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푸드투데이 22주년 창간기획]한국을 문화강국으로 만든 설탕공장의 그 소녀...CJ 이미경 부회장

[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동경은 이미 유아기에 시작된 것 같습니다.  아버지(故 이맹희 CJ 명예회장)가 두 살 무렵 비틀스 테이프를 사주셨는데, 그 테이프가 닳을 때까지 들었던 기억은 제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아시아인, 그리고 세계인 모두가 한국영화와 드라마,  한국 음악을 듣는 일상이 오는 것이 제 꿈입니다.”

 

2006년, 10월의 뉴욕.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초겨울 특유의 차가운 공기를 채운 뉴욕 맨해튼 34번가, 조그마한 동양여자가 상기됐지만 당당한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말했다. 아시아인이 세계여성상(Women’s World Awards) 을 수상한 건  그녀가 처음이었다.

 

일본과 미국에 비해서 획일적이고 상대적으로 빈곤했던 한국의 대중 문화,  자국민을 넘어 세계로... 마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Cloudy With A Chance Of Meatballs)고 같은 오기 힘들 막연한 날들에 대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K팝이 아닌 자신들 만의 장르를 탄생시킨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한국영화 미나리, 기생충 등 다양한 대중문화들이 내수용을 넘어 수출용이 되면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바람은 지금 현실이 됐다. 

삼성가 장자, 이맹희의 첫 딸...미키 리, '이미경'
1958년생인 이미경은 미국 미시건 주에서 유학 중이던 이맹희와 손복남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명 '미키 리'인 배경에 대해서 아버지 이맹희 회장은 “미국인들이 ‘미경이’라는 발음이 서툴러서 언제부터인가 ‘미키마우스’에서 딴 애칭인 ‘미키’로 부르더니 집안에서도 오랫동안 이름 대신 ‘미키’로 불렀다"면서 "중학교 무렵인가 대통령배 영어웅변대회에서 1등을 해서 식구들을 놀라게 하고 영어와 프랑스어 외에 중국어, 일본어까지 언어적인 소질을 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십대 시절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경기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가정대학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지역학으로 석사, 푸단대학에서 역사교육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생이자 맏아들이었던 이재현이 회장이 경영자 수업을 받았다면, 이 부회장은 자유롭게 세계를 다니며 문화가 갖는 파급력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만큼 아버지 이맹희는 처음 얻은 딸, 이미경이 가진 본질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을 것이다. 

 

한창 세상공부를 하고 다시 돌아온 그녀는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판도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CJ는 한솔(이병철의 장녀 이인희 고문), 신세계(이병철의 4녀 이명희 회장), 새한(이병철의 차남 고 이창희 회장)에 이어 가장 늦게 삼성에서 분리됐다. 1993년 계열 분리를 시작해 1996년 5월1일 ‘제일제당그룹’ 출범을 공식적으로 밝힌 후 1997년 법적으로 완전히 홀로 섰다.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CJ가 삼성에서 분리된 직후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문화사업"

힙합을 들으면 그 리듬이 세포로 느껴지던 20대 이미경. 심수봉과 이선희 양수경의 감성을 좋아했고 2000년대에 접어들자, 씨야와 sg워너비 등 발라드 가수들의  노래를 즐겨들었다.  그렇게 한국 노래를 몸살나게 좋아하던 어느날,  K컬처와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페스티벌인 '케이콘'을 구상한다. 

 

그녀가 이런 아이템을 생각하고 구체화하게 된 동기는 경험이 바탕이다. 재벌가임에도 불구하고 용돈이 넉넉하지 않은 이유때문에 불법 음반도 더러 들었다.  소녀기를 거쳐 대학생이 되면서 가장 관심 있던 문화분야를 비즈니스와 접목시켜야겠다는 구상을 시작한 건 유학 무렵이었다.

 

하버드 재학시절 그녀는  같은 수업을 듣는 외국 학생들을 보면 "자신의 생각을 과감 없이 전개하는 발표력과  승부욕이 강하고 경쟁심도 높은데다가 쉬는 시간에는 다른사람처럼 미친듯이 노는 집중력"에 감탄했다고 말한다. 

 

또, 일본은 소니 워크맨이 한창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때였고, 중국은 화교들의 기부덕에 입김이 높았기 때문에 이미경 부회장은 늘 이방인 같았다. 

