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제주도가 6억원을 들여 가정간편식(HMR) 제조법 개발을 완료했다. 3년간 9종의 제조법을 개발했다. 홍보비를 포함해 산술적으로 상품 하나당 개발비로 6500만원 전후의 혈세가 투입됐지만, 우선 판매에 나섰던 상품 3개 중 2개는 어디서 판매하고 있는지조차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제주도 내 만들 수 있는 식품제조업체가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상품부터 개발, 결국 도내 세금으로 도외 제조업체 좋은 일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식품제조 기반부터 닦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렌드에 편승해 상품부터 개발, 전시성 행정에 혈세가 낭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22년 5월, 제주도(도지사 오영훈)는 제주산 원료를 기반으로 한 HMR을 개발하기 위해 제주테크노파크(원장 문용석)와 업무협약을 체결, ‘제미(濟味)담은 청정제주 먹거리 가정간편식’ 사업에 착수했다.
당초 양 기관은 “식품산업 트렌드 변화에 따라 HMR 제품 상용화 및 지역 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업으로, 제주 식품 품목 다변화와 제조업의 활성화를 목적한다”고 밝혔다.
협약을 통해 6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한 제주테크노파크는 제주 향토음식 분야 명인, 식품전문가 등 7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세우고 현재까지 9종의 시제품을 자체개발했다. 이와 함께 2차례의 아이디어 공모전을 통해 10종의 레시피를 획득했다.
두 차례 아이디어 공모전 상금으로 지출된 1350만원을 제외하면 9종을 개발하는데 5억8000여만원이 투입된 것이다. 산술적으로 시제품 하나 개발하고 홍보하는데 6500만원이 들어간 셈이다.
완성된 제조법은 사업화할 기업에게 이전됐다. 기업에게는 사업화 자금 1500만원이 함께 지원됐다.
2023년 제주테크노파크가 상품화할 사업자를 모집한 결과, 3개 기업이 선정됐다. 매칭된 상품은 ▲제주단호박카레 ▲보말강된장찌개 ▲제주보말죽이다.
이 중 현재 온라인상에서 상품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제주보말죽 뿐이다. 보말삼계죽으로 개량돼 온·오프라인에서 판매 중이다. 제주단호박카레와 제주보말죽은 자사몰에서조차 해당 상품을 찾을 수 없다.
원자재가 상승과 판매 부진에 따른 사업성 재검토 등으로 현재 생산 및 판매를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혈세를 들여 만든 레시피 3개 중 2개가 허공에 날아가 버릴 판인 것이다. 단순 계산으로 1억원이 넘는 돈이다. 하지만 담당기관은 ‘선택은 기업의 몫’이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제주테크노파크 관계자는 “(우리는) 시제품 제작지원까지가 책임이고, 그걸로 판매를 하면서 시장 반응을 보면서 사업성에 대한 판단은 회사에서 하는거다”면서 “정확하게 현재 (판매가) 어떻게 추진되는지는 정확히는 모른다”고 설명했다.
특히, 당초 내걸었던 제주도 제조업 활성화라는 대의명분은 온데간데 없다. 보말삼계죽의 경우, 충북 음성군 소제의 식품업체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조하고 있다.
제주도와 제주테크노파크는 기존의 제주 제조업 활성화 대신 농산물 생산자 부가가치 증대를 위한 사업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에 제주테크노파크는 “도내 HMR 생산 제조업자가 없어 부득이하게 도외 제조업체에 생산을 위탁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도내 HMR 생산할 수 있는 사업자 조사도 없이 트렌드 편승해 성급하게 사업을 추진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개발한 상품이 흥행한다 해도 생산을 위한 막대한 자금이 도외로 흘러나갈 수 밖에 없다.
제주도 식품제조업 관계자는 “관(官)에서 말한대로 새로운 시장 상황에 대응하고 농산물 부가가치를 증대할 목적이라면 장기적으로 안정적 생산을 위한 제조업 기반을 만들고 그 위에서 다양한 식품사업이 추진돼야 한다”면서 “기본적인 생산자 기반 조사도 없이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6억이나 되는 아까운 혈세를 낭비한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