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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년된 간장 1ℓ 500만원

"조선시대 명문가에서 담근 간장 값은 얼마나 될까?"

보성선씨 종가에서 350년간 맥을 이어오는 덧간장(햇 간장 만들 때 넣는 묵은 간장) 1병이 최근 500만원에 팔린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하개리 보성선씨 영흥공파 21대 종부인 김정옥(54)씨는 "최근 모 대기업 회장댁에서 350년 된 우리집 덧간장 1ℓ를 500만원 주고 사갔다"고 말했다.

이 간장은 지난 4월 현대백화점 본점서 열린 '대한민국 명품 로하스 식품전'을 통해 처음 일반에 소개된 뒤 서울 인사동 SK HUB아트센터의 한국골동식품예술전(9월20-10월10일)에 초청돼 전시됐다.

세간의 관심을 끄는 500만원 짜리 거래는 백화점 전시가 끝난 뒤 소문을 전해들은 구매자가 익명으로 비서진을 보내 즉석에서 현금을 내고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스물 다섯되던 해 선씨 종가로 시집온 김씨가 시할머니한테 넘겨받아 관리해온 이 간장은 매년 20ℓ가량 새로 만들어져 차례와 제사용으로 쓰인다.

엄선된 무공해 콩으로 쑨 메주에다 1년 이상 묵힌 천일염 간수를 섞어 햇간장이 담가지면 아미노산, 핵산 등 대를 물려온 발효균이 든 덧간장을 섞어 보관하는 방식으로 350년간 끊이지 않고 맥을 이어왔다.

영월 신씨 대종가서 600여년간 꺼트리지 않고 지켜왔다는 화로 속 불씨와 같은 맥락이다.

김씨는 '선병국(시아버지) 가옥'으로 불리는 99칸 한옥(중요민속자료 134호)에 살며 귀하디 귀한 이 덧간장을 안채 앞 장독대에 특별보관한다.

가문 전통에 따라 볕이 잘 드는 마당 복판에 자리 잡은 장독대는 외부인이 쉽게 출입할 수 없게 담을 치고 문까지 걸어 잠근 채 엄격히 통제해왔다.

김씨는 시할머니가 가르친 방식대로 볕 좋은 늦가을 메주를 쑤어 말렸다가 이듬해 정월 장을 담그고 덧간장을 따로 만들어 이 곳에 보관한다.

간장이 담긴 독에는 솔가지와 고추, 숯 등을 매단 새끼줄을 쳐 액막이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는다.

이 때문인지 온 마을이 물바다가 된 수해를 두 차례나 겪었지만 간장 독은 깨지거나 엎어지지 않고 반듯한 형태로 물에 떠다니다 발견돼 350년 종가의 맛과 전통을 이을 수 있었다.

김씨는 "덧간장이 세상에 알려진 뒤 맛을 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는 음식 전문가나 미식가가 많지만 워낙 양이 적어 아무한테나 퍼주거나 팔 수 없다"며 "맥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장 담그는 날 시집간 딸(29)을 불러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간장을 발굴한 한국농어업예술위원회 김진웅 박사는 "선씨 종가 덧간장은 국내에서 제일 오래된 것으로 조선 명문가의 고집스런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 식품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며 '워낙 귀해 따로 값을 매기는 자체가 의미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한국의 전통장류가 완벽한 발효식품으로 세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며 "한국의 대표 장류를 보존·육성하려면 김씨 같은 기능보유자를 명인이나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