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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로 본 FoodToday] '국민의 주린 배 달랜' 유통가 착한 기업 베스트5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에 눈 먼 악마에 비유되는 사람들로 변호사와 기업가들이 첫 손에 꼽히기도 하죠. 식품사업도 돈을 벌기 위해 음식을 팔죠. 하지만 모두가 꼭 돈만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던 것은 아닌데요.


배고픔의 시대...국민의 주린 배를 달래주기 위해 음식을 만들었고, 아픈 아이들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분유를 만들어내는 기업도 있죠. 또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젊음을 바쳐 대용식을 만든이도 있는데요.


순위로 보는 푸드투데이. 오늘은 '유통가 착한 기업 베스트5'입니다.



5위 복음자리


국내 잼 시장점유율 1위. 2014년 세계적인 잼 경연대회 최고상 더블골드 수상. 이런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잼을 처음 만든 이들은 삶의 터전에서 쫒겨난 철거민들이었습니다. 도시빈민운동가들이 집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폈고, 그렇게 복음자리잼은 탄생하게 됐죠.


1970년대 말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판자촌. 이 일대가 재개발되며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갈 곳 없어집니다. 도시빈민운동가였던 고 제정구 의원과 ‘판자촌의 예수’라 불리던 고 존 데일리 신부, 우리이름 정일우 신부는 철거민들을 이끌고 경기도 시흥으로 향합니다. 그곳에 마을 공동체를 세워 그들의 잠자리를 해결해 줍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목을 졸라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포도밭을 시작했지만 농사는 실패. 억울하고 아까운 마음에 포도밭에 솥단지를 걸고 끓인 것이 복음자리잼입니다. 수녀들의 도움을 받아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잼은 수녀들이 만든 잼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 성당에서 판매됐고, 이 성공을 발판으로 1933년 잼 공장을 세워 마을 사람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었죠.



4위 한국야쿠르트


약 50년 전 유산균 발효유 야쿠르트가 처음 나왔던 때. 먹을게 없어 병균까지 먹이려 하느냐고 욕까지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죠? 지금은 장건강과 면역력 증진에 탁월해 아이들의 필수간식으로 첫 손에 꼽히는데..창업주의 고집이 국민건강을 지키는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1968년.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윤덕병 창업주는 건강사회건설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한국야쿠르트유업을 설립합니다. 사장에는 사촌형인 윤쾌병씨가 올랐는데요. 뭐지 이 절묘함은? 당연히 대표 상품은 유산균음료 야쿠르트입니다. 대중들의 기초의학지식이 풍부하지 않았던 그 시절, “왜 돈을 주고 균을 마시냐”고 거부감을 보였다고 하는데요. 창업주 윤덕병 회장은 야쿠르트 아줌마을 필두로 유산균의 효능을 알렸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강식품 중 하나가 됐죠. 기술력을 들여온 일본과의 애매한 관계가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야쿠르트는 오랫동안 국민건강과 여성고용분야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겠죠.


윤덕병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가까운 관계로 여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이는 오늘의 주제와는 상관없으니 패쓰~.



3위 매일유업


적자가 불보듯 뻔한데 사업을 하려는 장사꾼이 있을까요? 매일유업의 창업주 김복용 회장은 그랬습니다. 모유는 물론 분유조차 먹지 못해 심할 경우 사망까지 하는 일이 빈번했던 그 때. 김 전 회장은 아이들을 위해 손실을 안기로 했죠.


선천성 대사 이상 질환. 아미노산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거나 만들어지지 않아 모유는 물론 단백질이 포함된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철저한 식단관리를 하지 못할 경우 이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자칫 사망에까지 이르기도 하는데요.


이 아이들에게는 특정 아미노산을 제거한 특수한 분유가 필요하지만 국내에서 이를 생산하는 기업은 없었죠. 수입 분유는 고가라 부모님들의 부담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때 김 전 회장이 특수분유 생산을 지시합니다. 병에 대해 편견이 컸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해 대외에 알리지 않은채 연구를 진행시켰다고 하죠. 2012년 당시 국내 17명뿐인 아이들을 위해 공장을 돌렸고 1500캔이 소비됐습니다. 같이 만들어진 8000캔이 버려질 것을 알면서도요. 매년 적자가 나는 이 사업은 김 전 회장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 20년째 아름다운 적자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2위 정식품


아이들의 아픔은 어른들을 괴롭게 하고 어떡해든 살리고 싶은 간절함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남양유업이 그렇듯 정식품의 베지밀 역시 병들고 힘없이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한 의사의 간절함이 담겨있습니다.


“만약 그 일을 겪지 않았다면 두유 개발에 인생을 걸어야 할 내 인연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베지밀을 만들어낸 정식품의 창업자 정재원 회장. 그는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요? 1936년 소화과 의사였던 젊은 정재원. 아기들이 모유와 우유 등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설사와 구토, 복부팽만 등을 앟다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던 시대. 아이를 살리고자 의사가 됐으나 원인을 몰라 죽어가는 아이를 보기만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20년을 연구했지만 치료법은 물론 원인조차 찾지 못한 그는 불혹이 넘은 나이에 홀로 영국으로 향합니다. 영국을 거쳐 미국에서 알아낸 유당불내증. 모유나 우유에 들어있는 유당성분이 유당소화장애를 나타내는 아기들에게 사망의 원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베지밀은 그런 아기들의 대용식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무려 33년이 걸린 성과. 20대 청년이었던 정 회장은 56세 할아버지가 됐죠. 그런데 이분..100세까지 사셨다고 합니다. 베지밀이 좋긴 좋은가봐요.



1위 삼양식품


“먹는게 족하면 천하가 태평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을 탄생시키게 했는데요. 6.25전쟁 후 하루 두 끼조차 때우기 힘들었던 그 시절. 주린 배를 채우주기 위해 일본에 사정해 들여온 라면. 삼양라면입니다.


1945년 일어난 한국전쟁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갔죠. 미군이 버린 음식 찌꺼지를 끓인 꿀꿀이죽으로 주린 배를 달래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지났지만 극심한 식량난은 해결되지 않았죠. 식량난 해결이 시급하다고 느낀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은 과거 일본에서 먹었던 라면을 떠올립니다. 값도 저렴하고 조리 방법도 간단해 대체식품으로 손색이 없었죠. 정부 지원을 받아 일본 묘조식품에 애원을 해 들어온 라면 제조기기 2대와 기술은 1963년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을 탄생시킵니다. 꿀꿀이죽 한그릇에 5원이었던 시절. 10원짜리 삼양라면은 배고픈 국민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줬습니다.



오늘 소개하지 못한 식품기업들 중에도 수많은 착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일일이 소개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점...아쉽네요. 뜨거운 가슴과 따뜻한 손으로 우리의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기업들.


문제는 이런 회사가 후계자에게 넘어가고 넘어갈수록 창업자의 정신은 조금씩 흐려지다 언젠가는 돈의 논리에 빠지며 그저 그런 장사꾼 회사로 전락한다는 것이죠. 아쉽게도.


하지만 또다른 가슴 따뜻한 기업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그랬으니까요. 대한민국 식품유통인 응원합니다~


지금까지 푸드투데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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