겨지게 되면 소장부본이나 제소조서등본을 첨부하여, 피고에게 이행권고결정 등본을 송달하여 피고에게 청구취지대로 이행할 것을 권고하는 결정을 말한다.

이러한 이행권고결정은 법원에서 알아서(직권) 정하는데 통상 계약서가 완비되고 영수증 등 증거방법이 확실한 경우에는 이행권고결정을 하게 된다. 주로 대여금 소송이나 퇴직금 또는 임금지급소송의 경우 이행권고 결정이 내려지게 된다.

법원이 이행권고결정을 하여 그 내용이 피고에게 송달되어 피고가 결정서를 송달 받은 날부터 2주일 안에 서면으로 이의신청을 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이행권고결정이 확정된다. 즉, 소장을 법원에 제출한 후 단 한차례도 법원에 가서 판사님 얼굴을 보지 않고도 재판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소송을 좋아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법원에 가는 것만으로 큰 스트레스일 사람들에게는 매우 다행스런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이 경우 이행권고결정의 확정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이행권고결정 정본에 집행문을 부여받아 채무자의 재산에 압류하고 경매 등 강제집행을 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간이하고 확실한 권리 구제방법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서랍이나 장롱 속에 차용증이나 대여금약정서를 그냥 썩여두지 말고, 다시 찾아보아서 돈 빌려준 날이 10년이 아직 지나지 않았거나, 임금이나 퇴직금 받지 못한 것이 3년이 지나지 아니한 경우 소액사건심판제도나 이행권고결정 제도를 이용하여 보는 것이 복잡하고 어려운 소송제도를 쉽게 이용하는 지혜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