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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영의 맛집 여행] 개봉동 - 아우네병천순대

쫄깃쫄깃한 순대 한점 입안에 착
찹쌀동동주 한 사발의 '행복'


토요일, 장장 한시간을 투자해 화장을 했다. 머리는 어찌나 많이 빗어댔던지 속이 지끈지끈 할 지경, 안 입던 치마까지 입고는 애인을 만난다.

저녁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크림소스 스파게띠를 먹었드랬다.

일요일 오후, 어제의 그 ‘아가씨’는 온데간데없고 바랜 운동복에 끈 떨어진 슬리퍼를 신고 있는 왠 동네 아줌마가 거울 앞에 서 있다. 부스스한 머리에 반쯤 꼽혀 있는 핀이 한쪽 끝에서 달랑거린다. 화장은커녕 종일 세수 한번 안 해, 지저분하다 못해 칙칙한 모습이다. 이런 꼴을 하고서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격이 없는 친구들이고, 가야 하는 곳은 맛 좋고 푸짐한 동네 음식점이다.
그 집, ‘아우네병천순대’를 찾았다.

50여 년 전부터 아우내 장이 서는 날에는 부담 없는 가격에 서민들의 출출한 배를 채워줬던 병천순대가 있었다. 바로 이 곳이 그때의 그 맛을 가장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로 유명한 집이다.

통통한 순대는 쫄깃하다. 다양한 재료들과 음식 궁합을 잘 이루고 들깨가루와 약간의 소금을 넣으면 그 맛이 더해진다. 새우젓에 살짝 찍어 먹으면 고소하고 담백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다.
돼지피에 당면, 배추, 양파, 파, 양배추, 부추, 피망, 생강, 마늘, 찹쌀가루, 새우젓 등을 넣고 함께 버무리기 때문에 식으면 기름이 끼는 보통순대처럼 따뜻할 때 꼭 먹어야 하는 부담도 없다.

특히 이 집의 순대는 다른 순대와 달리 배추와 양배추 등 약 25종에 이르는 야채와 특수 처리된 돼지소창을 사용해 맛이 한층 더 부드럽다.

찹쌀순대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내는 순대국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메뉴다.

머릿고기, 오소리감투, 염통 등을 깨끗이 손질해 한 그릇 가득 담아낸다. 얼큰한 국물에 속이 후련해지고 깨와 깻잎 향이 먹는 내내 고소함을 전한다.

운동복이면 어떻고 세수를 안 했으면 어떠한가. 찹쌀동동주 한 사발 들이키고 쫄깃한 순대 한 점 입안에 넣으면 부스스한 내 모습도 마냥 이뻐 보일 지경이다.

아, 애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분명 어제 먹은 느끼한 스파게띠와는 비교 할 수 조차 없는 맛이 분명하다.

머리를 헝클고, 김치국물 묻은 운동복을 입고 친구들을 불러 볼까.
쫄깃한 순대와 구수한 동동주 한 사발 먹고 싶어 친구들을 핑계 삼는 것인지, 친구들이 보고 싶어 순대와 동동주 한 사발을 핑계 삼는 것인지는 본인도 모르는 일이다.

맛있는 순대안주에 절로 따라오는 동동주 한 사발, 두 사발…
아, 살살 달아오르는 취기가 좋다.

(02-2613-7574)

구인영 기자/her@fenews.co.kr