 

혼자만 듣기 아까운 한국 콘텐츠를 알린 시기는  2012년 10월 미국 LA 오렌지 카운티였다.  비교적 부유한 한인들이 사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에서 열린 케이콘에 1만명의 관객을 모집하는 데 그쳤지만 10년 새 전 세계 176개국의 관객 717만명이 케이콘을 주목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2012년 케이콘에는 K팝 그룹들의 공연뿐 아니라 콘퍼런스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K라이프스타일 존에서는 한국 음식 시식과 CJ 올리브영 부스를 통한 K뷰티 체험 등 한류 콘텐츠를 널리 알리는 자리였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가 K-푸드의 선봉장이 되는 시발점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2010년대 초반 까지 한인들의 축제였다면, 지금은 블랙핑크,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트와이스와 아이브 등등 한국의 아이돌까지 월드 투어를 할 수 있는 팬층을 확보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2012년 당시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Variety)는 이미경 부회장의 주도로 케이콘이 K팝을 넘어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장으로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Thank you for Jay...나와 같은 보폭으로 걷던 내 동생, 이재현

이 부회장이 그리는 그룹의 미래는 항상 동생인 이재현 회장과 함께 그렸다.  케이콘 역시 그녀가 지난 2012년 이재현 CJ 회장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한류 축제로 불리는 행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구상했다. 

 

이 부회장이 미국 중심의 영화계와 활발한 교류를 하면서 느낀점들을 이 회장과 공유했다. 세계 영화계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와 이 부회장은 막역한 친구사이자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CJ의 문화경영 첫 발은 드림웍스 투자인데, 드림웍스는 스필버그가 애니메이션계 거장 제프리 카젠버그(Jeffrey Katzenberg)와 음반 프로듀서인 데이빗 게펜(David Geffen)과 함께 만든 세계적인 스튜디오다.

 

이부회장은 1995년 이 회장이 문화산업 육성 구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미국출장길에 오를때 동행했다. 당시 미국 할리우드는 일본 자본의 진출이 활발했다. 소니가 컬럼비아를, 마쓰시타가 유니버셜을 샀을 정도다. 드림웍스 역시 해외 파트너를 찾던 중이었다.
 

2020년 2월, CJ ENM이 투자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며 4관왕에 올랐다. '기생충'이 작품상을 수상하자 이미경 부회장은 시상식 무대에 올라 “우리의 모든 영화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의견을 말씀해주신 한국 관객에게 감사하다. 그런 의견 덕분에 우리가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고, 감독과 창작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재현 회장의 영어명인 Jay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Thank you for Jay..." 그녀는 평소 CJ 임원들에게 "이재현 회장이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면 나는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라면서 동생인 이재현 회장을 지원사격 해왔다.  

야속했던 CJ의 뿌리, 이 죽일 놈의 사랑... 애증의 삼성가

이 부회장은 이병철 선대 회장에 대해서 "할아버지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철학을 갖고 계신 분"이자 " ‘장자승계’라는 전근대적 사상을 무너뜨린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라는 답변을 한 매체 인터뷰를 통해서 밝힌 바 있다. 

 

또,  이병철 회장은 "항상 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며, 할아버지는 물론 고모들도 항상 일을 하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일 없이 노는 삶은 상상도 못하며 자랐다"고 말했다. 작은아버지인 삼성 이건희 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칭하면서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계시고, 성장과정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삼성그룹에게 오랜시간 받은 냉대는 CJ그룹 삼남매의 가슴에 말로 형언하기 힘들 생채기를 냈을 것이다.  2013년 횡령, 배임, 조세 포탈의 혐의로 구속된 동생 이재현 회장의 구속,  부재중 일때 이미경은 엔터테인먼트사업을 넘어 그룹사의 경영에 참여하며 경영공백을 메웠다.  그 무렵, 그녀에게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생충의 수상으로 K-푸드까지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계기가 됐다. 항상 꿈 꿨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을까. 명실공히 우뚝 선 문화계의 삼성, 설탕공장의 맏딸, 그리고 비비고부터 CJ ENM까지.  K-푸드, K-문화 전도사가 된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은 아픈 과거에 느꼈을 법한 감정과 현재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서러움과 기쁨이 공존하는 눈물로 증명했다.  

 

기생충의 성공은 CJ이라는 대기업이 잠식한 결과라고 결론을 내리며, 이 부회장이 걸어온 길을 폄하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성공의 공식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려줘도 행동으로 옮기기 힘들다.  2022년 이미경 부회장의 주도로 프리즈(Freize) 서울 전야제 'CJ 나이트 포 프리즈 서울'에 참석한 방탄 소년단의 리더 RM이 말한다. "성공비결이요?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시작해요. 그게 뭐든 지금 당장요, 실패에 대한 걱정할 찰나는 없어요. 일단 '쌔빠지게' 하는 거죠."

전 한국문화가 지속해서 발전할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믿고 있어요. 한국인들의 삶, 자체가 훌륭한 콘텐츠이기 때문이죠.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는 게 비슷해요. 

 

그렇기 때문에 10년 전 영화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죠. 하지만 우리는 눈만 뜨면 달라져 있는 세상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런 것에 익숙해져서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죠. 우리는 안주할 수 없는 성격인 것 같아요. 
문화는 ‘잇 트래블즈 에브리웨어(It travels everywhere)’, 즉 ‘근본에 충실한 스토리는 어느 나라에서나 통해요’

어릴 때부터 어려움이 닥치면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고난은 불교식으로 하면 ‘전생의 업’이라고 할 수도 있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이겠죠? 비관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2006년 11월 -이미경-

 

관련기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